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독후감상

[독후감상] 관조하는 삶: 무위에 대하여_한병철 (김영

책을 읽고

by 김쾌대

0. 들어가며

2012년에 한국에서 출간되어 베스트셀러가 되었던 《피로사회》의 저자인 한병철의 이 책은, 철학자이자 문화(사회) 비평가인 그가 지속적으로 문제제기를 하고 있는 현대 사회에 만연한 '자기 착취'에 관해 '무위'와 '관조'가 해결책이 될 것이라는 견해를 담고 있다.


1. 현대 사회의 금과옥조: Just do it!


저자는 사람들이 성과 위주의 생산 활동에 매달리며 '노동'과 '자본'에 종속되면서 끊임없이 소모 당하는 존재로 전락했다고 진단한다. 이러한 현상에서 진정한 '쉼'은 자리를 잃고 '여가'라는 이름으로 시간마저도 소비되어야 하는 상품으로 전락해버렸다고 개탄한다. 효율과 성과 지향적인 목표하에서 '~하기 위하여'가 슬로건으로 걸린 사회 관계망 속에서의 인간은 비참하고 불행한 삶을 경험하게 된다. (전쟁과 무기는 효율과 성과지향의 궁극적이며 대표적인 아이콘이다)


기술이 발전하면서 정보 사회가 되었지만,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차고 넘치는 정보는 일종의 소음을 발생하면서 정보 소음과 소통 소음을 초래한다. 모두가 자기를 드러내는 일에만 관심이 집중되어 있어서 타인의 이야기나 사정에는 별로 귀를 기울이거나 살펴보지 않는다. 사실 정보에 대한 열망은 앎을 향한 결연한 의지에 기반을 두고 있는 것이고, 여기서 앎이란 진리가 지배하는 개인과 세상을 <만들어 감>이라고 할 수 있다 보니 얼핏 생각하면 그리 나쁜 일이라고 생각하기 어렵다. 하지만 문제는 이러한 '인위적인' 창조의 이면에는 파편화된 개인의 실존이 거대한 자본의 힘(폭력)에 눌려 점점 제 살 파먹기식의 착취를 당하고 있다는 엄연한 현실이 자리를 잡고 있다. (여기서 악마가 사용하는 전가의 보도, Divide and Rule이 떠오른다) 진실에 기반한 아름다움은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 '발견'하는 것이 아니겠냐는 질문을 이 책은 독자들에게 은연중에 전하고 있다.


저자는 외친다. "Just stop it" - 하던 일과 가던 길에서 멈춰 서서 잠시 주변과 그 뒤의 본질을 바라보라고 권하고 있는 것이다.


2. 소는 누가 키우나?


저자는 앞만 보고 내달리는 '생산 활동'에 대비하여 멈춰서서 바라보는 '관조'를 제시한다. 관조를 통하여 노동이 놀이가 되고, 당위(~하기 위하여)에 종속되는 상태에서 무위(무언가를-위하지-않음)를 향하는 진정한 자유를 맛보게 하고, 소모가 아닌 충만을 내면에서 이룰 때 죽은 시간으로써의 여가가 아니라 생기가 넘치는 축제가 펼쳐지게 된다고 이야기한다. 파편화가 된 개인들이 불안과 두려움에 사로잡히는 대신 공동체가 주는 풍요와 호화로움에 힘입어 진정으로 행복한 삶을 이룰 수 있다는 결론까지 이끌어낸다.


그러한 관조를 위해서 저자는 '리추얼'을 언급하고 있다. 리추얼이란 의례, 의식, 의례적인 행위를 뜻하는 단어로써 한 번 하고 마는 것이 아니라, 교회나 사찰에서의 예배나 예불과도 같이 특정 목적을 가지고 일정한 시간이나 상황에서 반복적으로 수행하는 행위이다. 저자는 관조를 위해 일상에서 실행하기를 권하는 리추얼로는 산책, 춤, 금식, 금욕, 불멍, 잠, 심심함 등을 언급하고 있다. 리추얼의 특징은 '내어 맡김'으로 요약할 수 있는데, 이러한 리추얼을 통해서 정보 소음이나 소통 소음에서 벗어나 온전히 타자에게 귀를 기울이며 일방적인 자기 드러내기에서 벗어나 주기와 받기를 이루며 진정함(진실)에 도달할 수 있다는 관점을 제시한다.


