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경련(전국경제인연합회)이 한경협(한국경제인협회)으로 탈바꿈하여 첫 발걸음을 내딛는다. 고도성장기의 주역이었던 전경련이 지난 시대의 정경유착으로 인하여 괴멸 직전에 이르렀다가 다시 회생하게 된 것이다. 새로운 출범이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테고 고민도 많았을 터인데 다각적인 검토 끝에 싱크탱크형 경제단체로 방향을 잡은 것으로 보인다.
남의 잔치에 트집 잡을 생각 없지만 더 좋은 방향설정이 있지 않을까 하여 고언을 드린다. 주지하다시피 우리 재계와 산업계에는 여러 경제단체가 있고 각각 주어진 미션과 역할에 따라 열심히 활동하고 있다. 그런데 각 경제단체의 차별화 포인트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대한상의, 경총 등과 달리 전경련은 오랜 기간에 걸쳐 경제인이라고 불렸던 기업가들의 모임으로서 자리매김 하여왔다. 여기서 말하는 기업가는 전문경영자와 다른 오너경영자를 말하는 것이다.
다른 경제단체에도 오너경영자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오너경영자임을 가입요건으로 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전경련과 차별성이 있다고 할 것이다. 이후 경제의 발전과 함께 창업세대가 후대승계되어 2세, 3세 경영자가 나타나고 민영화된 공기업과 그 CEO로 회원사의 외연이 확장되는 등 변화가 있었지만 오너 클럽, 재계 맏형과 같은 기본특징이 바뀐 것은 아니었다.
그간 현대, 삼성, 대우, LG, SK 등 한국경제의 버팀목이었던 많은 기업가들이 있었고 네이버, 넥슨, 카카오 등 새로운 시대의 기업가들이 속속 등장하였다. 규모가 커지면 기업가정신이 취약해진다든가 최근 세대의 기업가적 속성이 달라서 우려스럽다든가 하는 소리도 들려오지만 기업가와 기업가정신은 본능적으로 그리고 자연스럽게 발현된다는 점에서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기업가정신에 해당하는 원어 entrepreneurship이 처음 나왔을 때 ship이 들어가니까 정신이라고 번역을 한 일본 학자나 문헌의 오류를 이어받아 지금까지 고수하는 듯하여 안타깝지만 기업가정신은 기업가적 활동을 의미한다는 것이 정설이다. 또한 지속적인 경제발전과 기업성장을 위해서는 관리자적 활동이 아닌 기업가적 활동이 필수불가결하다는 점도 시대변화와 상관없이 진리인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렇다면 오너경영자가 주축이 되는 경제단체에게 요구되는 대표적인 역할은 무엇일까? 한마디로 변화와 혁신의 기업가정신이라고 할 수 있다. 창업 회장이나 후대 회장이 전문경영자와 차별화되는 요소가 바로 기업가정신이기 때문이다. 소유지분에 상응하는 강력한 리더십으로 인해서 오너경영자는 위험부담, 패러다임 전환, 구조조정 등 기업가적 활동을 수행할 수 있는 것이다.
오너경영자는 스스로 기업가정신을 발휘할 뿐 아니라 다른 기업, 미래 세대를 위한 기업가정신의 지원 역할에도 충실해야 한다. 이러한 역할은 개인으로도 수행할 수 있지만 한경협이라는 경제단체를 통해서 보다 체계적이고 지속적으로 전개해 나갈 수 있다. 새로 출범하는 한경협은 기업가정신의 총본산으로서 한국경제에 기여하고 젊은이들에게 선한 영향을 주어야 하며 그러한 기능이 가장 중요한 덕목이 되어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름 문제를 지적하고자 하는데 전경련에서 한경협으로, 나쁘지 않은 선택이지만 또 다른 작명이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전국을 한국으로, 경제인을 기업가로, 연합회를 협의회로 하는 조합을 결합하면 한국기업가협의회 약칭 한기협이 되는데 이 이름이 더 나아보이고 본질에 부합하는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