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독후감상

[독후감상] 내 안의 차별주의자_라우라 비스뵈크(심플라

책을 읽고

by 김쾌대

이 책에서 저자가 주장하는 편견에 기반해 다른 진영을 멸시하고 경계를 짓는 이유를 듣다 보면, 한편으로는 의외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애처롭기까지 하다.


"인간은 긍정적 자아상을 구축하고 지키려 노력하기 때문이다." (p.11)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괜찮은 존재라고 여기려는 경향이 있다. 괜찮은 정도를 넘어서서 다른 사람들보다 우월하다고 여기려는 습성이 있다는 말에 부정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래서 사람은 노력하여 월등한 상태까지 도달하는 힘든 방법을 선택하는 대신에, 더욱 쉽고 간편한 다른 길에 몰려든다. 다른 사람들을 깎아내려서 자기가 최상의 자리에 남는 치사하고 졸렬한 그런 행태 말이다. 그 결과, 사회 공동체에는 위기가 찾아오게 된다.


"경계 짓기는 평가와 결합하고 바람직하거나 경멸스러운 특징과 연계된다. 그리고 상대와 비교하여 자신의 가치를 높거나 낫다고 분류한다." (p.11)

"자신의 가치와 만족은 항상 비교 집단에 달려 있기 때문에 상대적인 성격을 지닌다. 더 나은 집단에 속해 있다고 착각하고 '남들'을 깎아내리면 만족감은 더해진다…(중략) 중산층과 다수가 경계를 긋고 자기보다 못한 사람들을 멸시한다면 사회를 떠받치는 중추가 흔들리는 격이므로 민주주의 사회의 안정이 크게 위태로워질 것이다." (p.12)


이 책에서는 겉으로 드러나는 차별이나 멸시 못지않게 숨어서 은밀하게 진행되고 있는 경계 짓기에 대해서도 시선을 둔다.


"꼭 멸시의 말을 입 밖으로 내지 않아도 된다. 몰래 조용히 무시하고 외면하는 방법으로도 특정 집단의 관심사가 표현될 수 있다. 또 멸시하거나 경멸할 의도가 없었다고 해도 그 멸시를 당하는 당사자에게는 비슷한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 (*장애인을 배려하지 않는 도시 계획과 건물 설계를 생각해 보라)" (p.13)

"언론이나 영화, 드라마 등에서 드러나는 태도 역시 무시를 통한 멸시의 시스템이 두드러진다. (*특정 인종이나 계층을 주요 자리나 주인공에 배치하여 선망의 대상으로 만드는 일 따위를 말한다)" (p.14)


저자인 라우라 비스뵈크는 우리에게 다소 생소한 '감정사회학자'로서, 데이터나 정보에 입각한 기존의 구조주의적, 법제도 중심의 차별 담론과 대비하여 '일상 속의 도덕적 우월감'이나 비판의 언어조차 차별적일 수 있다는 '자기반성'을 강조한다. 그래서 이성적인 분석을 통한 사회 문제에 대한 진단과 그에 대한 합리적인 해결책(대안)을 제시하는 주장들에 익숙한 독자들에게 이 책은 다소 낯설고 찜찜한 느낌을 준다. 딱 부러진 주장이나 결론이 없어서 다소 무책임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는 뜻이다. 그럼에도 내 안에 나도 모르게 자리 잡고 있을 법한 '편견'과 '고정 관념'에 대해 다시 한번 되돌아보고(반성하고) 자기의식의 수준을 점검하는데 이 책은 잔잔하지만 깊은 울림을 주는 대목들이 곳곳에서 발견되곤 한다. 내게 그런 통찰을 준 몇 개의 문장들을 인용하며 서평으로 삼고자 한다.


