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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쾌대 Sep 21. 2023

이솝 우화: 사자를 본 적이 없는 여우

독후 단상

"사자를 본 적이 없는 여우가 어느 날 우연히 사자와 마주쳤다. 사자를 처음 본 여우는 놀라 죽을 뻔했다. 얼마 후 사자를 또 마주쳤다. 여전히 무서웠으나 첫 번째 만났을 때만큼 무섭지는 않았다. 여우는 사자를 세 번째로 만났을 때 용기를 내서 다가가 말을 걸었다."


지금까지 살면서 나는 세 번 정도 사자를 마주쳤던 것 같다.


첫 번째는 고등학교 수학 시간에 만났던 '미적분 이론'이었는데, 매주 마주치던 그놈은 마치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것 같은 괴물 같은 존재여서 어느 순간 나는 그에게서 멀리 도망치고야 말았다.


두 번째는 대학교에 진학하고 만났던 '이성과의 관계'였는데, 여자 앞에서만 서면 숙맥처럼 말문이 막히거나 혹은 너무 어려운 주제를 꺼내서 으스대는 짓을 반복하다가 이번에는 내가 아니라 상대방이 도망치는 사태가 벌어지게 되었다.


마지막으로 최근에는 써브웨이 샌드위치 매장에서 당황하며 겨우 주문했던 일과, 맥도날드 매장에서 키오스크 앞에 서서 버벅거리며 뒷사람에게 민폐를 끼쳤던 기억이 아직 생생하다. 앞선 두 경우와는 달리 이번에는 먹고 살아야 하는 문제여서 도망치지 않고 마침내 극복했던 사실이 떠오른다.


책에는 이번 에피소드의 교훈으로 '무슨 일이든 익숙해지면 두려움이 누그러진다'라고 적어 놓았다. 하지만 인생을 살다 보니 세상에는 끝내 사라지지 않는 두려움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나는 이번 생에서 다시는 '미적분'을 만나리라 생각하지 않는다. 연애에 있어서는 크게 한 번 흥하고 크게 한 번 다쳤으니 더는 미련이 없다. 써브웨이와 맥도날드의 복잡한 시스템은 겨우 극복했으나 앞으로 어떤 기괴한 문명의 이기들이 내 앞에 사자처럼 으르렁거리며 다가올지는 모르겠다. (1936년에 태어나셨던 내 선친께서는 자동차 운전까지는 넘어서셨지만, 컴퓨터와 스마트폰 앞에서는 끝내 두려움을 극복하지 못하고 돌아가셨다. 나는 아직도 인터넷/모바일 뱅킹을 이용하지 않고 있다. 시스템이 아니라 해킹에 따른 피싱이 두려워서이다.)


문득 드는 생각 하나.


여우는 도대체 무슨 목적으로 사자에게 다가가 말을 걸었을까?


자기보다 강한 자에게 접근하는 목적은 대개 단순하고 명료한 법이다. 편승해서 뭔가 이익을 얻을 의도가 없다면 굳이 일면식도 없는 사자에게 여우가 다가갈 이유가 없는 건 아니겠는가. 떡고물이라도 떨어지기를 바라는 속셈이다. 돈이든 권력이든 인기든 가진 자 주변에는 약한 자들이 몰려든다.


불행한 일은 그다음에 벌어진다. 강한 자들은 절대로 시선을 아래로 내리지 않는다는 점이다. 자기에게 다가오는 약자들에게 털끝만큼도 관심이 없다. 그도 역시 자기보다 더 강력한 힘으로 향하는 열망이 가득해서 위를 쳐다보느라 아래를 내려다 볼 여력이 없는 것이다. 오늘 이야기 마지막에 사자가 여우에게 어떤 행동을 취했는지에 관해 뚜렷한 대응이 나오지 않는 이유이다.


이솝은 어쩌면 그런 세태를 꼬집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지나친 비약이라고 탓하면 할 말은 없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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