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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쾌대 Feb 15. 2024

아이스크림 고르기

오늘 일지

저녁밥 먹고 분리수거를 위해 재활용 쓰레기를 잔뜩 싸들고 현관문으로 나가려는데 딸아이가 편의점에서 아이스크림 하나를 사다 달라고 부탁한다. 어떤 걸로 사다 줄까 물었더니 잠시 망설이다 그냥 두라고 한다. 아마 결정을 못 하는 모양이었다. 문득 나 어릴 적 저녁이 떠올랐다.


아버지는 늦은 귀갓길에 가끔 통닭을 사 오셨다. 그날은 사업상 좋은 일이 있는 날이었고, 포장 종이봉투 겉면에는 기름이 반지르르하게 배어 있었다. 우리 어린 세 남매는 아버지가 깨우시면 자다 말고 정신없이 일어나 허겁지겁 튀긴 닭을 뜯었다. 별다른 상차림 없이 포장백을 뜯어 펼치면 그게 바로 소반이었다. 오랜만에 단백질을 섭취한 아이들은 입 주변에 기름까지 묻히고 다시 꿈나라로 향했다.


그때는 아이들에게 선택권이 없었다. 음식은 물론이고 물자가 워낙 귀한 시절이라서 무엇이든 주면 주는대로 받아들여야 했던 것 같다. 그때엔 핸드폰도 없어서 아버지께 미리 양념 반/프라이드 반을 요청할 수도 없었고, 아버지 입장에선 늦은 시간에 집 앞 통닭집 말고 다른 프랜차이즈 매장도 없었고, 그런 상황에서 빵은 허니오트/화이트/플랫 브레드인지, 치즈는 모짜렐라/슈레드/아메리칸인지, 야채는 피망과 할라피뇨를 뺀 뒤에, 소스는 레드와인 식초와 올리브 오일을 추가해 달라는 부탁은 애시당초 꿈도 꾸지 못하는 시절이었다.


선택의 폭이 넓어진 요즘 아이들은 그런 점에서 행복해 보인다. 수능에서도 자신이 원하는 과목을 선택하여 치르고, 수시 모집이냐 정시 입학이냐도 고를 수 있고, 필요하다면 학과나 학교도 능력과 여건이 허락된다면 중도에 바꿀 수도 있으니 말이다. 딱 거기까지 말이다.


사회에 나와서 직장 생활을 하게 되면, 예를 들어 학교 선생이 된다면 자기보다 훨씬 진화된(선택이란 측면에서) 학생들(과 학부모)의 까탈스러운 욕구에 부합하는 교육 서비스를 제공해야 하면서, 동시에 위로는 B.C(Before Cellular) 시대에 태어나서 야밤에 통닭을 소금 찍어 치킨 무와 함께 씹어 먹던 상급자들의 단.무.지(단순 무식 지랄)적인 강요 앞에 별다른 선택권 없이 영혼까지 팔아야 하니 말이다.


아파트단지 내에 있는 쓰레기 배출 장소에서 플라스틱과 비닐과 병/캔과 종이를 분리해 버리다가 경계성 발달장애로 분류된 우리 딸아이의 앞날을 잠시 걱정해 본다. 그러다가 아이가 아이스크림 선택에 주저하며 망설인 오늘 일이 불행인지 다행인지 모르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리고 나는 단지 앞에 있는 편의점에 들러 아이가 가장 좋아하는 딸기와 녹차와 민트초코 중에서 과감하게 한 가지를 선택해 계산대 위에 올려놓았다. 사실 세 가지 모두 고르고 싶었지만, 요즘 다이어트에 집중하는 아이한테 자칫하다가는 잔소리를 들을 수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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