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제노트
어머니, 오늘은 이렇게 어머니께 편지를 씁니다. 오늘 모 식품회사가 예전에 팔던 ‘우지라면’을 출시했다고 해서 하나 끓여 먹어봤는데, 먹는 내내 어머니 생각이 나서였습니다.
예전에 우리 세 남매가 어렸을 때, 어머니는 가끔 별식으로 라면을 끓여주시곤 했지요. 당시에 라면은 아무 때나 먹는 음식이 아니었습니다. 찬장 깊숙이 들어가 있던 라면 봉지를 어머니가 꺼내시면 우리는 환호성을 지르며 좋아했지요. 값싼 밀가루로 빚어주신 수제비나 국수와는 다르게 아마 값이 조금 더 나갔기 때문이었던가 봅니다. 우리는 끓는 물에 털어낸 라면 스프의 빈 껍질 안쪽을 쪽쪽 빨아먹으며 빨리 밥상 위로 맛있고 탐나는 귀한 한 끼를 기대하곤 했습니다.
어느 날이었던가요... 그날 어머니께서 끓여 내주신 라면 냄비 안에는 밥이 잔뜩 들어가 죽처럼 퍼져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요즘 젊은이들은 그걸 '라면죽(라죽)'이라며 별식으로 먹는 모양인데, 당시에 저는 라면 물처럼 끓어오르는 알 수 없는 분노로 숟가락을 밥상에 탁! 하고 내려놓고는 방으로 들어가 버렸지요. 제가 원하던 꼬들꼬들한 면발의 모양새가 아니어서 심통이 나서 철없이 역정을 내고 말았습니다. 왜냐하면 부잣집 친구들 집에 놀러 가면 거기 어머니들은 계란이며 파를 넣어서 멋지게 끓여주셨기 때문에 그런 맛있는 라면과 달리 꿀꿀이죽처럼 퍼진 볼품없는 라면에 거부감이 들고 울화까지 치밀어 올랐기 때문입니다. 사실 라면뿐만이 아니라 어머니의 옷차림이며 머리 모양도 남들에게 보이기 싫을 만큼 부끄러워했던 것도 어머니는 모르셨을 거예요.
당시에 서울 변방, 영등포의 서남쪽 도시 빈민촌에서 어렵게 지내다가 형편이 조금 좋아지면서 아이들 교육을 위해서라면 어떤 희생도 마다하지 않으셨던 아버지께서 무리하게 영등포의 동쪽(영동)에 있는 초기 강남으로 이사를 왔고, 약간은 허허벌판처럼 휑한 택지에 자리 잡은 우리 집은 저 멀리 보이는 현대아파트 고층 아파트에 비하면 참 초라하고 볼품없는 주택이었지요. 학교에서 점심시간이 되면 도시락을 꺼내면서 주눅이 들어서 눈치를 보던 기억도 납니다. 그래서 그렇게 라면에 목숨을 걸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라면은 부잣집에서나 우리 집에서나 공평하게 누릴 수 있는 일종의 사치였으니까요. 비록 그들에 비해 횟수는 턱없이 적었겠지만, 그렇기 때문에 한 번을 먹더라도 제대로 먹고 싶은 마음이 당시 저에게는 크게 다가왔었나 봐요.
시간이 한참 흐르고 제가 당시의 어머니 나이가 되어서야 비로소 알았습니다. 그렇게 밥을 넣고 끓여야 양이 많아져서 세 남매를 배불리 먹일 수 있었다는 사실을 말이에요. 그것뿐만이 아니라, 그 나이가 되면 밀가루 음식은 소화가 안 돼서 죽처럼 끓여야 속이 편해진다는 사실도요. 저는 오늘 옛날 방식으로 만든 라면을 끓이며 거기에 예전 어머니가 해주시던 것처럼 밥을 넣고 같이 끓여 죽처럼 해서 먹었습니다. 제 기억엔 예전의 그맛이 남아있지 않지만 그때 자식들을 위해 희생하셨던 어머니의 젊은 시절 모습은 사라지지 않고 남아있습니다. 요즘 어머니를 찾아뵈면 오늘 끓인 '라죽'처럼 육체가 무너져서 자주 소파에 퍼져 계시곤 하지만, 그래도 저는 어머니가 끓여주신 그 죽처럼 생긴 라면을 먹으며 건강하고 무사하게 자랐다는 사실에 뜨겁게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어요.
사랑합니다. 오늘 밤에는 편히 주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