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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쾌대 Oct 18. 2023

이솝 우화: 난파당한 사람

독후 단상

한 부유한 아테네 사람이 다른 여행자들과 함께 배를 타고 항해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광폭한 태풍이 불어닥쳐서 배가 전복되었다. 다른 승객들은 헤엄을 쳐서 목숨을 부지해 보려고 안간힘을 썼지만 유독 그 아테네 사람만은 계속 여신 아테나(그가 사는 도시의 수호신이었다)의 가호만을 빌면서 여신이 자신의 목숨을 살려만 준다면 공물을 무제한으로 바치겠다고 약속했다. 함께 조난을 당한 승객들 중의 한 사람이 보다 못해서 그의 옆으로 헤엄쳐 가서 말했다. “아테나 여신에게 호소하는 것도 좋지만 우선 당장 당신의 양팔도 허우적거려 보라고요!”


이번 우화에서 즉각적으로 떠오르는 격언이 하나 있다. 누구나 예상하듯 그건 바로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라는 말이다. 그에 못지않게 사람들에게 회자되는 문구는 바로 '진인사대천명: 盡人事待天命,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을 다 한 결과는 운명에 따름'이 아닐까 한다. 더 이상 무슨 설명이나 부연이 필요할까?


너무 뻔한 얘기여서 상상력을 좀 발휘해 보기로 한다. 만약에 현대에 와서 같은 상황이 벌어진다면 부자는 양팔을 움직여 방수 기능이 탑재된 스마트폰을 열어 GPS를 연결하여 구조 신호를 보내고, 고액의 보험료를 수납해 온 생명보험회사에서 VIP용으로 제작되어 운영되고 있는 초특급 헬기를 수 분 이내로 사고 지점으로 출동시켜 고객을 안전하게 구조해 내는 일이 벌어지는 그런 쓸데없는 생각 말이다. 보험회사 이름이 [아테나 라이프]라면 더 극적이 되겠다는 뭐 그런 잡생각…. 현대에 와서 인간의 길흉화복과 생살여탈권을 쥐고 있는 수호신은 재물(財物)을 관장하며 황금만능주의와 물신주의라는 자식들을 좌우로 거느리며 풍요의 상징으로 군림하고 있지 않은가.


하늘은 공평해서 부자에게나 가난한 사람들에게 공평하게 햇빛을 비추고 비를 내리지만, 부자들에게는 가난한 사람들이 가지고 있지 않은 양산이나 우산이 있어서 자외선이나 폭우를 피할 수 있고, 더 큰 규모로 들이닥치는 광폭한 태풍 같은 재난이나 재앙에서도 상대적으로 안전한 것이 냉정한 현실이다. 그래서 우리는 위의 예화에서 빈부를 막론하고 모두가 바다에 빠져 죽을 공평한(?) 처지를 비웃듯 각 개인이 정신 바짝 차리고 노력하고 또 노력해서 불공평한 빈부격차의 굴레를 벗어나라는 교훈(lesson)을 발견하며 결의를 다지는 것인지도 모른다. 각자도생의 시절에 영혼까지 끌어모은다는 '영끌'이란 용어가 유행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게으름을 미화하고 감나무 아래에서 입을 벌리고 요행을 바라는 행태를 미화하거나 두둔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단지 가난과 불행이 그저 스스로 노력하지 않는 각 개인의 책임이자 결과로만 쉽게 치환되는 의식의 흐름이 초라하고 앙상하게 보인다는 심정을 말하고 싶을 따름이다. 약간은 답답한 마음에 두 손을 움직여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라는 원문이 되는 영어 문장을 찾아보았다. "Heaven helps those who help themselves." 이토록 반듯하고 무심한 문장을 앞에 두고 옆으로 눈을 흘기며 한참을 바라보게 된다. 그러다가 환시처럼 뒤에 생략되어 있을 법한, 정확히 말하자면 강제로 생략된 것이 아닐까 하는 의혹이 드는 추가 문장이 매직아이처럼 떠올랐다.


"Heaven helps those who help themselves (each other)."


만약에 themselves 자리에 himself라고 단수로 나왔다면 헛것이 보였을 리 없었으리라.

그래서 위의 예화에서 아테나 여신에게 기도했던 부자의 잘못이 노력을 안 하고 그저 나태하게 빌기만 했다는 사실을 뛰어넘어 적극적으로 다른 사람을 구조하기 위해 어떤 노력도 기울이지 않았고, 그리하여 어쩌면 숭고한 희생정신을 지닌 영혼으로 후대에 전해지는 기회를 스스로 박차버린 것은 아닌가라는 생각까지 미치게 되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생각은 '하늘이 돕는다'라는 말의 뜻은 인간이 목숨을 부지하며 연명하는데 수액주사 놓듯이 치사한 방법을 쓴다는 것이 아니라, 큰 뜻을 품고 존엄한 정신을 지키며 위대하게 죽는 방법에 대해 인간과 얘기하며 풀어나가고 싶어할지도 모른다는 데까지 이르렀다.


그쯤 돼야 치졸하고 쩨쩨한 인간 따위가 감히 범접하지 못하는 경지에 있는 '하늘'이고 '여신'이라 할 수 있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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