1. 일(job)에서의 착각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면 성공할 것이라는 환상"

=> 그녀(오프라 윈프리)가 말하는 그 꿈을 실현하는 최선의 방법은 무엇일까? 현실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현 상황에 적응하는 것이다. 이 현실을 만든 책임자나 이해 집단, 노동 조건, 정치나 제도를 바꿀 게 아니라 우리 자신에게 변화를 요구해야 한다. 그 결과 우리는 현실에 순응하고 탈정치화되며 자족적이고 신자유주의적인 소비자와 생산 도우미로 전락하고 만다. (p.26)

=> 스스로 원하고 책임을 지면서 사회적 명성까지 얻어야 한다면 실로 엄청난 부담이 아닐 수 없다. 따라서 에렝베르는 우울증은 규율과 죄가 아닌 책임과 자발성에 기초한 질병이라고 말한다. (p.30~31)


2. 성(gender)에서의 착각


"(여성에게) 비용 부과는 많이, 인정은 박하게"

=> 탐폰이나 생리대는 일상 용품이 아닌 사치품으로 분류하고 있고, 대체로 여성용품이 더 비싸다 (p.58~59, p.61)


"또래 친구들로부터 '남자답지' 못하다고 인식된 사내아이들은 '약한 모습'을 보이고 '계집애'처럼 행동한다. 그 말은 불안해한다는 뜻이다."

=> 학교 총기 사건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범인들의 공통점은 잔인한 컴퓨터 게임이나 심리 문제가 아니라, 동급생들에게 충분히 남자답다고 인식되지 않은 처지에서 동료들에게 소속되고 싶다는 갈망이 채워지지 못해 절망하고 분노하다가 폭력을 휘두르게 된다는 것이다. (p.70)


3. 이주(immigration)에서의 착각


"야만적인 인간들을 거부하는 그 사람들 스스로가 '야만인'과 똑같이 이분법적 태도를 취한다. 야만인이란 그 누구도 아닌 야만을 믿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 이주민이 실직하면 사회 기생충이고, 노동 시장에서 열심히 일하면 젊은이들의 일자리를 뺏어가는 도적이며, 자영업을 하면 남은 일자리마저 빼앗으려는 욕심쟁이라고 비난한다. (p.94)


4. 빈부 격차(poverty and wealth)에서의 착각


"무찔러야 할 문제는 실업이 아니라 '실업자'가 된다."

=> 따라서 일자리를 잃으면 돈과 직장만 잃는 게 아니라 자존감과 인정도 사라진다. 자신이 사회에 해로운 존재, 일하는 사람들의 돈을 뜯어먹고 사는 기생충,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는 무용지물, 이 사회의 일원이 아니 이방인이란 느낌을 계속 받게 된다...(중략) 앞이 보이지 않는 막막한 심정은 사회 결속에도 해롭다. 그런 젊은이들이 극단주의 이념이나 사이비 종교에 빠지기가 쉽기 때문이다. (p.115)


"기업가 정신으로 무장하라는 이상은 실제로는 참상이다"

=> 그곳(창업오피스)에서 더 많은 시간 동안 더 적은 돈을 받으며 일하지만 대신 자유의 왕국을 체감할 수 있다. 번아웃에 걸릴 자유를 말이다. (p.131~132)


5. 정치(politics)에서의 착각


"타인에게서 악을 보면 흑백 논리에 따라 자신의 세상은 자동적으로 선이 된다. 부정적 적개심이 긍정적 자아상을 불러낸다."

=> 복잡한 것은 무섭고 골치 아픈 것이다...(중략) 타인을 희생양으로 삼아 죄를 뒤집어씌우면 질서와 통제의 기분이 든다. 안전과 명료함의 욕망은 너무나 커서 아무 정보가 없는 것보다는 거짓 정보라도 듣는 편이 더 안심이 된다. 그럼 그 사건을 정리, 정돈할 수 있으니 무력감에서 벗어날 수가 있다. (p.236)


이 책을 읽다 보면 나도 모르게 그동안 자신이 편견에 사로잡혀 어떤 착각 속에 빠져 살아가고 있던 것은 아닐까, 라는 자문을 하게 된다. 그리고 내 안에(또한 다른 사람들의 내면에도) 뿌리 깊게 자리를 잡은 고질병이 과연 극적으로 치료가 될 것인가라는 다소 비관적인 생각마저 들게 된다. 그럼에도 그러한 착각을 붙들고 있는 근본적인 문제가 결국 불안이라면, 저자는 그 불안으로부터 도피하지 말고 단호하게 그것과 맞설 것을 당부하고 있다. 그것을 선택하느냐 마느냐는 독자들의 판단에 맡길 일이다.


"불안을 극복하는 최고의 방법은 그 불안과 대면하는 것이다. 불안의 원인으로 추정되는 상황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가령 우파 포퓰리즘이 자주 써먹는 외국인에 대한 불안의 경우 그 낯선 이방인들과 접촉하면 된다." (p.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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