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을 보고
소설가 이화경의 단편선인 <하염없이 무엇을 생각합니다>(모놀로그, 2023)에 수록된 '노라의 뽄'이 각색되어 무대에서 선을 보였다. 이화경의 팬클럽 회장인 나로서는 만사를 제치고 달려갈 수밖에 없었고, 과연 어떤 식으로 원작이 재해석되어 공연으로 탄생했을지 빛고을 광주로 가는 내내 궁금하기만 했다.
1. 각색과 연출
원작을 생각하면 아마 모노드라마가 제일 적합한 일일지도 모른다. 소설에서는 무엇보다 주인공이 화자가 되어 흐르는 내면 독백이 주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프란츠 카프카의 단편인 ‘어느 학술원에 드리는 보고’를 각색한 <빨간 피터의 고백>이나, 혹은 주인공들의 치밀한 심리 묘사를 표현했던 <신의 아그네스>와도 같은 형식이 가장 무난한 방법으로 떠오른다. 하지만 극단 깍지의 박강의 연출은 예상을 뒤엎고 주인공의 분신(아바타)과도 같은 몸종 '안쪽'이를 창출했다. 처음엔 무심코 관람하다가 시간이 흐르면서 이러한 재창출에 대해 감탄을 하게 되면서 깊은 몰입을 할 수 있었다.
원작에서는 수많은 '이쪽'과 '저쪽'이 나오는데 저쪽은 저승, 과거, 문명화된 서구, 떠나온 고향 집 등을 상징하고 이쪽은 그 대척점에 있는 이승, 현재, 전근대의 조국, 정착해야 하는 신접살이에 해당한다. 남편은 늘 이쪽과 저쪽에서 방황하다가 '저쪽이냐 이쪽이냐, 죽느냐 사느냐'를 읊조리다가 검은 바닷물에 몸을 던졌다. 주인공인 목포 새댁은 이쪽과 저쪽 사이에서 일어나는 시대적, 개인적 격랑에 휩쓸려 표류할 수도 있었지만 그 대신 자기 내면(안쪽)을 들여다본 인물이다. 자기 내면을 성찰하는 사람은 스스로 묻는다. '과연 나는 누구인가?'(과연 당신은 무엇을 찾아 헤매고 있습니까?) 몸종 반쪽이를 만들어 내면서 이 작품의 선명한 주제 의식을 유감없이 관객들에게 전하고 있었다. 종이 위에서 읽어 내려가야 하는 소설은 평면(2D)이지만 무대 위에서 펼쳐지는 공연은 입체(3D)인데 이번 작품에서는 각색과 연출의 힘으로 그 어려움을 극복했다고 본다. 극단 깍지의 저력이 느껴져서 좋았다. (특히 자칫 신파조로 느껴질 법한 극의 초반부에 춘향전 변사씬은 관객들이 지루하지 않게 만들어준 조미료 역학을 톡톡히 했다고 본다)
2. 아쉬운 점
그동안 공연에서(물론 문학에서도) 남성우월주의에 바탕하여 여성들의 목소리나 처지를 상대적으로 비중이 작게 처리했다는 비판이 있어왔다. 예를 들면, 뮤지컬 <지킬앤 하이드>는 원작을 공연으로 재탄생시키면서 원작에 없던 '루시'라는 매력적인 여성 캐릭터를 만들었지만, 사실 이는 원작에서의 여성 주인공인 '엠마'가 너무 무력하고 수동적인 캐릭터였기에 관객들의 비난을 모면하려는 방법이기도 했다. (물론 연출가는 엠마를 위해 너무나도 매력적인 넘버, Once upon a dream을 선물하기도 했지만) 이번 공연에서는 시아버지와 남편의 모습이 매우 스테레오타입으로 표출되어서 불편한 감이 없지 않았다.
다행히 극의 후반에 남편이 부르는 독백곡이나 부인과 몸종과 함께 부르는 삼중창에서는 너무나 멋지고 강렬한 넘버로 관객들의 뜨거운 박수를 받으면서 어느 정도 해소되긴 했지만, 너무 일방적으로 무책임하고 유아기적 속성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남성상보다는 뮤지컬 <영웅>에서 이토 히로부미가 부르는 '황혼의 태양'처럼 깊은 고뇌와 회한을 담아낸 넘버가 한 곡 정도 더 있어서 그를 위한 변호가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 든다. (특히 현해탄에 몸을 던지기 전에 그의 심정을 담은 곡이라면 더욱더 효과적이지 않을까 한다) 또한 시아버지와 아들의 갈등을 보다 심도 있게 다룬 넘버가 있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대표적으로 뮤지컬 <레미제라블>에서 장 발장과 자베르가 서로 으르렁거리는 '대면 Confrontation'처럼 관객들에게 강렬하게 부자 사이의 갈등을 미학적으로 각인시킬 수 있는 넘버가 꼭 필요해 보인다. (물론 개인적인 바람이긴 하지만)
3. 향후 공연의 방향성 제안
이번에 공연이 펼쳐진 ‘광주예술의전당’ 소극장은 사실 중극장에 가까운 규모인데, 그 공간을 배우들이나 소품들로 밀도 있게 채우기에는 예산이 허락하지 않았으리라 여겨진다. 그 어려움을 이겨내고자 고심했을 조명과 무대디자인을 담당한 스태프들의 노고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앞으로 이 공연이 다듬어지기 위해서는 철저하게 모노드라마 톤의 소극장용으로 가거나, 아니면 투자를 유치해서 대극장 흥행으로 가야 하는 것을 극단에 제안하고 싶다.
소극장용으로 간다면, '이쪽'과 '저쪽' 그리고 '안쪽'을 표현하기 위해 멀티미디어 활용에 최선을 다해서 젊은 관객을 끌어들였으면 한다. (이때 지금의 안쪽이 배역은 축소되거나 사라질 수도 있다) 그리고 만약에 대극장용으로 간다면, 앞서 말한 넘버들의 보강과 더불어 새로운 배역(캐릭터)을 하나 창출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든다. 주인공 시댁에 거주하는 남자 머슴인데, 주인공 '나'의 분신인 '안쪽'이와의 밀고 당기는 에피소드를 통해 극 중 재미와 원작에는 나타나지 않지만, 일반적으로 추측할 수 있는 주인공 나의 심경적 변화 등을 우회하여 전할 수 있는 캐릭터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남자들이 너무나 스테레오타입이기도 하지만, 사실 주인공의 태도 역시 어떤 면에서는 자칫 고루할 수도 있어 보인다.
4. 한 문장(주제)
원작에서 그렇고 이번 공연에서도 그랬지만, 역시 한 줄의 문장이 크게 울려 마음에 남았다.
"하지만 사랑이 운명의 다른 이름이라면, 나는 그를 사랑했습니다. 내 운명을 걸었으니까요. 남편을 사랑하는 아내로서가 아니라, 내 인생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던 사내를 끝까지 사랑한 여자로 말입니다."
외부에 종속되어 운명을 팔자소관이라고 여기지 않고 의연히 자기 삶을 주체적으로 버텨낸 주인공. 그녀야말로 아폴로, 마돈나, 모란화, 양귀비, 루루, 나나, 노라, 프리데리케 브리오, 월계꽃... 과는 비교할 수도 없는 진정한 '모던걸'이었기에, 설령 그녀의 이름이 남편 묘비에 의미 없이 박혀 있는 그녀의 본명이자 허명(虛名)에 연연하지 않고 그냥 내 이름은 '나'라고 우리에게 전해주고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