온몸으로 흐르는 전율, 'Electricity'

mu-03

by 김쾌대

문화/예술 분야에서 내가 평생에 걸쳐 흠모하고 도달하고 싶은 분야는 詩이고 감히 넘보지 못하는 영역은 춤이다.
남은 생애 동안 언어를 공글리고 매만지고 가다듬다 보면 어느 날 행여 운 좋게도 詩를 짓는 날도 오지 않을까 소망이라도 품겠지만, 나에게 춤이란 인간계를 넘어선 천상의 그 무엇이다.
나는 심한 몸치이다.

내가 뮤지컬에 빠지게 된 것도 따지고 보면 그 속에 춤과 노래가 가득하기 때문이라고 스스로 진단한다.
그 옛날 제사장의 시대에 사람들이 모여 술과 제물을 놓고 의례를 지낼 때 자연스레 밖으로 흘러 표출된 행위가 춤이고 노래가 아닐까 생각하면 근원을 찾아 탐색하기 좋아하는 나에게는 뮤지컬 공연을 관람하는 일이 어쩌면 경건한 예배이고 느꺼운 고해성사일 지도 모르겠다.
많은 작품을 대하고자 하는 열망이 커서 닥치는 대로 공연을 관람하며 살았다.
책으로 치면 다독처럼 말이다.
그런 내가 무려 다섯 번이나 관람한 작품은 <빌리 엘리어트>라는 공연이다.

영화로도 만들어져서 사람들에게 익히 알려진 이 작품은 '빌리'라는 이름을 가진 11살 소년이 자신의 고향인 영국 북부 탄광촌에서 겪는 일들을 다루고 있다.
철의 여인이라고 알려진 '마가렛 대처' 수상이 집권하던 시기에 우리가 아는 바대로 경제 위기에 빠진 영국에서는 구조조정이라는 피바람이 몰아쳤다.
생계의 기반이 되던 탄광이 폐쇄될 위기에 빠지고 사람들이 실업자로 전락하면서 마을에 위기가 찾아온다.
할머니와 아버지, 그리고 형과 함께 살던 어린 빌리에게 현실은 아직 생생하게 괴로움으로 다가오지는 않는다.
대신에 그를 위협하는 것은 발레리노가 되고 싶어 하는 자신의 꿈을 전혀 이해하지도 응원하지도 않는 가족과 주변 사람들의 편견이었다.
아버지는 복싱을 배우라며 빌리를 체육관으로 보냈지만, 그는 그곳에서 운명적으로 나타난 춤 선생님인 윌킨슨 부인을 만나 발레를 배우게 된다.

내가 국민학교 5학년 때쯤에 밤마다 눈물로 베개 닢을 적시던 그 마음이 하도 처연해서 교회를 나가기 시작했다.
그곳에서 마음의 위안과 평안을 느끼게 되며 열심히 주일학교를 다녔고 중학교에 가서는 성가대로 활동을 하게 되었는데 너무 좋아서 행복하기만 했다.
지휘자 선생님에게 칭찬을 받고 격려를 얻게 된 나는 마음 한편에서 나중에 대학을 가게 되면 꼭 음대를 가고 싶다는 꿈을 꾸게 되었다.
하지만 집 안 분위기는 감히 입 밖으로 내 희망을 얘기할 여건이 되지 않았는데 빌리와 같은 처지였다.
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 나는 조용히 스스로 알아서 내 꿈을 접었다.

모범생에 우등생이었던 나와 달리 빌리는 저항하는 마음이 있었다.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그의 의지는 남달랐고 예민했고 상처를 많이 받을 수밖에 없었다.
마을에 시위가 크게 일어난 어느 날, 어린 빌리는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상황을 견디다 못해 마침내 온몸으로 폭발하고 만다.
공연에서 이 장면이 나올 때 나는 넋을 잃고 바라보다가 숨도 쉬며 압도되고 말았다.
(1막에 나오는 'angry dance' 장면: https://youtu.be/MDElsfXr47Y)

우여곡절 끝에 빌리는 윌킨슨 선생님의 도움으로 마침내 로열발레학교 오디션을 보게 된다.
마을 사람들도 빌리의 합격을 기원해주며 배웅하고 반대하던 아버지도 뜻을 꺾고 아들과 함께 런던으로 동행하여 아들의 오디션을 지켜보게 된다.
이런저런 테스트가 끝나고 마지막으로 심사위원이 빌리에게 '춤을 출 때 어떤 느낌이 드느냐'라고 묻는다.
빌리가 대답한다.

"춤을 출 때면 모든 걸 잊게 돼요.
내가 아닌 것처럼요.
마치 불이 붙은 것처럼 뜨거워져요.
마치 새가 되어 하늘을 나는 것처럼요.
마치 전기에 감전된 것처럼요."

꿈을 접고 대학을 가고 사회에 나오면서 나는 그럭저럭 잘 살았다.
몸에 불이 붙은 것처럼 뜨겁지도 않고, 새가 되어 하늘을 나는 것처럼 자유롭지도 못하게 살았다.

대신에 냉정하게 이성을 지키며 사업을 하고 가정을 지키고 아이들을 보살피며 살았다.
그 시기를 후회하지는 않지만, 앞으로도 계속 그렇게 살고 싶지는 않다.
그래서 나는 요즘 매일 글을 쓰며 하루하루를 보낸다.
강렬하지만 않지만 미세하게나마 내 핏속으로 흐르는 어떤 전류 같은 걸 느끼면서 말이다.
감사한 날들이 지나고 있다.

*영상: 2막 마지막에 심사위원에게 빌리가 대답하는 장면

https://youtu.be/muBrh7Y5ZL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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