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의 사회적 역할을 생각하게 만드는, '위키드'

mu-14

by 김쾌대

꿈을 컬러로 꾸는 사람이 있을까?
요즘 부쩍 자면서 꿈을 많이 꾸다 보니 갑자기 엉뚱한 상상을 해본다.
만약에 꿈이 총천연색이라면 깨어나서 금방 잊어버리는 일은 줄어들지 않겠느냐는.
그러다가 피식 웃었다.
꿈은 어차피 꿈인데 그걸 기억하는 게 뭐 그리 대수겠냐는 생각이 들어서.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소설, <오즈의 마법사>는 워낙 유명해서 제목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작가는 '라이먼 프랭크 바울'이란 사람인데 한 권의 책이 아니라 시리즈로 연재했다고 한다.
그가 직접 쓴 작품은 14권까지인데 13권과 14권은 사후에 출간되었고, 이후 다른 작가들이 시리즈를 이어가며 총 40권으로 완결되었다고 하니 엄청난 사랑을 받은 작품이 아닐 수 없다.
시리즈가 완결되는데 무려 63년(1900~1963)이나 걸렸을 정도이니 입이 딱 벌어진다.
이후 영화로 만들어져 우리에게 익히 알려지게 되었고 주제가였던 <Over the Rainbow>를 모르는 사람은 아마 거의 없을 듯하다.

이후 1995년부터 미국의 소설가 '그레고리 매과이어'가 여섯 권의 연작으로 <오즈의 마법사>가 시작되기 이전의 이야기를 다룬 이야기를 출간했는데 그게 바로 소설 <위키드>이다.
나무위키에 소개된 작품의 소개를 빌려오자면, '서구사회에 대한 날 선 비판과 은유, 특히 제2차 세계대전과 파시즘, 종교 문제와 인종 차별과 소수자 차별에 대한 비판을 담고 있으며 아주 시니컬하고 염세적인 분위기다.'라고 밝히고 있다.
이런 배경하에서 마침내 2003년, 브로드웨이에 소설을 각색한 뮤지컬 <위키드>의 초연이 올라온다.

<오즈의 마법사>에서 이름도 없는 악당이었던 '사악한 서쪽 마녀'(Wicked Witch of the West)가 어엿하게 '엘파바'라는 주인공으로 등장하고 그녀의 친구이자 대조적인 캐릭터로 '착한 남쪽 마녀, 글린다'가 나온다.
앞서 말했듯이 소설 <위키드>는 엘파바를 중심으로 3대에 걸쳐 오즈에서 생긴 동물 핍박, 인종 차별, 전쟁 등에 관한 염세적이고 비극적인 결말을 가져가는 데 비해, 뮤지컬에서는 엘파바와 글린다의 우정과 성장, 피예로와의 삼각관계 등을 바탕으로 매우 동화적이고 환상적인 분위기로 무대를 꾸몄다.
판타지 소설이 원작이다 보니 특수 분장과 의상이 나오고, 마법사의 이야기인 만큼 마법을 표현하는 장면들의 무대 장치도 멋진 볼거리이며, 의인화된 동물들로 등장하는 조연들과 앙상블이 마치 해리포터 시리즈와 같은 몽환적인 느낌을 구현해 내고 있다.
총제작비 130억에 의상 제작비만 35억을 쏟아부은 물량 공세를 펼치며 무대에서 보여줄 수 있는 스펙터클을 유감없이 보여주면서 2020년 기준으로 전 세계 흥행 5위, 브로드웨이 기준 흥행 2위에 올라서는 기염을 토하고 있다.
한 마디로 <라이언킹>, <팬텀 오브 오페라>, <캣츠>, <맘마미아> 등과 함께 죽기 전에 한 번쯤은 봐야 하는 뮤지컬이 돼버린 것이다.
개인적으로 졸혼 이전에 뮤지컬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아이들 엄마와 결혼기념일 이벤트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함께 관람한 뮤지컬이 바로 <위키드>였다.

