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독후감상

[독후감상] 삶의 한가운데(2)_루이제 린저 (민음사,

책을 읽고

by 김쾌대

앞서 니나에 관한 소감을 밝혔다.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읽고 주인공인 니나에 관해 이야기한다. 하지만 나 역시 비슷한 중년의 남자여서 그랬을까, 이 작품의 남자 주인공인 슈타인 박사의 심정에 더 많이 감정이 이입되었던 것이 사실이다. 이번에는 슈타인 박사에 관한 이야기를 좀 풀어보고 싶다. 그야말로 소설에나 나올 법한 격정에 휘말린 슈탈린에게 과연 무슨 일이 일어났던 것일까?


"그 책은 스탕달의 『적과 흑』으로, 내가 매우 소중하게 생각하는 책입니다." (p.57)


의사였던 슈타인은 여느 평범한 중년 남성들처럼 무료한 일상을 보내고 있었다. 20년이나 연하인 니나가 그의 진료실에 나타나기 전까지는. 그 이후로 그의 삶은 완전히 달라졌다. 알 수 없는 운명 같은 힘에 이끌려 그는 일상에서 일탈하고 만다. 그건 마치 궤도를 잘 돌고 있던 행성이 어느 날 보이지 않는 강력한 블랙홀이 이끄는 인력에 이끌려 그 궤도를 벗어나 알 수 없는 우주 공간으로 튕겨져 나가 자기를 빨아당기는 빈 공간(블랙홀)으로 혜성처럼 돌진하는 것과도 같은 일이었다.


'스탕달 신드롬'이란 현상이 있다. 프랑스의 작가 스탕달이 1817년 이탈리아의 피렌체를 방문하여 르네상스 시대의 미술품인 '베아트리체 첸치의 초상'을 감상하다가 무릎에 힘이 빠지고 심장이 빠르게 뛰며 일종의 황홀경을 경험한 데서 비롯되었다. 19세기 초부터 피렌체 예술을 감상하다가 빠른 심장 박동, 실신, 혼란, 심한 경우 환각까지 포함하는 정신신체적 질환을 경험한 관광객들이 스탕달이 겪은 체험과 유사한 사례를 보였다고 한다. 소설에서 스탕달의 『적과 흑』이 등장하는 것이 의미심장하게 느껴졌다. 물론 스탕달과 관광객들은 잠시 그런 현상에 사로잡힌 데 비하여, 슈타인은 무려 18년이란 시간 동안 그런 증상에서 벗어나지 못하긴 했지만.


"몇 년에 걸쳐 계속 관찰한 결과 마침내 나에게는 어떤 것이 정말로 나의 본질인가 하는 의문이 솟아나게 되었다. 내가 알고 있던, 즉 구실을 달거나 복잡하게 생각함이 없이 이성이 기대하는 대로 행동하는 것이 진실된 나인지, 또는 니나가 옆에 있음으로 인해 내 속에서 일깨워지는 꺼림칙하고 예측할 길 없는, 또는 유혹적이고 은근히 폭력적이기까지 한 나쁜 자아가 나의 본질인지, 알 수가 없었다. (p.127)"


슈타인은 행성이 아니라 인간이었기에 이성(理性)이 있었다. 그는 강력한 욕구로 니나와의 결혼 생활을 꿈꾸었지만, 그녀의 허락을 받을 수 있는 기회를 번번이 놓치고 만다. 그는 니나가 완전히 자발적으로 그의 의지에 순응하기를 바랐지만, 니나는 전혀 그런 부류의 고분고분한 성격은 아니었다. 그는 사실 소유욕에 사로잡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강력한 힘에 의해 촉발된 욕망은 마치 자동차의 엑셀(러레이터)처럼 그를 미친 속도로 몰아붙였지만, 그에 버금가는 이성이_폭력적으로 그녀를 정복하면 안 된다는 도덕 의식이 브레이크처럼 그를 막았다. 그래서 그는 엑셀과 브레이크를 동시에 밟았을 때 차가 전진하는 대신에 그 자리에서 굉음을 일으키며 멈춰있는 것처럼 한 발자국도 니나에게 다가서지 못하고 말았다.


"당신은 삶을 비껴갔어요. 한 번도 모험을 하지 않았어요. 그래서 당신은 아무것도 얻지 못했고 잃지도 않았죠." (p.383)


니나의 관점에서 보자면, 슈타인은 그녀가 그토록 경멸하는 <위선>적인 사람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는 니나가 스스로에게 느꼈던 얇은 막이나 사람들이 자기 인생 무대에 쳐놓은 커튼을 모두 걷어버리고 발가벗은 모습으로 그녀에게 다가온 사람이었다. 그래서 어느 순간, 그녀가 저항의 의지가 꺾일 만큼 힘든 시기에 마침내 슈타인의 품에 안겨 안식을 취하는 것에 동의할 정도로(그와 결혼을 결심했다는 것을 뜻한다) 그녀의 마음을 사로잡을 뻔하긴 했다. 그런데 결국 그는 그 일에 실패했다. 슈타인은 위선적인 사람은 아니었지만, 엄밀하게 얘기하자면 <독선>적인 사람이었기 때문이었다. 니나를 '있는 모습 그대로' 인정하고 받아들이지 못하고 자기가 생각하는 어떤 대상으로 설정하고 그 대상이 자기가 원하는 방향으로 변해야 한다고 여겼다는 뜻이다. 그래서 니나는 그를 대할 때마다 불편함을 느꼈고 결국 그를 받아들이지 못한 것이 아닌가 한다. 불행하게도, 그는 니나를 사랑한 것이 아니라 '니나를 향한 자신의 사랑을 사랑했기에' 사랑을 통해 단 한 발짝도 자기로부터 벗어나지 못한 채 독자들에게 짜증마저 불러일으키는 존재가 되고 말았다.


"나는 말했다. 내가 어둡고 출구가 없어 보이는 낭하를 끝없이 가고 있을 때마다 나에게 문을 열어준 것은 당신이었다고. 당신은 왔으며 당신과 함께 양지바르고 확 트인 대지가 펼쳐져 있었소. 나는 비록 그 대지에 발을 들여놓지는 못했지만, 그 대지를 본 것으로 나의 지난 암담함은 구제될 수 있었소." (p.405)


슈타인은 마지막에 결국 행복하게 삶을 마무리했을까? 죽음을 앞둔 슈타인은 니나와 마지막 대면을 한다. 그리고 고백한다. 당신이 있었으므로 인해 내 인생이 그나마 구원을 받을 수 있었노라고. 슈타인이 자기 자신에게 면죄부를 발부하는 장면이 감동적이지 못하고 오히려 서글픈 이유는, 궤도에서 벗어난 행성이 타인의 대기권에 무단으로 침범하여 허공에서 불타 없어지면서 남기는 긴 꼬리와도 같은 마지막 메시지처럼 느껴져서이다. 니나는 삶의 한가운데에서 그물에 걸려 점점 불가항력을 느끼며 체념하는 슬픔을 말했다면, 슈타인은 삶의 한가운데서 이탈하여 미지의 세계로 이끌렸지만, 진정한 자유를 누리지 못하고 자기중심적인 사슬에 묶여 벗어나지 못한 채 결국 추락하고 마는 소멸의 비극을 보여주고 있다고 느꼈다. 소설의 도입부에서 사망한 슈타인으로부터 소포가 도착한 이후로 소설이 흐르는 내내 니나가 슈타인의 죽음에 별다른 애도의 뜻이나 일말의 동정심이라도 표현하지 않는 것은 그래서 오히려 납득이 되고 이해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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