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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쾌대 Sep 26. 2023

이솝 우화: 여우와 큰 뱀

독후 단상

"길가에 무화과나무 한 그루가 있었다. 큰 뱀이 무화과나무에서 자는 모습을 본 여우는 그 큰 몸집이 부러웠다. 큰 뱀과 같아지고 싶어진 여우는 그 옆에 누워 자신의 몸을 늘리려 했다. 그러다 너무 무리한 나머지 몸이 찢어지고 말았다."


여우의 어리석음은 어디에 있었을까?


뱀이 성장하는 방식은 '탈피'라는 과정을 통해서이다. 쉽게 말해 '허물을 벗으면서' 자란다는 말이다. 겉껍질은 자라지 않고 속살만 차오르기 때문에 옛것은 버리고 새것을 입어야 한다. 완전히 새로운 모습으로 바뀌는 것이기 때문에 '변태'(變態) 혹은 '탈바꿈'이라고 불린다. 일종의 '와신상담'을 통하여 '괄목상대'를 이루는 것인데, 여우가 본 자고 있던 뱀은 어쩌면 자신이 한 단계 뛰어오르는 순간을 꿈꾸며 잠잠히 기다리고 있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포유류인 여우는 그렇게 크지 않는다. 태어나서 일정 기간 키와 몸무게가 점진적으로 늘어난다. '성장 발달 곡선'으로 보자면 일정한 각도로 우상향으로 증가하다가 어느 순간 멈추고 유지하는 모습이다. 과장해서 얘기하면 잠시도 쉬지 않고 누룩 넣은 빵이 부풀어 오르듯 조금씩 조금씩 부푸는 형국이다.


'일신우일신'(日新又日新)이란 말이 절로 떠오른 데 하루하루 새로워지려는 노력이 생각난다. 여우는 차근차근 기다림을 생략하고 일확천금을 꿈꾸었다. 여우의 잘못은 자신이 도대체 어떻게 생겨 먹은 존재인지 몰랐다는 것이다. 자기가 누구이고 어떤 존재인지에 대한 정확한 이해 없이 무분별하게 타자를 모방하며 따라 하는 존재는 현실을 무시하고 허황된 망상을 꿈꾸곤 한다.


어떻게 하면 헛된 꿈에서 깨어날 수 있을까?


잠에서 깬 큰 뱀이 사지가 찢어진 어린 여우를 보면서 했을 말이 연상된다. "지랄이 풍년이군. 어린놈이 꿈을 꿨구나…." 뱀은 저놈이 저리될 때까지 누구 하나 말리지 않았을 사실에 더 큰 개탄을 했을 것이다. 여우의 불행은 자신의 어리석은 행동을 막아 줄 부모나 친구가 없었다는 점이다. 아니, 누군가가 곁에서 말리려고 했더라도 여우는 그 충고를 듣지 않았을 확률도 높다.


우리는 살아오면서 삶의 어떤 순간에 마치 뭐에 홀린 것처럼 맹목적으로 한 방향으로 돌진했던 기억이 한 번쯤은 있다.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에는 브레이크가 없다는 특징이 있다. 눈이 멀어 맹렬하게 돌진하다가 궤도를 이탈해서 탈선하고 나서야 비로소 깨닫는다. 자신이 구름을 쫓아 산길을 헤매다가 마침내 낭떠러지로 추락하고야 말았다는 사실을. 그래도 삶이 위대한 이유는 절벽 밑이 끝이 아니라는 점이다. 인생은 사지가 찢어지지는 않는다.


우리(我) 마음속에 큰 뱀처럼 객관적으로 내 모습을 지켜보고 조언해주는 또 다른 자기(吾)가 있기를 기원한다. 젊은 시절에는 세상을 냉정하게 '관찰'하며 한 발 한 발 꾸준하게 전진해야 한다면, 나이 들어서는 자신이 걸어온 길을 차분하게 '성찰'하며 노욕(老慾)에 빠지지 않는 지혜가 필요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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