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 초에는 부활절이 있었는데 무심코 지나갔다. 어릴 적에는 교회에서 열리는 행사들로 많이 들뜨고 기뻤던 기억이 나는데 이제는 그저 추억이다. 코로나 이전의 평범한 일상이 어느새 오래된 앨범의 사진들마냥 퇴색된 느낌이 드는 것처럼.
뮤지컬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JCS)는 고전 중에서도 고전이다. 1971년 브로드웨이 초연이었으니 올해로 50주년 역사이고 중요한 점은 지금도 여전히 어딘가에서는 공연이 올라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개인적으로 이 공연은 내가 고등학교 시절 부활절 기념으로 단원 모집을 했던 기억으로 남아있다. 당시 대학생이었던 연출자 형님이 교인들 중에서 대학생과 고등학생을 대상으로 모집 공고를 냈다. 나는 예수 역할로 지원한 뒤 몇 주 동안 금식까지 해가며 간절하게 기도하며 오디션을 준비했다. 결과는 탈락이었고 대신에 대사도 거의 없는 로마 병정(2)으로 낙점되어 발표가 났다. 그때 나는 '공연계에서는 하나님보다 연출자가 더 위에 있구나'라고 생각했다.
<팬텀 오브 오페라>, <캣츠>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앤드루 로이드 웨버'가 작곡을 했고, 디즈니의 명작 <라이언 킹>, <아이다>에서 극작을 한 '팀 라이스'가 20대의 젊은 시절에 영국에서 일생일대의 대형 사고를 친 작품이 바로 <JCS> 이다. 당시 대중 음악계는 '엘비스 프레슬리'와 '비틀즈'가 잠자는 세상을 록 음악으로 깨우던 시기였다. 기성세대의 엄.근.진에 맞서 자유분방함, 저항, 히피 문화, 마약 등 젊은 세대들은 변화를 갈망하는 에너지를 지닌 채 연대했고 '록 Rock'이라는 음악 장르는 최적의 무기가 되었다. 그런 시대 정신을 그대로 반영하여 '비틀즈'가 무겁고 권위적인 영국 사회를 뒤흔들며 세계적으로 유명해졌듯이, 두 사람은 뮤지컬 <JCS>를 통해 수천 년 이어지던 기독교의 종교적 도그마에 강력한 한 방을 먹이고 말았고 그 파급력은 비틀즈와 마찬가지로 영국을 넘어서서 전 세계로 뻗어나가게 되었다.
공연의 시놉시스는 기독교인이라면 모두가 알고 있는 예수의 사역과 죽음과 부활을 다루고 있다. 중요한 건 등장인물의 재해석인데, 일단 그 이전에 예수라는 인물을 '하나님의 아들(성자)'로 해석했던 기존 기독교 교리에 맞서 '사람의 아들(인자)'로 설정하고 그의 인간적인 고뇌와 절망 등을 보여준다. 제목에 '슈퍼스타'라는 명칭을 붙였듯이 대중들에 의해서 본의 아니게 어떤 아이돌 스타처럼 떠받들어진 현상이 그가 고뇌하는 이유이고, 믿었던 제자에 의해 배신을 당하는 상황은 그가 절망하여 겟세마네 동산으로 올라가 처절하게 그를 보낸 신에게 항변하는 배경이 된다. 정치인들은 본심을 숨기고 가면(페르소나)을 만들어 자기 자신과 대중들을 기만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유대교의 지도자들과 당시 이스라엘을 통치하던 빌라도 총독 같은 사람들인데, 이 공연에서 빌라도가 사형수로 잡혀 온 예수 앞에서 조롱하고 멸시하는 장면은 압권이다. 인간들 세상에서 닳고 닳은 권력 판에서 활동하는 선수들의 눈에 '정치 초년생 예수'는 분노와 비웃음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었는데, '너는 어쩌자고 이 판의 질서를 흔들어서 우리의 입지를 위협하느냐'라는 것이 비난의 핵심이다. 자신들의 욕망을 투사한 히어로를 향해 '호산나'를 외치는 대중들과 자신들의 탐욕을 지켜내겠다는 권력자들을 대변하는 '헤롯송' 사이에서 슬픔과 고통에 빠진 예수는 '겟세마네'에서 절규한다.
예수가 죽고 2,000년도 지난 지금도 권력자들은 탐욕스럽고 대중들은 어리석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사가 중단되지 않고 이어지는 것은 날마다 부활하는 예수의 제자들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겉으로는 종교적인 포장을 하며 교회에 모이는 거짓 목사와 신자들이 아니라 이 시대에 고통받는 젊은이들과 아이들과 약자들을 바라보며 가슴 아파하고 고뇌하며 애통해하는 마음으로 기도하는 그런 사람들이 예수의 제자이다. 부활절에 달걀을 깨며 숨겨진 진실을 일깨우는 것처럼 나도 매일 내 안에 단단하게 자리 잡고 있는 편견과 무지와 오만의 껍데기를 깨며 날마다 부활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