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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오늘 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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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쾌대 Feb 13. 2024

꽁치 김치찌개를 끓였다.

오늘 일지

당뇨약을 상복하는 사람은 식사 시간과 양을 신경 써서 지켜야 한다. 내 루틴은 오전 열한 시와 오후 다섯 시 반 정도인데 중간중간에 카페 라떼를 흡입하니 양호한 혈당 관리는 아니다.


오늘은 불가피하게 아침과 점심을 먹어야 했기에 저녁 7시가 다가오도록 배가 꺼지지 않고 더부룩하다가 슬슬 시장함이 느껴졌다. 먹자니 부담되고 건너뛰자니 허전하고...


냉장고를 열어보니 몇 주 전에 노모 老母께서 챙겨주신 음식들이 눈에 띈다. 영양분은 날아가고 형체만 유지한 채 귀양살이하듯 은둔하고 있는 먹다 남긴 것들은 과감하게 음식쓰레기로 처분한다.


머지않아 철거를 앞둔 허름한 동네처럼 김장 김치가 플라스틱 통 바닥을 내보이며 심드렁하게 놓여 있다. 꽁치 통조림을 사다가 김치와 함께 쏟아넣고 된장 풀고 고춧가루 넣는다. 된장은 군내와 신맛을 잡아주고 고춧가루는 강렬한 빨간색으로 식욕을 돋군다. 마지막에 파를 송송 썰어 넣으면 단맛이 우러나 쓴맛을 잡아준다.


완성된 찌개를 보고 있으니 입 안에 침이 고인다. 6년 넘는 홀로(욜로가 아니다)族 생활에서 건진 몇 안 되는 소확행이다. 다른 반찬 필요 없이 뜨거운 밥에 쓱쓱 비벼 뚝딱 해치우니 속도 편하고 흐릿했던 정신도 짱짱해졌다. 시시때때로 읽기에 거북해 보이는 내 글도 이렇게 맛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잠시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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