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 이사한 동네는 유명한 먹자골목 옆 빌라촌이다. 밤이 되면 동네에는 네온 간판들이 화려하게 불을 밝힌다. 주머니가 가벼운 젊은 친구들이 여기저기서 모여든다. 소위 말하는 '핫플레이스'는 열기와 활기가 넘치는 곳이다. 물론 코로나 이후로 많이 위축되고 반감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1920년 대의 미국은 1차 세계 대전에서 승전하며 세계 패권의 중심으로 우뚝 솟아올랐다. 시카고에도 주체할 수 없는 욕망을 가슴에 품고 전국 각지에서 모여든 사람들로 북적거렸다고 한다. 뮤지컬 <시카고>는 그 당시에 벌어졌던 실화를 바탕으로 1975년에 각색되어 발표된 작품이다. 배경은 감옥이고 죄수로 수감된 여자 주인공, '벨마'와 '록시'가 나온다. 두 명 모두 살인죄로 기소된 1급 범죄자이고 재판을 기다리고 있다. 화려한 도시 뒷편에는 술과 도박과 섹스와 마약이 범람했고 불륜과 살인은 흔한 일상 중의 하나였다. 사법부가 있었지만 경찰들처럼 부패했고, 언론은 자극적인 기사로 여론을 조작하고 선동했다. 언론플레이를 통하여 진실을 왜곡하고 재판에서 승승장구하는 변호사 '빌리'가 '벨마'와 '록시'의 사건을 맡아 능수능란한 수법을 선보이며 결국 모두를 석방시키고야 만다.
인터미션을 포함한 러닝 타임 150분이 정신없이 지나간다. 이 작품이 제작된 1975년의 미국은 월남전에서 패하며 광기가 걷히고 자성의 분위기가 대세였다. 사회 분위기가 무겁고 어두워지면 쇼비즈니스 사람들은 밝고 유쾌한 콘텐츠를 제작하는 경향이 있다. 사람들이 잠시 시름을 잊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싶어하고 그게 바로 돈이 되기 때문이다. 베트남에서 국제적으로 지탄을 받는 일을 벌이며 자존심에 금이 간 아메리카는 한때 자신이 세계의 중심이 되었던 시기를 그리워하였는지도 모른다. 뮤지컬 <시카고>는 자존감의 회복과 존재감의 확인에 관한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자존감은 스스로 혼자 느끼는 감정이지만 존재감은 타인들에 의해 인정을 받아야 하는 영역이다.
극 중 '벨마'와 '록시'는 평범한 가정주부가 아니라 성공을 위해 시카고로 상경한 청춘들이었다. 밤무대에서 보드빌 공연의 헤로인과 재즈 싱어를 꿈꾸던 코러스 걸로 활동하며 스타가 되기를 열망했다. 톱스타가 된다는 것은 존재감에 있어서 최상의 자리에 올라선다는 뜻이다. 시카고에는 그런 꿈을 꾸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었고 욕망의 교차로에는 이익을 챙기는 '빌리'와 언론들이 동시에 존재했다. 관객들은 전설적인 현대 안무의 거장 '밥 파시'의 관능적인 스타일이 녹아든 춤과 자유분방한 재즈 음악과 눈을 떼기 힘든 조명에 취하며 점점 뜨거운 열기 속으로 빠져들게 된다. 그러다가 잊지 못할 명장면, '록시'의 남편인 '에이모스'가 등장하여 <미스터 셀로판>을 부른다.
순진무구한 그는 자신의 아내가 자신을 속이고 즐기던 내연남을 죽인 사실을 모르고 강도에 맞선 정당방위로 몰아가는 변호사의 승소 전략을 지원하기 위해 가진 재산을 처분하며 아내를 돕는다. 그가 멍청하리만큼 헌신적인 이유가 <미스터 셀로판>을 부르는 순간 밝혀지는데, 사실 그는 어려서부터 존재감이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찌질한 인생이었던 것이다. 사람들이 자신을 투명한 셀로판지처럼 여기며 그 자리에 있는지도 모르는 투명인간 취급을 한다고 하소연하는 장면은 배역마저 미미하여 관객들이 전혀 그를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돌연 엄청난 존재감을 드러내는 한 방을 날린다. 관객들은 그의 등장으로 자신들도 현실에서 다를 바 없다는 사실을 체감하기 때문에 마지막 커튼콜에서 '에이모스'가 등장할 때 우뢰와 같은 박수로 답례를 한다. 그는 이를테면 형형색색 강렬하게 빛나는 네온사인 사이에서 희미하게 흔들리는 촛불과도 같은 존재였고 광기와 열기 대신에 인간미가 풍기는 온기를 전달했다고 본다.
우리는 어쩌면 모두 잊혀지는 것을 두려워하며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모두가 스타가 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열심히 개인 SNS와 오프라인 모임과 종교 활동과 가족 모임에 참석하며 그래도 자신이 아직은 뭔가 쓸모가 있다는 점을 확인하려고 한다. 개인적으로 예전에 운영하던 회사가 공중파에서 전국적으로 전파를 타며 유명세를 치른 적도 있다. 과분하게 인정을 받고 프로젝트를 수주하고 돈을 벌고 회사를 키우며 승승장구를 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거품과도 같이 모든 것이 사라졌다. 네온사인 등불이 전원이 끊기며 갑자기 꺼지는 것과 비슷했다.
이제 와서 성공을 향한 뜨거운 열기가 모두 허망하다고 말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한 번쯤은 그런 경험에 휩싸여 보는 것도 꼭 나쁘다고 할 수는 없는 황홀한 경험이다. 내가 마지막으로 말하고 싶은 점은, 요즘 젊은 세대들에게서 그런 희망마저(비록 부질없다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빼앗아간 세태가 서글프다는 것이다. 젊음이란 조금은 화려하고 불안하고 위험하고 무질서하기도 해야 하지 않을까? 그래서 다시 찾아보게 되는 '에이모스'의 <미스터 셀로판>은 우리 아이들의 모습이 투사되며 새로운 서글픔으로 다가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