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마르뜨 언덕의 그림 같은 사랑, '벽을 뚫는 남자'

mu-17

by 김쾌대

매년 4월의 후반부는 이상하게 밋밋하다.
3월에는 겨울에서 벗어나는 꽃들의 향연이 눈과 마음을 온통 사로잡고 5월에는 잦은 공휴일들이 주는 설렘과 들뜸이 있는데, 4월 중순 이후에는 세월호 추모일에 울적해진 기운이 당분간 이어지는 듯 하다.
밋밋한 일상을 보내는 와중에 일교차가 큰 날씨는 어떤 옷을 골라서 입아야 하는 지 고민하게 만든다.
4월이 잔인한 이유는 갈피를 못잡고 흔들리는 심정이 선명한 무언가를 갈망하기 때문인 지도 모르겠다.
이를테면 사랑 말이다.

뮤지컬 <벽을 뚫는 남자>는 1940년 대 몽마르뜨에 있는 어느 우체국 직원들의 모습으로 시작한다.
격무에 시달리며 직장 상사에게 괴롭힘을 당하는 모습이 위대한 뮤지컬 <레미제라블>의 도입부에 나오는 죄수들처럼 비참하지는 않지만, 엄청난 뮤지컬 <프로듀서스>에서의 회계사무실의 그것처럼 무료하고 지겹게 그려진다.
그 중에서도 가장 찌질해 보이는 주인공 '듀티율'이 어느날 우연히 벽을 통과하는 초능력을 얻게 된다.
영화 등에서 느닷없는 이유로 갑자기 슈퍼 히어로가 되는 설정과 비슷하다.
신체를 가둘 수 있는 벽이 무용지물이 되면서 그는 처음에는 자신을 괴롭히던 직장 상사에게 소심하게 복수를 하더니 점점 대담해지면서 부자들이 꽁꽁 숨겨놓은 재물을 털어 가난한 자들에게 나눠주며 의적이 된다.
그 과정에서 여러차례 체포되어 감옥에 갇혀도 벽을 통과하는 탈옥은 그에게 식은죽 먹기처럼 쉽다.
그러던 어느 날 듀티율은 한 여인을 보고 첫눈에 반하게 된다.
그녀의 남편은 검사의 신분이었는데 아내를 지나치게 의심하며 거의 감금과도 같은 만행을 저지른다.
그녀를 구출하기 위해 그는 목숨을 걸고 동반 탈주를 시도하다가 벽에 갇혀 굳어지며 죽고 만다.
왜냐하면 그의 초능력은 그가 진정한 사랑을 깨달았을 때 사라지는 조건이 걸려있었기 때문이었다.

프랑스 뮤지컬이다보니 음악 넘버들이 계속해서 이어지는 성스루(sung-through) 형식이다.
작곡가인 '미셀 르그랑'은 영화 <007 시리즈> 등으로 아카데미 영화음악상을 3번이나 받았고 그래미상은 무려 5번이나 받은 거장이다보니 모두 48곡이나 되는 곡들이 깨알같이 펼쳐지는데도 지겹지 않다.
그토록 많은 곡들을 미련하게 우겨넣은 듯 보이는 이유도 실상은 앙상블 배역 하나하나까지 염두에 두고 개인별 맞춤형으로 만들어주어서 그렇다고 하니 그의 배려심이 각별하게 다가오기도 한다.
브로드웨이나 웨스트엔드 대극장 뮤지컬에서 웅장하고 드라마틱한 테마곡들이 심심찮게 나오는데 반해 <벽을 뚫는 남자>에서 대부분의 넘버들은 소시민들의 정서처럼 소소하고 정겹고 아기자기하다.
몽마르뜨 언덕이 화가들의 집결지로 유명하듯이 48곡들은 무대 디자인에서 보여지는 파스텔풍의 수채화를 닮은듯 한 겹 한 겹 켜켜이 엷게 칠해지면서 점점 깊이를 획득한다.
그렇게 가랑비에 옷이 젖듯이 극에 몰입하다가 마지막 장면에서 '듀티율'이 벽에 반쯤 갇혀 굳어지게 되는 모습을 보았을 때 가슴 밑바닥에서부터 뜨거운 눈물이 소리없이 흘러 내리기 시작한다.

이 뮤지컬의 부제가 '몽마르뜨 언덕의 사랑 예찬'이라고 되어 있는데 사랑이란 통닭처럼 화끈하게 타오르기도 하겠지만 대부분은 삼계탕처럼 은근하게 배어나오며 차오르는 일이 다반사이다.
부모가 자녀를 사랑하는 일, 배우자가 서로를 사랑하는 일, 친구들이 오랜 시간 우정을 지키며 살아가는 일 등은 벽을 뚫어 버릴 정도의 초능력으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덤덤하고 무심하게 똑같은 일들을 반복하면서 켜켜이 두터워지는 평범한 기적이 아닐까 한다.

수채화가 화가의 손에 의해 투명한 덧칠함들로 완성되듯이.
4월의 무료한 마지막 날들이 그렇게 구름처럼 지나가 듯이.


*영상: 2015년 국내 프레스콜 스케치

https://youtu.be/LuLM4KGs6z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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