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필요한 간섭이 넘치는 세상, '나는 나만의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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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도쿄 올림픽>에서 양궁 부문 금메달 3관왕의 자리에 올라선 '안산'을 향한 관심이 뜨겁다.
세계 정상에 오른 주인공의 비하인드 스토리는 흔히 메달 수상이라는 뉴스에 더해서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는 미담으로 이어진다.
양궁 부문의 김제덕을 어린 시절부터 키우시고 현재 요양 병원에 계신 그의 할머니가 '개밥 주러 가자'라는 응원을 보낸 사연, 체조의 신재환이 학창 시절 허리디스크 부상으로 걷지도 못하는 고통에 시달리다가 허리에 철심을 박고 끝내 도마 부문에서 자신을 이겨낸 사연은 물론이고, 꼭 금메달이 아니어도 아빠에 이어 올림픽 메달리스트에 오른 체조의 여서정이나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당차고 패기 있는 10대의 저력과 가능성을 확인하게 만든 황선우(수영)와 신유빈(탁구)의 모습들이 그런 이야기들이다.
이런 미담들과 달리 안산 선수는 뜻하지 않게 '페미' 논란에 휘말리며 악담에 시달려야 했다.
그녀는 마치 양궁의 과녁대가 된 것 같았고 수도 없는 폭력의 화살이 그녀의 가슴에 꽂혔다.
뮤지컬 <엘리자벳>은 19세기 오스트리아-합스부르크 제국의 황후였던 '엘리자베트 폰 비텔스바흐'의 일대기를 다룬 작품으로, 국내에서 뮤지컬 <모차르트!>, <레베카>, <마리 앙투아네트> 등으로 알려진 미하엘 쿤체(작사)와 실베스터 르베이(작곡) 콤비의 히트작 가운데 하나이다.
작품의 주인공인 '엘리자벳'은 전해지는 사진이나 그림에서 보면 당대 최고의 미녀라고 불려도 손색이 없을 정도이다.
당시 바이에른의 공주였던 그녀는 부유한 환경에서 수영, 승마, 체조 등을 즐기는 활동적이고 사교적인 성격이어서 빼어난 외모에 더해 대중들은 그녀를 시씨(SiSsi)라는 애칭으로 부르며 사랑했다.
그런 그녀에게 반해 오스트리아의 황제였던 '프란츠 요제프 1세'가 청혼을 했고 그녀는 마침내 낭만적인 결혼을 통해 당시 유럽에서 여성으로 누릴 수 있는 최고의 자리에 도달하게 된다.
하지만 그녀의 행복은 거기까지였다.
<한국문화정보원>에서 운영하는 문화 포털 사이트 내 '공감 리포트'에서 발췌한 그녀의 결혼 생활은 다음과 같다.
"(시어머니였던) 조피 대공비는 보수적인 황실과 어울리도록 엘리자벳을 교육하려 했지만, 자유롭게 자란 그녀의 천성에는 맞지 않아 두 사람은 여러모로 부딪히게 되었습니다. 귀족들도 엘리자벳의 앞에서는 충복 하는 듯 행세했지만, 뒤에서는 지방 출신 왕후가 황실의 법도를 어긴다며 비웃고 무시했습니다. 모든 것이 억압된 왕궁에서 정신적 압박을 느낀 엘리자벳은 음식을 거부하다가 거식증까지 걸리고 말았습니다... 엘리자벳, 즉 시씨는 결혼 후 얼마 되지 않아 임신하고 첫째 딸을 낳았지만, 조피 대공비는 그녀가 어리고 교양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양육권을 빼앗습니다. 둘째를 낳았을 때도 첫째 딸과 같이 조피 대공비 마음대로 이름을 붙이고 또 데려가 버렸습니다. 프란츠 요제프 1세가 대공비에게 부탁하여 시씨가 아이들을 키우게 되었지만, 여행 중 첫째 딸을 잃고 다시 양육권을 잃습니다. 이후 태어난 황태자인 루돌프조차 데려가 버리고, 허락 없인 만날 수조차 없게 해서 두 사람 관계는 나빠져만 갔습니다... 이런 중에 남편인 프란츠 요제프조차 외도를 해서 엘리자벳은 마음을 의지할 데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아예 빈을 떠났다가 아버지의 강요와 황제의 부탁으로 돌아왔지만, 더 이상 그곳에 머물지 않았고, 다른 나라를 돌아다니며 여행하는 것으로 마음의 위안을 얻었습니다..."
그녀는 첫아들인 루돌프 황태자가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에 빠져 괴로워하다가 1889년에 자살을 하게 되자 슬픔과 상실감에 빠져 정처 없이 세상을 떠돌며 방황하며 지내다, 결국 마음을 달래러 간 1898년 스위스 제네바에서, 아나키스트 루이스 루케니의 칼에 찔려 61세로 생을 마감하게 된다.
뮤지컬에서는 역사적으로 비운의 삶을 살았던 그녀의 심정을 더욱 선명하게 드러내기 위해 가상의 인물, 죽음을 의인화한 '토드'(Tod)를 등장시켜 극적인 효과를 극대화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자유롭고 활달했던 엘리자벳의 어린 시절, 나무에 올랐다가 떨어진 그녀를 처음 만나서 평생 그녀의 주변에서 그녀를 유혹했던 토드의 메시지는 '오직 나만이 너를 자유롭게 해 줄 수 있다'라는 것이었고, 그녀는 결국 죽음을 선택함으로써 그토록 원했던 자유를 얻을 수 있었다는 것이 작품의 줄거리이기도 하다.
7월 30일 도쿄의 유메노시마공원 양궁장에서 우승을 차지한 안산은 시상식이 끝나고 자신을 격려하는 양궁 협회 정의선 회장 앞에서 끝내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면서 평생을 죽음과 동행하며 자신의 운명과 싸웠던 '엘리자벳'을 떠올렸다.
그리고 이번에 그녀의 숏컷 사진과 함께 늘 등장했던 '귀도 레니'가 그린 초상화의 주인공인 <베아트리체 첸치>가 걸었던 그 가혹하고 끔찍한 일생에 대해서도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었다.
죽음이란 괴물의 가장 고전적이고 전형적인 무기는 바로 <폭력(성)>이다.
육체적으로 학대를 하고 강간을 하는 것만이 폭력은 아니다.
비난으로 가득한 멸시, 편견에 뿌리를 둔 혐오 같은 것들이 그 대상이 되는 사람의 정신을 먼저 죽이면 육체적인 죽음은 단지 뒷마무리에 불과할 뿐이다.
공격을 받는 사람은 마치 새장에 갇힌 새처럼 괴로워하며 숨을 쉬고 싶은 자유를 꿈꾼다.
세상의 어느 누구도 감히 다른 이들의 가장 존엄한 그 자유를 가로막을 권리가 없는 것이다.
수도 없는 뮤지컬을 관람한 내가, 세 손가락 안에 꼽을 정도로 사랑하는 넘버가 바로 <엘리자벳>에 나오는 '나는 나만의 것'인 이유도 어린 시절 나 역시 바로 그러한 자유를 꿈꿨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