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고
문학박사이자 문학 비평가가 쓰는 에세이는 어떤 느낌일까? 불문학 교수이기도 했던 저자, 황현산 선생은 서문에서 '나는 내가 품고 있던 때로는 막연하고 때로는 구체적인 생각들을 더듬어내어, 합당한 언어와 정확한 수사법으로 그것을 가능하다면 아름답게 표현하고 싶었다'라고 밝히고 있다. 에세이를 쓰는 작가인 나는 설레고 두려운 마음으로 책을 집어 들었다.
-
내게 에세이를 쓰면서 중요한 세 가지 요소는 '관찰, 성찰, 통찰'이다. 그리고 모든 문학이 그렇듯이, 에세이를 쓰면서 '내가 보고 듣고, 내가 되새김질하고, 내가 깨달은' 일련의 사유들을 남의 눈치를 보지 않고 자기 주관대로 표현하는 주체적인 태도가 필요하기도 하다. 아니나 다를까, 황현산 선생의 <밤이 선생이다>에서도 동일한 내용이 책의 전반에 강물처럼 흐르고 있었다. 그가 관찰한 대상은 1980년대부터 2013년까지 30여 년을 거치면서 자기 주변과 세상에서 화제가 되었던 이런저런 사건들이었는데, 그 사건들 속에서 마치 강물에서 고기를 낚아 올리듯 성찰과 통찰의 문장들을 갈고 다듬어 독자에게 전해주고 있다. 시대를 초월하여 지금까지도 울림이 있는 구절들을 소개하자면 다음과 같다.
"자연에는 삶과 함께 죽음이 깃들어 있다. 도시민들은 그 죽음을 견디지 못한다. 사람들은 자신들의 거처에서 죽음의 그림자를 철저하게 막아내려 한다. 그러나 죽음을 끌어안지 않는 삶은 없기에, 죽음을 막다 보면 결과적으로 삶까지도 막아버린다. 죽음을 견디지 못하는 곳에는 죽음만 남는다." (소금과 죽음 p.21)
“'바르게 살면 미래가 보인다'는 말은 그 자체로 중립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다. 그 말은 비석 앞을 지나가며 그것을 보아야 하는 모든 사람들을 잠재적인 부도덕자로 취급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개인의 행불행을 그 사람의 도덕성에 연결시키려는 의도를 암암리에 내포하고 있다… 겸손하지 않은 도덕은 그 자체가 폭력이다." (돌덩이의 폭력 p.231)
"물질문명의 시대란 역설적이게도 몸이 물질을 누리지 못하는 시대이다. 이제 육체가 물질을 접촉하는 순간이란 저 스냅 동작의 짧은 순간뿐이다. 우리는 어디서나 단추를 누른다." (복잡한 일 p.277)
나는 '소금과 죽음'에서는 요즘 자기 동네에 화장터가 들어오는 것을 반대하고, 요양원과 요양병원이 생활의 한복판으로 자리 잡고 있고, 마트에 진열된 번듯한 과일들만 진열되는 현상에서 죽음을 극도로 회피하는 요즘 세태를 어렵지 않게 떠올릴 수 있었다.
'돌덩이의 폭력'에서는 당시 저자가 근무하던 학교 앞 삼거리 한복판에 세워진 돌덩이(비석)에 새겨진 도덕적 문장의 폭력 못지않게 요즘도 거리의 현수막과 집회의 푯말,
그리고 연예인이나 정치인과 관련한 기사 댓글 등에 숨겨져 있는 도덕이란 이름의 야만적이고 폭력적인 괴물을 연상하게 되었다.
'복잡한 일'에 이르러서는 요즘 아이들이 스마트폰이나 키오스크의 버튼 누르기에 익숙해지면서 문명의 이기(利器)를 자유자재로 활용하지만, 정작 신발 끈을 묶거나 간단한 생활용품 조립 등을 하는 데 어려움을 느껴야 하는 비인간적이고 서글픈 현실을 공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또한 '11월 예찬(p.240~242)'이나 '춘천의 봄(p.267~269)'에서는 무심코 지나칠 수 있는 계절의 참모습을 문학적 감수성으로 잡아내어 명징하게 표현하는 문장을 접하며 문학의 향기를 느낄 수도 있었다.
에세이는 칼럼(중수필)이든 미셀러니(경수필)이든 시나 소설, 혹은 평론이나 자기계발서에서보다 글쓴이의 숨결과 체취를 가깝게 느낄 수 있다는 매력이 있다고 본다. 자기 자신의 민낯을 스스럼없이 드러내며 그 속에서 성찰하고 한 걸음 더 나아가 통찰의 지경까지 사유가 확장되는 문장을 접하며 독자들은 마치 저자와 차 한 잔을 놓고 대화를 나누는 듯한 친밀감도 느껴지기도 하는 에세이를 나는 사랑한다.
-
책을 덮으며 문득 책의 제목이 다시 들어온다.
저자가 정한 <밤이 선생이다>에는 어떤 의미가 담겨 있을까?
먼저 밤과 대비되는 낮의 의미부터 언급하자면, 그건 '빛'이나 '이성'이나 '로고스(logos)'로 상징되는 용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에 대비되는 밤은 '어둠', '감성', '문두스(mundus)'에 해당하지 않을까 한다. 즉각적으로 대입하자면, 문학 평론이나 불문학 학위(학문)가 낮의 영역이라면, 이 책에서는 그와 대비되는 영역에서 태동하여 꿈틀거리는 생각을 정리해서 풀어냈다는 해석을 해보았다. 거기서 더 나아가 덧붙이자면, 작품 속 '겨울의 개'에서 저자가 서술한 문장에서 확장된 의미도 가늠해 보게 되었다.
"개는 내내 주인을 따라가지만 언제나 주인과 같은 방향으로 걷는 것은 아니다. 사람의 꿈은 사람 속에서 피어나 사람과 동행하지만, 반드시 사람과 같은 방향에 시선을 두는 것은 아니다. 이 겨울의 개는 우리가 흔히 예술이라고 부르는 것의 정신이다." (p.152)
나는 여기서 황현산 선생이 얘기하는 '밤'이 '예술의 정신'을 지칭하기도 한다는 것을 느꼈고, 이에 대비하여 '낮'으로 치환되는 법과 윤리와 도덕과의 차이점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게 되었다. '낮'의 정신은 다시 말하면 "해야 할 일"을 제시하고 독려하지만, '밤'은 우리를 딴짓하게 만들고 어슬렁거리게 만든다는 그런 연상 말이다. 딴짓을 하면서 어슬렁거릴 때, 우리는 비로소 삶의 여백에 숨어있는 의미를 발견한다. 마치 어릴 적, 다락방과 같은 잉여의 공간에서 뜻하지 않은 보물을 발견하는 것처럼.
그래서 밤이 가르쳐 주는 교훈은 인생을 너무 각박하게 살지 말고, 여유를 가지고 넉넉하고 풍요롭게 지내라는 요청이 아닐까 한다. 물론 그것은 게을리 살라는 말은 아니다. 다만 눈에 보이는 것과 해야만 하는 일 등에 얽매이지 말고, 주변을 살피고 이면을 더듬는 탐험을 병행하라는 그런 요구이자 가르침이 맞는 뜻일 것이다. 그래서 결국 '밤이 선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