워낙 화려한 볼거리와 그에 걸맞은 주옥같은 넘버(노래)들이 이어지기 때문에 공연을 관람하는 사이 지루할 틈은 거의 없는데 관객들의 사랑을 많이 받는 대표곡들로는 글린다의 매력적인 백치미와 순진한 모습이 잘 드러난 'popular', 엘파바가 절체절명의 위기가 닥쳤을 때 중력을 거슬러 날아오르는 'Defying Gravity', 그리고 서로 대립적인 관계에 있던 두 사람이 한 마음으로 부르는 'For Good', 마지막으로 마법사 오즈가 사는 에메랄드 시티에 도착한 두 사람 앞에 펼쳐지는 앙상블의 화려한 모습이 펼쳐지는 'One Short Day' 등이 유명하다.
가슴이 웅장해지는 느낌을 지니며 극장을 빠져나온 관객들은 벅찬 가슴을 안고 각기 집으로 돌아가 일상으로 돌아가게 한다.

그들처럼 일상으로 돌아온 나는 어느 날 문득 의문이 들었다.
'뮤지컬은 일종의 마약처럼 현실을 제대로 보지 못하게 만드는 환각제는 아닐까?'라는.
다시 말하지만, 원작 <위키드>는 사회의 부조리와 모순을 작가의 예리한 눈으로 포착하여 고발하고 비판하는 저항의 정신을 담고 있는데, 뮤지컬에서는 그런 점을 거의 찾아볼 수 없다.
푸른색 피부를 지닌 '엘파바'를 마법 학교의 동료들이나 선생님들이 따돌리고 심지어는 모함을 하여 마녀로 몰아가는 장면이나, 엄청난 카리스마를 가진 줄 알았던 위대한 마법사 '오즈'가 여론에 의해 조작된 거짓 이미지이며 실은 초라하고 볼품없는 중년의 아저씨로 밝혀지는 장면에서 현재에도 여전히 메시지를 지니고 있는 풍자를 느낄 수는 있지만 그런 점들이 작품의 주제로 두드러지는 것은 아니다.

이런 사실은 어쩌면 뮤지컬의 태생적인 결함에서 비롯된 것일지도 모른다.
뮤지컬은 그 시초가 되는 작품의 제목이 <서푼짜리 오페라>에서 나타나듯이 원래는 귀족들이 즐기던 문화를 대중들이 향유하고 싶다는 욕구에 맞춰 만들어진 창작물이다.
최초의 뮤지컬 전용 극장에서는 술도 팔고 여자들이 나와서 야한 의상으로 쇼를 하기도 하는 곳이었다.
공장에서 온종일 노동하고 퇴근하는 사람들이 피곤한 몸을 이끌고 들러서 스트레스를 풀었던 역사를 지니고 있다.
이후에 라디오와 텔레비전이 등장하면서 존폐의 갈림길에 몰렸던 뮤지컬 공연은, 설레는 에메랄드 시티를 찾은 '엘파바'와 '글린다'처럼 설레는 가슴을 안고 웨스트엔드와 브로드웨이를 찾아오는 관광객들을 대상으로 티켓을 팔며 기사회생을 하게 되었다.
뮤지컬의 효용은 심각한 내용으로 여흥을 깨기보다는 부담 없이 즐기고 잠시나마 시름을 잊게 만드는 대중적인(popular) 전략으로 본연의 임무를 수행하는 것이 선한 것(for good)이라고 보는 게 솔직한 평가라고 할 수 있다.

어렵고 힘든 시절, 뮤지컬을 관람하며 위안과 회복을 경험하고 더 나아가 다시 시작하고 싶다는 용기까지 받게 된 사람으로서 나는, 뮤지컬이란 문화 장르가 비싼 티켓값과 높은 진입장벽으로 인해 사람들에게 조금은 사악한(wicked) 존재로 인식되고 있는 현재의 상황이 가슴이 아프다.
마법 같은 일이 일어나서 뮤지컬이 조금은 더 대중들에게 다가가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
어쩌면 그게 내가 바라고 꿈꾸는 컬러로 된 꿈일지도 모르겠다.


*영상: 뮤지컬 <위키드> 하이라이트_1부

https://youtu.be/TLoJl0SaZ9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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