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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쾌대 Oct 25. 2023

이솝 우화: 협잡꾼

독후 단상

협잡꾼이 어떤 사람에게 델포이의 신탁이 거짓임을 증명하겠다고 약속했다. 정해진 날짜에 그는 작은 참새 한 마리를 집어 들더니 그것을 외투 밑에 감추고는 신전을 향해 떠났다. 그는 신전 앞에 서서 자기 손안에 있는 것이 살았는지 죽었는지 물었다. 그는 신이 "죽었다'라고 말하면 살아있는 참새를 내보이고, "살아 있다"라고 말하면 목 졸라 죽인 뒤 내놓을 참이었다. 신은 그의 사악한 의도를 알아차리고 대답했다. "이봐, 그쯤 해둬! 네가 쥐고 있는 것이 죽었느냐 살았느냐는 너한테 달려있으니까 말이야."


협잡꾼이라고 번역이 되었지만, 그는 아마 이솝이 살았던 기원전 6세기를 지나고 페르시아 전쟁에서 크게 승리한 그리스에서 활동하던 소피스트(궤변론자)의 시조와도 같은 존재였을 것이다. 그들은 민주주의라는 시스템을 고안하고 실행한 그리스의 국민의회에서 연설을 하거나 재판소에서 원고나 피고로서 자기의 입장을 개진할 필요성을 느낀 아테네 시민의 필요(수요)에 부응하기 위해 생각하고 말하는 기술을 가르치는(공급) '지식 유통업자'라고 알려져 있다. 그들의 특징은 상대주의에 근거해 절대적인 옳고 그름에 대한 기준을 부정하고 어떤 행위의 동기나 과정보다는 결과를 중요시했다는 점이다. 어느 편이 이기고 어느 쪽이 더 큰 성과를 올리느냐에 따라 선과 악이 구별된다고 주장한 것이다. 머나먼 옛날에 벌어진 일인데 어쩌면 이렇게 생생하게 피부로 전해지는 상황인지 모르겠다.


이제 우리는 '검찰 공화국'이란 말이 하나도 어색하지 않은 시대를 지나고 있다. 고귀한 법의 정신이 무너지고 그 자리에 권력을 잡은 자의 의도와 심중이 놓이게 되었다. 협잡꾼과 다를 바 검사들의 궤변으로 힘 있고 권력 잡은 세력의 입맛에 맞는 공소장이 작성된다. 그들은 어쩌면 예전 그리스의 소피스트들이 자신을 스스로 '고상한 철학자'라고 일컬으며 오만한 태도로 목에 힘을 주고 대중을 대했던 것처럼, 자기 내면에 '파워엘리트'라는 자뻑스런 자부심을 지닌 채 발걸음도 가볍게 출퇴근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들의 꼬락서니가 한심한 이유는 자신들이 사욕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그렇지 않은 것처럼 위장을 한다는 것인데, 이는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고 하는 시도'와도 같은 행태가 아닐 수 없다. 그리고 그런 한숨이 나오는 상황에서 힘없는 갑남을녀들은 협잡꾼의 손안에 들어간 참새처럼 재수가 없으면 목이 졸려 죽을지도 모르는 현실까지 감당하며 지내야 하니 한숨이 탄식으로 바뀌며 깊어지고 있다는 상황의 전개를 부정할 수가 없는 노릇이다.


한편 소피스트들이 철학사에서 부정적인 영향만을 끼친 것은 아니었다. 비록 그들이 플라톤을 중심으로 하며 무상으로 지식을 전파하던 상대편 진영과는 달리 수요자에게 돈을 받아 챙기는 행태로 당대의 사람들에게도 지탄을 받은 것이 사실이지만, 그들의 회의적인 태도는 이후 철학사의 발전에 일조를 담당한 것도 사실이다. 특히 르네상스 시대에 이르러 중세를 거치며 교조적으로 굳어버린 신학에 맞서 폭발적인 과학 혁명을 가능하게 한 자양분을 제공한 것이 소피스트들에게서 태동했던 '절대적인 것은 없다'라는 생각과 '인간은 만물의 척도'라는 기본 정신에 있다고 해도 지나친 비약은 아닐 것이다. 게다가 고전 물리학을 추동했던 절대적인 원리에 의해 우주의 질서가 유지된다는 신념이 깨지고 아인슈타인의 '특수상대성이론'을 거쳐 양자역학에 이르러서는 '불확정성 원리'에까지 도달하고 있으니, 현재 과학계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보면서 죽은 소피스트들이 과연 어떤 생각을 할지도 궁금한 일이다. (위의 예문에서 나온 협잡꾼 손안의 참새나 슈뢰딩거의 고양이는 본질적으로는 완전히 다른 얘기지만 형태적으로는 쌍둥이처럼 유사한 예화가 아닌가!)


단상을 마무리하면서 나는 철학이나 과학을 넘어서서 위대한 신앙이 무엇인지 보여준 한 사람의 이야기를 말하고 싶다. 기원전(B.C)과 기원후(A.D)를 나누게 만든 이스라엘 갈릴리 지역에서 온 그에게 어느 날 종교 지도자와 율법 학자들이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걸린 여인 하나를 잡아 데리고 와서는 '이 여인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졌다. 만약에 평소 사랑을 설파하던 사내가 '용서하라'라고 한다면 하나님의 계명인 율법을 파기하며 신성을 모독하는 것이고, '처형하라'라고 한다면 자기주장을 부정하는 자가당착에 빠져 사람들의 신망을 잃고 영향력을 상실하게 될 것이라는 전형적인 함정 수사의 표본을 보였다. 그리스의 협잡꾼은 자기 논리의 우월성을 뽐내기 위해 신에게 질문을 던졌지만, 당시 사회지도층이었던 그들은 오로지 사내를 처형하여 죽이려는 마음뿐이었다. 이 진퇴양난의 상황에서 사내는 델포이의 신과는 다른 대답을 내놓았다.


'너희 중에 죄가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간사스러운 궤변을 뚫고 멀리 생명의 근원에서 발원된 명징한 통찰의 정언(正言)으로 인해 사람들의 폭력 앞에서 손안의 참새처럼 떨던 여인은 목숨을 건졌다. 협잡꾼과 델포이의 신 사이에서 벌어진 대화에서 생사여부가 불분명했던 참새와는 다르게 끝이 난 이 이야기를 나는 더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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