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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쾌대 Feb 19. 2024

입맛을 잃으신 어머니

오늘 일지

"어머니께서 식사를 잘 못드세요."


요양보호사께서 보호자인 내게 전화를 주셨다. 어머니와 통화를 하니 요즘 입맛이 없어서 음식이 잘 받지 않는다고 하셨다. 드시고 싶은 것이 있으면 말씀해 보시라고 했더니 딱히 당기는 것도 없다고 하시기에 내가 조심스럽게 여쭤봤다.


"혼자서 드시려니까 울적하세요?"


정곡이 찔리셨는지 잠시 머뭇거리시다가 이내 그렇다고 하신다. 하루 세 시간 돌봐주시는 요양사께서 점심 한 끼는 챙겨드리고, 오후 2시에 퇴근하실 때 거실 소반에 저녁거리는 차려주셔서 그냥 때가 되면 수저ㆍ젓가락만 들면 되시지만, 울컥하는 마음이 드시면 목으로 밥술이 넘어가지 못하는 것이다.


예전에 아버지가 실버타운에 계실 적에 일 년 반을 곁에서 수발하며 모신 일이 있었다. 그때 아버지를 비롯해 그곳에서 생의 마지막이 저물어 가시는 분들의 내면에 깃드는 쓸쓸하고 고독하며 허무한 풍경을 엿볼 기회가 있었다. 나는 그곳에서 일급 영양사가 성심껏 고안하여 준비한 부족함 없는 식단을 앞에 두고 퀭한 눈과 꺼질 듯한 한숨으로 비참한 식사를 하는 노인들의 모습을 아침, 저녁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지금 어머니는 평생을 대해 오신 반가운 밥상에서마저 북쪽의 死地에서 불어오는 찬 바람을 느끼고 계신 것이다. 그 공허하고 참담한 삭풍의 기운이 가슴 한복판에 휑하고 뚫린 구멍을 헤집고 들어와 서늘하고 저릿하게 후비고 지나가는 것이다.


어느 순간부터 인간에게 식사란 무엇을 섭취하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누구와 함께 기운을 나느냐가 중요한 관건이 된다. 밥맛이 떨어진다는 것은 입맛을 잃었다는 말이고, 입맛을 잃었다는 말은 밥상 주변의 기운이 사라졌다는 뜻과도 같은 얘기란 말이다.


오늘 저녁에는 내가 먹을 찌갯거리를 챙겨 어머니 댁에 들렀다. 재료들을 펼쳐놓고 요리를 하는 동안 어머니는 좋기도 하시고 놀라기도 하시며 이런저런 얘기를 도란도란 전해주셨디. 무덤 같던 집 안에 형광등보다 환한 활기가 도는 느낌이었다. 다 된 찌개를 상에 올리고 두 母子는 즐겁게 식사를 했다. 밥맛보다 더 좋은 살맛이 나는 저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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