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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오늘 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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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쾌대 Mar 21. 2024

김치볶음밥

오늘 일지

"난 말야... 나이가 들면, 이를테면 김치가 막바지가 되면 흐물흐물거리면서 군둥내가 나기도 하잖아... 그 정도로 시어서 꼬부라시는 날이 오게 된다면, 김치볶음밥처럼 인생을 마무리를 하고 싶다네.


내가 그렇게 생각하게 된 건 우리 부모님 때문이야. 그분들은 곰삭은 김치찌개가 되셔서 최후에는 가뭇없이 녹아내리셨지. 옛날 김치찌개는 들어간 고기마저 형체가 없어질 때까지 끓이고 또 끓여야 사골국마냥 깊고 뭉근한 맛이 났지. 그렇게 백골이 진토가 되도록 자식 사랑하셨던 건데, 난 사실 그게 싫었어. 그렇게 떠나시면 남은 자식들 가슴엔 돌이킬 수 없는 회한이 얼룩처럼 까맣게 눌어붙어서 지워지지가 않더란 말이지.


남들 보기엔 고기며 참치며 하다못해 꽁치, 멸치에라도 파묻혀 넉넉하고 풍요로운 노후를 지냈다는 평을 들을 지는 몰라도, 사실 그게 다 부담되고 거추장스러운 일이야. 단촐하게 양파 서너 쪽에 기름 두르고 볶다가 소금간이나 잘 하면 그럭저럭 한 끼 때우기에는 부족함이 없어. 언감생심 굴소스라도 들어가면  그야말로 횡재가 아닐 수 없지. 무엇보다 흐물거리던 몸뚱아리가 제법 아삭거리기도 해. 품위를 유지하게 된다는 뜻이지. 요즘은 존엄을 지키며 죽는 일이 정말 어려운 일이라는 생각이 들곤 해.


달걀 후라이가 얹히면 황후의 밥상도 부럽지않으련만, 요즘 젊은이들은 역대급으로 저출산이라고 하니 넘어가던 밥이 목구멍에서 걸릴 판이네. 아, 그리고 무엇보다 참기름! 그건 진짜 축복이며 행운이야. 있는 것하고 없는 것하고는 천양지차니까. 인생 말년에 평생을 함께 한 배우자와 애틋한 정분을 나누는 일만큼 고소한 풍미를 발휘하는게 또 있을까... 반려견이나 반려묘가 후리카케 역할을 하기도 하지만 그게 아주 능사는 아닐거야.


쓸데없는 얘기가 길었네. 자... 시장할텐데 한술 뜨자구."


#저녁으로_김치볶음밥_해먹고나서_끄적여본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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