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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쾌대 Oct 12. 2023

이솝 우화: 신을 두고 시비가 붙은 두 남자

독후 단상

"다른 나라에 사는 두 남자가 테세우스와 헤라클레스 중 어느 쪽이 더 위대한지를 두고 시비가 붙었다. 이 사실을 알고 화가 난 테세우스와 헤라클레스는 다른 신을 위대하다고 하는 남자의 나라를 응징했다."


이를테면 A라는 남자는 테세우스가, B라는 남자는 헤라클레스가 더 위대하다고 떠들다가 테세우스는 B의 나라를, 헤라클레스는 A의 나라를 응징해서 망하게 했다는 얘기이다. 이번 이야기는 생각하는 데 시간이 좀 걸렸다.


예전에 어느 드라마에서 정주영 회장이 임원진을 모아놓고 회의를 하던 장면이 생각난다. 당시 대선을 앞두고 선거 자금을 여당 후보에게 줘야 하는지 혹은 야당 후보에게 줘야 하는지를 결정해야 하는 자리였는데 과연 누가 대통령이 될 것인가를 놓고 고민하는 모습이 나왔다. 선택 여부에 따라 당선자에게 특혜를 받을 수도 있고 미운털이 박혀 기업이 날아갈 수도 있는 상황. 임원진들이 선뜻 의견을 내지 못하자 정주영 회장역으로 분한 배우는 허공을 보며 깊은 탄식을 했던 기억이 난다.


내 기억이 맞다면 정주영 회장은 여당 후보와 야당 후보 모두에게 자금을 건네려고 했고, 단지 누구에게 더 줘야 하는지 또한 금액은 어느 정도로 맞춰야 하는지를 놓고 고민했던 것으로 안다. 살면서 안전을 위해 양다리를 걸치는 경우도 있다. 이 경우에는 최소한의 비용으로 최대의 효과를 내야 하는 일이 관건일 것이다. 로또에 당첨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모든 경우의 숫자를 표기하면 된다. 단지 거기에 당첨금보다 더 큰 비용이 들어가기 때문에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이다.


예전에 들었던 또 다른 유머 이야기도 생각났다. 어떤 여자가 밤에 자기 남자 친구에게 전화해서 날씨 때문에 자기 전에 창문을 열지 말아야 할지를 물어보았다고 한다. 열고 자자니 춥고 닫고 자자니 답답하다는 고민이었는데 '이럴 때 어떻게 대답을 해야 여자 친구가 좋아하겠는가'라고 사회자가 청중에게 물었다.


질문을 받은 청중은 각자의 논리를 가지고 자신의 의견을 피력했다. 가장 우스꽝스러운 대답은 '반쯤 열어놓고 자라'는 내용이었다. 사회자가 정답을 말했다. "지금 몸 상태는 어떠냐? 혹시 몸이 좋지는 않은 거냐?"라고 했다. 양다리도 문제지만 어설프게 혼합해서 절충안이랍시고 내뱉는 일도 어리석고, 상대의 진짜 심정을 헤아리지 못하고 시시비비를 가리며 자기주장을 하는 일도 꼴사나운 일일 것이다. 정치를 잘 모르거나 혹은 정치를 혐오하는 사람들이 양비론(兩非論)을 들어 '중도'를 표방하며 미적지근한 태도로 입장을 표명하지 않는 일이 떠오르는데 실은 그들은 비겁한 것임을 우리는 알고 있다.


비겁한 일로 치자면 테세우스와 헤라클레스도 뒤지지 않는다. 그들이 인간을 초월한 神이라면 자신을 추앙하는 인간들을 위해 서로 맞짱이라도 떠서 우열을 가려 질서를 잡아줬어야 하는 것 아니겠는가. 그들은 쩨쩨하게 뒤에 숨어있다가 인간으로 하여금 대리전(代理戰)을 치르게 하더니 애꿎은 비방자들에게 분풀이를 하고 말았다. 그들이 현명하고 용감했다면 차라리 자기를 추종하는 자를(테세우스는 A를, 헤라클레스는 B를) 징벌하는 게 나았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하면 A와 B의 자녀들이 서로 원수가 되어 서로 죽이는 비극이 되풀이되지 않아도 될 것이기 때문이다. 어떤 神은 인간 세상에 내려와 스스로 죽음으로써 사랑을 호소하기도 했다.


인간은 신들의 체스판에 동원되는 말이 아니다. 神의 이름으로 자행되는, 그래서 성전(聖戰)이라 불리는 모든 어리석은 파행이 사라지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p.s)

문득 자녀를 키우는 일이 생각났다. 자식은 요물이어서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때도 있다가 또 어떤 때는 호적에서 파버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렇다고해서 예쁘고 대견할 때만 자식이고 그렇지 않을 때는 남의 자식이라 치부할 수 없는 노릇이다. 부모의 사랑은 양다리를 걸치지도 않고 절충안을 관철시킬 수도 없다. 부모의 자리에서 인간은 神의 심정을 헤아리고 비로소 겸손해 질 수 있는 것이다. 진정한 神의 대리자로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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