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궐 선거가 끝났다. 야권의 압승으로 희비가 갈렸다. 언론에서는 이번 선거에서 이십 대 남자 유권자들이 압도적으로 야당을 지지했다고 보도했다. 숨이 막히는 현실의 벽에 부딪혀 울분이 쌓이는 청춘의 표심이 핏빛처럼 선명하다.
셰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은 대략 15~16세기 이탈리아에서 젊은이들이 놓인 답답한 시대적 배경을 바탕으로 두 청춘 남녀의 뜨거운 사랑을 그려내고 있다. 원작을 바탕으로 수많은 연극과 영화와 오페라와 발레와 클래식과 만화와 게임과 애니메이션이 제작되었고 뮤지컬도 빠지지 않았다. 오늘 이야기하려고 하는 작품은 프랑스에서 제작된 <Romeo and Juliet>으로 2001년에 초연되었다. 내가 프랑스 뮤지컬을 사랑하고 아끼는 이유는 브로드웨이나 웨스트엔드에서 보기 힘든 특유의 '예술적 감각'이라고 말하고 싶다. 감각은 생각할 틈을 주지 않고 보거나 듣는 순간 그대로 느끼게 만드는 힘이다. 효시가 되는 <스타마니아(코로네이션볼)>는 물론이고 그 유명한 <노트르담 드 파리>와 <십계>, <모차르트 오페라 락>을 모두 챙겨본 관객으로서, 나는 한번 들으면 잊지 못할 음악 넘버들로 대사 없이 이어지는 성 스루(sung-through) 방식과 노래에 참여하지 않고 전문적인 안무로 육체의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앙상블의 몸짓과 색감이 풍부한 조명, 그리고 참신한 시도로 극의 완성도를 높이는 의상과 분장에 이르기까지 정말 작품의 구석구석까지 탐닉하고야 만다. 줄거리를 모르는 사람이 거의 없는 뮤지컬 <Romeo and Juliet>도 예외는 아니었다.
시작을 알리는 합창곡 '베로나(Verone)'는 단 한 곡으로 당시 그 도시에서 서로 반목하고 질시하는 '캐퓰렛' 가문과 '몬테규' 가문의 대립을 확실하게 전달하고 있다. 1막에 나오는 '세상의 모든 왕들(Les Rois Du Monde)'에서는 로미오를 비롯한 이탈리아 베로나 도시의 젊은이들이 추하고 나약한 기성세대의 위선을 온몸으로 비웃으며 자신들의 메시지를 드러내고 있으며, 2막에서는 로미오와 줄리엣이 모든 역경과 두려움을 이겨내고야 말겠다고 서약하는 넘버, '사랑이란(Aimer)'을 뜨겁게 열창한다. 모든 장면이 예술적으로 아름답고 움찔울찔하다.
모두가 알고 있듯이 마지막에 두 연인은 죽음으로 비극을 맞지만 이로 인해 두 집안이 화해를 하고 그들의 사랑이 헛되지 않았음이 입증되며 이 작품은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셰익스피어는 당시 현실에서 야만적인 힘의 논리로 돌아가는 세상을 미약해 보이는 사랑이 구원할 수 있다고 말하고 싶었는지 모른다. 문학이나 예술은 이렇게 비현실적인 주장을 사람들에게 들이대며 힘의 논리를 추앙하는 대중에게 외면당하고는 한다. 그들은 사랑은 개인을 구원할 수 있는지는 몰라도 세상을 바꿀 수는 없다고 단언한다. 정치는 그런 사람들에게 현실적인 종교이며 죽음까지 감수하는 신념이며 절대로 물러설 수 없는 전쟁 같은 것이다. 바로 그런 사람들이 모인 곳이 지금까지 이어지는 '캐퓰렛'黨이고 '몬텐규'黨이라고 말하고 싶다. 권력은 사랑만큼이나 시대를 초월하여 흔들림 없이 흐르고 있다.
셰익스피어는 '힘에 대한 사랑'이 지배하는 뒤틀어진 세상을 변하게 만드는 것은 '사랑의 힘'이라고 말하며 젊은이의 피를 대가로 그것이 가능하다고 전했다.
나는 정치가 문화나 예술처럼 사랑을 추구할 수는 없는 일이라고 말하고 싶다. 그렇다고 정치가 아무런 감동이나 쓸모가 없는 필요악이라고 말하고 싶지도 않다. 때로는 정치가 주는 감동이(아주 드물기는 하지만) 이루 말할 수 없이 위대하다는 체험을 우리는 겪어왔기 때문이다. 선거가 끝나고 여느 날과 다름없이 시작된 오늘 아침에 나는 이 땅의 젊은이들만큼은 고통스럽게 신음하며 절대로 피를 흘리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하며 지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