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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쾌대 Oct 27. 2023

이솝 우화: 암송아지와 황소

독후 단상

"황소가 일하는 모습을 보고 암송아지 한 마리가 고생한다며 동정했다. 그때 축제 행렬이 지나가면서 사람들이 황소는 멍에에서 풀어주고 암송아지는 제물로 바치기 위해 붙잡았다. 황소가 사람들에게 잡힌 암송아지를 향해 웃으면서 말했다. "암송아지야, 너는 곧 제물로 바쳐질 거야. 그래서 너에게 아무 일도 시키지 않았던 거야.""


미국 맨해튼 남부에 월스트리트 증권가가 있고 그곳엔 황소와 곰의 동상이 세워져 있다. 주식시장이 황소는 '오름세', 곰은 '약세'를 뜻한다는 사실은 이제 어느 정도 상식이 되었다. 황소는 뿔이 위쪽으로 치솟아 있고 싸울 때 그 뿔을 들면서 공격을 하는 습성이 있는데, 증시의 지표가 파죽지세로 상승하는 활황(活況)을 염원하는 투자자들의 심리를 반영하였으리라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이솝은 자본주의 시대의 꽃이란 불리는 증권시장이 등장하기도 아주 까마득한 옛날에 왜 황소를 얘기했을까?


이솝이 살았던 시절인 기원전 6세기는 엄연한 계급사회였다. 귀족이 있고 노예가 있었단 뜻이다. 노예 출신으로 남다른 통찰을 지닌 그가 마침내 자유의 신분을 얻었지만, 어쩌면 그는 하층민 위에 군림하며 그들의 노동력을 기반으로 풍족하고 사치스러운 생활을 누리는 유한계급(有閑階級)인 상층부에 대한 뿌리 깊은 적대감을 지니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런 그의 눈에 비친 '나 오늘 한가해요~'를 일말의 부끄러움도 없이 떠들며 흥청망청 쾌락에 빠져 지내는 귀족 계급의 모습은 포동포동 살이 오른 암송아지의 그것과 다를 바 없어 보였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위의 예문에서 나온 '축제'(festival)는 내 눈엔 '혁명'(revolution)으로 읽힌다. 그는 직접적으로 대중을 선동할 만큼 용감하지는 않았지만, 잊혀지지 않는 이야기를 통하여 민중들이 언젠가는 각성하고 마침내 황소의 뿔처럼 무시무시한 기세로 세상을 뒤집어엎고 불평등하고 불공정한 사회가 제대로 잡히기를 넌지시 소망하지는 않았는지 추측해 본다. 암송아지가 기름지고 풍만할수록 축제의 기쁨은 더욱 커지고 환호성은 더 높아진다는 마음으로 말이다.


보면 볼수록 이솝은 참 무서운 사람이란 생각이 든다.


p.s)

문득 성경에 나오는 암소 이야기가 떠오른다.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패한 이스라엘은 언약궤마저 빼앗긴다. 구약에서 언약궤는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표징이자, 이스라엘 민족의 신앙적 구심점과도 다를 바 없는 절대가치를 지닌 성물(聖物)인데 그걸 탈취당한 것이다.


그렇게 약탈당한 언약궤가 적진에서 온갖 재앙을 일으켜서 블레셋 사람들이 마침내 그걸 이스라엘로 돌려보내기로 결정하는데, 이때 멍에를 메어보지도 않고 게다가 아직 젖이 나오는(출산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암소 두 마리를 끌어다가 수레를 메게 하고 송아지를 집에 가둔 채 소몰이꾼도 없이 수레를 떠나보낸다.


수레에 길들여지지도 않고, 인도자도 없고, 자녀(송아지)와 생이별을 한 암소 두 마리가 이끄는 그 수레가 이스라엘 땅으로 돌아갈 확률은 거의, 아니 전혀 없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기적은 인과율에 사로잡힌 확률을 뛰어넘는 초자연적인 현상이다.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고 똑바로 이스라엘 땅으로 돌아가는 수레를 보면서 블레셋 사람들은 벌벌 떨었다.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는다는 말은 공평하고 공의로운 이스라엘 하나님의 의지를 반영한다.


예전에 블레셋이라 불렸던 팔레스타인 민족과 이스라엘의 전쟁이 지금까지 그치지 않고 계속되고 있다. 인간들의 혁명이 더 이상 효력을 발휘하지 못하게 된다면, 그때는 초자연적인 神이 필연적으로 개입하고야 말 것이다. 왜냐하면 그때의 神이란 자기가 만든 피조물인 인간을 사랑하여 무엇이든 아끼지 않고 주는 존재여서, 견디다 못한 사람들의 입에서 이제 제발 이 불행을 끝내달라고 간절하게 외치게 된다면 그것을 외면하지는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부모의 주검 앞에서 강제로 생이별을 당하며 피눈물을 흘리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아이들을 위해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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