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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쾌대 Oct 04. 2023

이솝 우화: 반백 머리 남자와 그의 애인들

독후 단상

머리카락이 희끗희끗한 반백 머리 남자에게 애인이 둘 있었는데, 한 명은 남자보다 어렸고 다른 한 명은 남자보다 나이가 많았다. 나이 많은 여자는 연하 남자와 가까이 있는 것이 창피해서 만날 때마다 그의 검은 머리카락을 뽑았고, 젊은 여자는 애인이 늙은 것이 싫어서 만날 때마다 그의 흰 머리카락을 뽑았다. 두 여자에게 번갈아 머리카락을 뽑힌 남자는 결국 대머리가 되었다.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히는 이야기이다.

남자는 두 여자를 하나라도 잃고 싶지 않아 우유부단하게(줏대 없이) 처신을 했다.

애인이 둘이나 있는 사실이 부러움으로 다가오기도 전에 어리석은 자에게 분에 넘치는 행운은 오히려 독이 될 수도 있다는 교훈으로 다가온다.


내게도 연상과 연하 두 명의 여자가 나를 두고 서로 기 싸움을 한 적이 있었다.

신혼 초, 어머니와 아내의 신경전을 사이에 두고 골치가 아팠던 기억이 난다.

난 그 당시 이를 악물고 무조건 아내 편을 들었다.

어머니는 너무 서운해서 가끔은 식음을 전폐하실 정도였고 온갖 악담을 내게 쏟아부으셨지만, 나는 누구와 더 오래 함께 살아야 할지만 생각했다.

삼 년이 되지 않아 상황을 파악하신 어머니께서 태세 전환을 하셨다.

아들놈의 마음이 확인되자 그때부터 아들과 함께 지내는 여자에게 다가가셨고 난 더 이상 머리가 아프지는 않았다.

물론 결혼 후 다음 해에 태어난 손자가 어머니의 전투력을 크게 위축시킨 것도 큰 힘이 되었다.


친한 친구도 생각이 난다.

그는 그 유명한 S 전자의 기술 파트 부서장 직책을 맡아 몇 년 동안이나 헌신을 했다.

그러다가 작년에 몸에 이상이 느껴 회사의 앰블런스에 실려 응급실까지 가야 했다.

가벼운 뇌경색 소견이 나와 요즘은 예전처럼 고된 일에 시달리지는 않는다고 한다.

그가 격무에 시달렸던 이유는 젊은 부서원들이 자주 이직을 하며 회사를 뛰쳐나가서 진행하는 프로젝트들의 백업을 했기 때문이었고, 그보다 나이 많은 상사들이 관리에 더 신경을 쓰라고 스트레스를 줬기 때문이다.

위아래로 시달리던 그가 아무리 인사팀에 충원을 요청해도 충원이 되지 않다가 응급실에 다녀온 이후 즉각적으로 요청했던 인원의 두 배수가 넘게 팀으로 배정됐다고 한다.


살면서 욕망이나 갈등의 교차로에 잘못 들어서서 외롭게 희생당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하지만 만약 그 자리에 처하게 된다면 희생을 감수하려는 용기가 필요하지 않을까?

반백 머리의 남자는 용기를 내어 아무 행동도 하지 못했기 때문에 가진 것마저 잃게 된 것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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