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사랑의 추억을 찾아 떠나는 여행, '김종욱 찾기'
mu-08
봄비가 부슬부슬 내리던 주말에 서해안의 한 포구로 나들이를 다녀왔다.
운치 있는 봄마실에 걸맞게 아담하고 아늑한 바다가 자신의 품으로 아늑하게 안아주는 느낌이 좋았다.
오랫동안 그곳을 지키며 장사를 이어가는 식당에서 철 끝 새조개와 쭈꾸미 샤브를 시켰는데, 빨간 들통에 담겨 나온 쭈꾸미를 집게로 집어 들다가 깜짝 놀랐다.
너무나 강력한 빨판의 힘으로 밖으로 빠져나오기를 거부하는 녀석들의 질긴 생명력이 전해졌다.
그리고 나는 불현듯 슬프고 부끄러운 감상에 빠지고 말았다.
예전에 내 발목을 그런 힘으로 움켜잡았던 첫사랑의 추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첫사랑이란 매력적인 소재는 영화나 드라마를 포함해서 모든 장르의 예술 작품의 단골 소재이다.
뮤지컬도 예외는 아니어서 <김종욱 찾기>에서는 첫사랑을 찾는 한 여자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스물아홉을 지나는 여주인공(서지우)은 일에만 몰두하며 결혼에는 관심이 없는데 사실 그녀의 마음속에는 인도에서 우연히 만났던 남자가 첫사랑으로 깊숙이 자리를 잡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좀 이상한 건 그녀가 첫사랑을 기억하는 건 그 남자의 이름이 '김종욱'이란 사실 하나뿐이다.
보다 못한 군인 출신의 엄격한 아버지가 그녀를 <첫사랑 찾기 사무소>라는 흥신소에 끌고 가는데, 그곳을 운영하는 남자 주인공(한기준)과 함께 전국의 김종욱을 찾아 하나씩 만나보기로 하는 여정을 보여준다.
(괄호 안의 남녀 주인공 이름은 영화에서 나온 이름을 따랐고 공연에서는 실제 배우들의 이름을 쓴 것으로 유명하다.)
과거 인도에서 마주치게 된 김종욱과의 에피소드와 현재 한기준과 함께 엮어나가는 사건들이 공연이 진행되면서 교차하며 드러나고 1명의 멀티맨이 무려 25가지 이상의 역할을 소화하며 관객들이 지루할 틈을 주지 않고 감초 역할을 톡톡히 해낸다.
쉴 틈도 없이 등장해서 막강한 연기 투혼을 발휘하는 멀티맨의 존재가 크게 다가온다.
대학로 소극장 공연의 열악한 제작 환경에서 어쩌면 배우 출연료를 줄이기 위한 눈물겨운 기획 의도의 결과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이다.
이유가 어떻든 <김종욱 찾기>의 배역을 받은 배우들은 혼신의 힘을 다해 무대에서 열연한다.
2006년 초연 이후 현재까지 롱런하면서 영화까지 제작되는 흥행을 이어가는 이면에는 생활고에 맞서 연기 투혼을 이어가는 배우들의 힘이 담겨 있다는 사실에 늘 경의를 표하게 된다.
공연 예술의 매력은 사람(배우)들이 공간을 채운다는 점이다.
정통 연극에서는 소품으로 달랑 의자 하나만 놓고도 우주와 자연과 역사를 보여주기도 한다.
우리가 어릴 적 흰 종이 위에 검은 활자들만 배열된 책을 보면서 온 세상을 문제없이 돌아다녔던 경험과 비슷하다.
상상력은 어떤 기계 장치나 첨단 기법보다 더 풍성하고 다채로운 장면을 만들어 낸다.
요즘 판타지나 히어로 영화는 모든 걸 정밀하게 보여줌으로써 오히려 상상력을 거세시킨다.
좋은 예술 작품들은(공연이든 전시든) 관객들의 상상력을 자극한다.
사랑이 황홀한 이유는 상대방에 의해 촉발되어 끝없이 펼쳐지는 상상이 충만해지기 때문인데 연애도 점점 영화를 따라 지나치게 현실적으로 바뀌면서 재미가 없어지는 시대가 된 것 같다.
첫사랑이 실패하는 이유는 상상을 현실로 구현하는 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가슴에서 설렘은 터질 것같이 충만하지만 한계 상황을 극복할 용기가 부족한 것이다.
내 경우에 첫사랑과 결혼 직전까지 사랑을 키웠지만, 우리 부모님의 반대로 무산됐다.
이별 통보를 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내 사랑이었던 그녀는 우리 집을 찾아와 마루에서 무릎을 꿇고 결혼 승낙을 받으려고 했다.
퇴근하고 돌아와서 그 광경을 목격한 비겁했던 나는 그녀를 일으켜 세우며 그만 돌아가라고 설득했다.
그때 그녀가 내 발목을 움켜쥐고 자기편이 되어 달라고 애원했다.
나는 매몰차게 그녀를 뿌리치고 내쫓았다.
만약에 다시 내 첫사랑을 찾게 된다면 나는 그녀 앞에 무릎을 꿇고 용서를 구하고 싶다.
공연에서 여주인공은 마침내 첫사랑이었던 '김종욱'을 만나게 된다.
그 결말은 공연이나 영화에 나오니까 찾아보시면 될 것이다.
내 경우처럼 비장하고 무겁지 않아서 깔끔한 마무리가 느껴질 것으로 생각한다.
비가 온종일 부슬거리며 내리더니 저녁에 그치고는 바람이 차갑게 불던 휴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