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내면에서 흘러나오는 빛, '넥스트 투 노멀'

mu-15

by 김쾌대

살면서 자신의 존재 의미를 묻는 순간이 찾아오곤 한다.
'왜 이렇게 살아가는 거지? 도대체 뭐하면서 살아온 거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하지?'
이런 근본적인 고민은 즉각적으로 해답을 찾을 수 없기 때문에 보통 사람들은 더 깊게 고민하지 못하고 일상에 파묻혀 하루하루를 또 꾸역꾸역 살아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도저히 그냥 지나칠 수가 없어서 질문을 잡고 벗어나지 못하기도 한다.
일반 사람들과 다르다는 이유로 우리는 그들을 '비정상'이라고 구별하며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여긴다.
그들은 자신이 정상인처럼까지는 아니어도 그 비슷한 삶(next to normal)이라도 살아갔으면 한다.
약을 처방받아 먹기도 하고, 아니면 혼자서 끙끙거리며 앓다가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도 한다.

뮤지컬 <넥스트 투 노멀>에는 겉으로는 평범해 보이지만 불안하게 흔들리는 가족들이 나온다.
뇌(brain)에 이상이 생겨 정신치료를 받아야 하는 엄마.
마음(mind)에 이상이 생겨 방황하는 천재적인 딸.
도에 넘는 의지(will)가 지나쳐 헌신적으로 무너져가는 아빠.
생후 8개월에 죽어서 실재하지 않지만 18살 청년의 모습으로 엄마의 눈에만 보이는 아들.

인간을 구성하는 정신적 요소들(brain, mind, will)이 어떤 이유에서인지 고장(out of order)이 나게 되고 이제 더는 정상적이지 않게 된다.
이러한 인지부조화, 정서불안, 극한상황이 인생에 들이닥치면 사람들은 원인이 뭔지 진단하고 그에 따른 처방(약)을 얻게 된다.
엄마가 정신치료 약을 먹어야 하고, 딸이 마약에 손대는 이유이다.
너덜너덜해진 아빠의 의지력은 권위가 있다는 의사의 말에 충전된다.
현대인은 문제의 해결책을 자신이 아닌 외부에서 얻으려고 한다.
본질적인 것이 해결되지 못하는 이상, 상황은 점점 더 꼬여만 간다.
바라보고 있는 관객들의 생각도 점점 불안하고 답답해져만 간다.

2008년 오프 브로드웨이를 거쳐 2009년 브로드웨이에서 초연된 이 작품은 대중적이지 않은 불편한 소재에도 불구하고 2009년에 여우주연상, 최고음악상, 최고 오케스트레이션 상을 수상했다.
일렉트릭 밴드가 이끄는 현대적인 감각의 음악이 세련되고 강렬하게 관객들에게 전달되고 배우들(특히 엄마역)의 열연은 보는 사람들을 무대로 끌어들이는 흡입력을 가지고 있다.
거기에 무대의 공간 분할과 조명이 탁월해서 주인공들의 의식상태를 마치 잘 정제된 알약이나 마약처럼 시각적으로 매우 선명하게 보여주며 치명적인 느낌을 준다.
방송을 통해 대중적인 인지도와 인기를 얻었던 음악감독 '박칼린'이 <시카고>와 더불어 자신이 직접 여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의욕을 불태웠던 것도 이 공연의 작품성이 뛰어나다는 것을 방증한다.

갈등이 고조되는 극의 후반에 엄마가 드디어 소리를 지른다.
"뇌에 이상이 생긴 것이 아니라면 어쩌죠? 영혼(spirit)에 문제가 생긴 것이라면 말이에요?"

인간을 구성하는 정신적 요소들의 상위계층에 어쩌면 인간이 인식하지 못하는 다른 것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것은 빛(light)이고 외부에서 오는 빛이 아니라 자신의 내면에서 흘러나오는 한 줄기 희망이 아니겠냐는 주제가 천천히 관객의 가슴 속으로 스며든다.
1막과 2막의 엔딩곡에 ‘light’이 놓일 수밖에 없는 이유이고, 사실 음악은 공연 내내 바로 그 ‘spirit’을 담아내며 진행되고 있다.
개인적으로 내 어머니도 갱년기에 접어드시면서 우울증에 시달리셨고 그 이후 남편과 자식들에게 당신의 마음속에 새겨진 깊은 상처의 파편들을 토해내시며 자신과 주변을 힘들게 만드시곤 하셨다.
나는 그런 어머니를 뜨거운 마음으로 동정했고 동시에 차가운 시선으로 미워하며 지냈다.

이제 글을 쓰며 지내는 요즘 이 공연을 다시 생각하면서, 자신의 내면에서 흘러나오는 영혼의 빛과 소리를 받아들일 때 비록 정상은 아니어도 정상적인 삶 주변(next to normal) 그 어딘가에라도 우리의 존재 의미가 있지 않겠느냐는 메시지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된다.


*영상: 극 중 엄마가 절규하며 남편과 부딪히는 장면

https://youtu.be/wSLsWRhgzg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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