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생 본능에 대한 향수와 동경, '지킬 앤 하이드'

mu-09

by 김쾌대

애정하고 존경하는 페친 #김미옥 샘의 페이스북 계정이 해킹으로 털렸다고 한다.
누군가 자신을 사칭해서 부당한 이득을 취하고 지인들에게 피해를 입히는 일을 당하면 피꺼솟이다.
우리는 살면서 어떤 순간에 내면의 분노가 폭발하며 속된 말로 뚜껑이 열리는 걸 경험하기도 한다.
1886년에 출간된 스티븐슨의 소설, <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가 영화와 뮤지컬까지 만들어지며 대중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나는 오늘 내 안에 도사리고 있는 분노에 대해 생각해 본다.

뮤지컬 <지킬 앤 하이드>는 1980년부터 기획이 시작되어 무려 17년 동안 테스트 과정(컨셉 앨범, 미국 투어 공연, 프리뷰 공연 등)을 거치며 가다듬어진 후, 마침내 1997년 4월에 브로드웨이에서 초연을 올렸던 작품이다.
보통 제작 기간이 길면 배가 산으로 가는 경우가 많은데 <지킬 앤 하이드>의 경우는 그렇지 않았다.
4년 동안 미국에서의 흥행이 어느 정도 성공을 하고 일본과 독일 등 해외로 수출되었다.
한국에는 2004년에 초연되어서 뮤지컬 공연 업계를 뒤흔들었다.
게임에서 임요환이나 스포츠에서 박세리, 박찬호처럼 대중화의 아이콘으로 등극한 것이다.
2019년 기준, 국내 누적 관객 150만 명 이상이 관람했다고 하니 명성이 헛되지 않음을 증명했다.
공연에 삽입된 '지금 이 순간'이란 넘버는 개나 소나 하도 불러서 국민 금지곡이 되기도 했다.
선악의 대결이라는 인간 본성의 내면을 다룬 주제와 원작 소설에도 없던 로맨스가 추가되면서 소고기 등심에 시원한 냉면이, 삼겹살 구이에 기가 막힌 김치찌개가 결합한 형국으로 흥행에 성공했다.

초기 기획 단계부터 참여했고 작곡을 맡았던 '프랭크 와일드혼'이란 사람의 각별한 재능이 돋보인다.
그는 원작자 스티븐슨이 건드렸던 선과 악이라는 인간 내면의 양면성을 넘어서서 문명과 미개, 문화와 야만이라는 사회적 갈등의 영역까지 주제를 확장시키는데 성공했다고 본다.
논리적으로 설명하는 대신에 음악이라는 매력적인 메스(칼)를 가지고 현대 사회를 해부하고 말았다.
르네상스의 계몽주의를 거쳐 과학 혁명으로 산업화로 진행된 근현대 사회는 문명을 건설했다.
교육을 통해 대중들은 고분고분해지며 산업 현장의 근로 환경에 충실히 적응해 나갔다.
폭발적인 인구의 증가로 인류가 멸종될 수도 있는 위기를 지혜롭게 극복한 것이다.
비유하자면 수렵과 채취를 하며 지내던 원시인들이 농경 기술로 울타리를 만들며 지내다가 거대한 동물원에 안착하면서 하루하루의 양식을 배급받기 시작한 것이다.
과거와 비교해 생존 확률이 높아지며 안정감은 넓어졌지만, 문득 공허함이 밀려오기도 한다.
동물원에서 편안하게 지내는 야수들의 눈빛이 왠지 처량하고 무기력해 보이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예전에 야생과 자연에서 부대끼며 지냈던 역사적 체험이 아직은 DNA에 남아있기 때문일 것이다.
케이블 방송에서 방영된 <나는 자연인이다>라는 프로그램이 인기가 있는 건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
'와일드혼'은 독학으로 습득한 특유의 작법으로 우리의 내면 깊숙이 자리 잡고 있는 야생 본능을 외부로 끌어내는 특별한 재능이 있어 보인다.
<지킬 앤 하이드>에서는 바로 그런 면이 곳곳에 배치되어 관객을 열광시키고 있다고 본다.

개인적으로 나는 문명의 상징인 계획도시(강남)에서 40년이 넘는 시간을 보내며 문명적인 이성과 문화적인 감성을 교육받으며 무탈하게 지낸 경험을 지니고 있다.
매너 있고 예의가 바른 '교회 오빠'로 성장했지만, 인생이 저물어 가는 어느 순간 회의감이 밀려왔다.
그동안 살면서 답답하고 무기력하게 느껴질 때 노래방에서 미친 듯이 노래도 불렀고 뮤지컬 동호회에 가입해서 무대 위에서 연기도 하고 연출도 해봤지만 임시방편은 근본적인 치유책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다시 시간을 되돌려 처음으로 돌아갈 방법도 딱히 없어 보였다.
다행히 요즘은 문학 동네에 진입하면서 어느 정도 낭만을 통한 해방감을 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으니 감사한 일이다.
그래도 들어와서 보니 길들여지지 않는 야성을 지니고 작품을 만들어 대중을 만나야 하는 이곳 문화/예술계에도 제도권의 달콤한 먹잇감에 발톱과 이빨이 퇴화하고 있는 업계 종사자들이 많고 나 역시도 그런 유혹에 늘 기웃거리곤 하니 마냥 즐거운 일은 아니라고 고백할 수밖에는 없다.
그럼에도 니체의 '아모르 파티'까지는 아니어도 최백호의 '낭만에 대하여'는 넘어설 수 있을 듯하여 아직은 기쁘고 만족스럽다.

가장 문명적인 방식으로 가장 야만적인 폭력을 행사하는 해킹에 고통을 받고 계시는 미옥샘에게 예전에 내가 답답할 때 해방감과 일탈감을 느끼기 위해 듣곤 했던 <지킬 앤 하이드>의 넘버 한 곡을 보내드렸다.

와일드혼이 제도권 브로드웨이에 진입하면서 어쩌면 포기하고 타협했을지도 모르는 최초에 꿈꿨던 작품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록(Rock) 버전 앨범 중 한 곡인데, 이 노래는 아무도 없는 곳에서 최대 출력으로 혼자 들으면 묘미이다.
이 곡에서 전하고 있는 '살아있다'(Alive)라는 느낌을 나의 내면에 간직하고 부디 마지막 순간까지 완주할 수 있기를 기도해 본다.


*영상: 컨셉 앨범 <Resurrection>에 수록된 'Alive'

https://youtu.be/9WSuj3bdnk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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