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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쾌대 Feb 29. 2024

재능 기부

오늘 일지

지역 사회에 종합사회복지관이 있다. 노인, 청소년, 일반인, 장애인을 위한 여러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곳이다. 딸아이의 교육과 사회 활동을 위해 벌써 10년도 넘게 신청하여 참여하고 있다. 장애아이들의 부모들도 자연스럽게 모임이 형성되어 활발하게 자조활동까지 하는데, 주로 엄마들이어서 아빠(청일점)인 나는 그동안 일 년에 한두 번 있는 행사에 참여하는 정도였다.


그러다가 작년 말에 자조 모임 회의에서 책을 발간하자는 의견이 나왔다. 코로나 이전에 엄마들과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를 모아 보고서 형태로 소책자를 발행했는데, 이를 보완하여 정식으로 출판하면 좋겠다는 내용이었다. 나도 뭔가 의미 있는 기여를 하고 싶어서 프로젝트팀에 자원하고 지난 3개월 동안 편집부에 지원하신 6명의 엄마들에게 글쓰기를 가르쳤다. 어제 12주 커리큘럼을 모두 마치고 간단하게 쫑파티를 했는데 무척이나 즐겁고 행복한 시간이었다.


작년 한 해, 내 글쓰기 수업의 학생들은 주로 60대와 70대인 진형중고등학교 학생들이었는데, 이번 모임은 50세를 전후한 비교적 젊은(?) 분들이어서 긴장이 됐다. (게다가 참관하시는 사회복지사 선생님은 올해 서른 살이 된 예비 신부님이기도 하다) 행여 수업 내용이 너무 진부해서 외면당하면 어떻게 하나, 물과 기름처럼 수업 분위기가 어수선하면 어떡하나 등등 첫 수업 시간을 앞두고 이런저런 고민으로 잠을 설치기까지 했다. 하지만 그건 내 기우에 불과했다. 단 한 분의 탈락자도 없이 모두 마지막까지 완주하셨고, 과제 수행률도 90%를 넘는 놀라운 결과를 만들어내셨으니 이번 클래스는 오래오래 기억에 남을 것이라고 함께 식사를 하며 엄마들에게 전했다.


'뭔가를 배우기에 가장 좋은 방법은 그것을 가르치는 것이다'라는 말이 있다. 진형 학교에서도 그랬지만 이번 모임에서도 가르치는 강사의 자리에서 새롭게 깨닫는 점이 있었다. 그건 바로 간절함보다 더 좋은 선생님은 없다는 것이다. 이번에 함께 한 엄마들은(나도 그렇지만) 자기 자녀들을 위한 일이라면 무엇이든 주저하지 않고 용기를 내서 시도하시려는 분들이었다. 이 분들은 앞으로 몇 달 동안 편집부의 팀원으로서 아이들이 차별당하지 않도록, 장애인을 바라보는 일반인들의 시선에 차별이나 편견이 들어서지 않도록 기획된 도서의 원고를 작성하고 서로 협력하여 책의 내용들을 채워가실 것이다.


그렇게 해서 빛을 보게 될 책으로 인하여 세상은 지금보다 조금은 더 환하고 건강한 곳으로 바뀌게 될 것이라 믿는다. 그 과정에 나 역시 함께 할 수 있게 됨을 마음 깊은 곳에서 감사하는 아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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