더 이상 뭔가를 인위적으로 만들어 선명한 실체를 알아내겠다는 의지가 아니라, 무슨 일이 벌어질까에 대해 호기심을 가지고 기다림으로써 진리에 가까이 다가가며 진정한 창조를 이룰 수 있다는 의견인 것이다. 이를 위해 필요한 것은 불투명한 주변의 사태들에 대한 '게으름'이나 '놔두기'와도 같은 순수하며 인식 없는 관조이며, 이를 통해 영혼은 안식을 얻을 수 있다라는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이때 무념무상으로 바라보는 대상에는 죽음까지도 포섭한다. (저자는 사회비평가이자 철학자이기도 하다)


여기까지 듣다 보면, 강력하게 의식의 밑바닥에서 질문 하나가 떠오른다.

"선생님, 다 좋고 멋진 말씀인데, 그럼 소는 누가 키웁니까? 당신은 학자로서 그런 말씀을 하실 수 있을지 몰라도 생계를 이어야 하는 일반인들에게는 너무 뜬구름 잡는 이야기가 아닐까요?"


결코 틀린 말이 아니라고 느껴지는 순간이다.


3. 관조하는 삶이 주는 축복


관조하는 삶은 이해의 문제가 아니라 믿음과 결단의 문제이다.


언제까지 행위(해야 할 일)의 덫에 걸려 불안한 삶을 계속할 것인가?

노동이 주는 괴로움에서 자기 착취를 계속하며 숨 가쁘게 살다가 끝내 단념하고 체념하는 지경까지 이르겠는가?

그러면서도 맡겨진 일들이 조정 가능하다고, 처분 가능하다고 착각하며 손에 꽉 쥐고 지내겠는가?


저자는 멈춰서서 성찰하며 내맡기는 삶을 살아가라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자기를 착취하고(심지어는 학대하며) 무너진 자존감을 끌고 가는 개인에게 자기 존재의 찬란한 가능성을 발견하고 감사하는 일은 없다.

누추한 자기 모습을 감추고 안 그런 척 거짓 이미지를 살포하는 자에게 수줍음이란 경쟁에서 밀려나는 약점이 될 뿐이다.

인생과 우주에 대한 경탄이 없고 투정하고 비난하는 인생에 공동체의 축제가 들어 설 자리는 당연히 없는 것이다.

그렇게 모두 각자의 무덤까지 긴 행렬을 끌고 가는 삶을 더는 허락하지 말라고 요구한다.


저자는 또한 현대 사회가 정보 사회이고, 정보는 이야기로 농축되지 않는다고 일갈하고 있다.

정보는 파편적으로 스쳐 가는 일회성 사건이고, 오로지 생존 활동만을 요구하기에 사람들은 원초적 외로움에 빠져 허덕인다.

생산 과잉을 유발하는 이유는 소유가 아닌 존재의 결핍감을 메우기 위한 서글픈 몸부림이다.


고대로부터 인류가 만들어 온 이야기 문화들(신화, 설화, 서사)은 그 안에 상징을 담고 있다.

그 상징은 공통의 것을 만들어 공동체가 함께 느끼도록 도와준다. (정보가 사회를 파편화하는 것과 대비된다)

함께 묶어 주는 것이 없을 때, 인간은 존재의 결핍을 느끼게 된다.

아울러 이야기는 반복되어 들려진다. (아이들의 너덜너덜해진 동화책을 생각해 보라)

반복은 존재를 심화하는 중요한 요소이다. (창작자들은 이 사실을 늘 체험한다)

존재가 심화한다는 말은 리비도, 즉 에로스가 충만해진다는 말과도 같다.

오직 그런 상태에서 인간은 절대적인 대상 앞에서 경탄하고 찬양하게 된다.


저자가 말하는 멈춰서서 바라보는(관조하는) 무위의 축복이다.


4. 나가며


책을 덮으며 나는 밑 빠진 독이 하나 떠올랐다. 그 독에 아무리 물을 들이부어도 결코 차는 법이 없는 운명이다. 어떻게 그 독을 물로 채울 것인가?


물 붓는 일을 멈추고 그 독을 들어 강물에 던지면 된다. 풍덩, 물속으로 들어갈 때 독은 비로소 충만한 물로 채워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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