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신: 책을 쓰는 일이란

나에게는 2024년 1월말이 변신의 날로 기록될 수 있다. 왜냐하면 2023년 2월말 대학에서 정년퇴임한 후 1년이 다되도록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는데 어느 날 갑자기 삶의 방향을 정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간 많은 대안을 검토하고 시도했었다. 내 고민은 다른 직장에 재취업할 것인가, 오랫동안 계획했던 세계여행을 실행할 것인가, 귀촌하여 작물 키우는 일에 전념할 것인가의 주로 세 갈래 길로 분류가 되었다.

그런데 이런 게 좋겠네 하면 저런 게 걸리고, 잘 할 수 있을까 걱정도 되고 등등 많은 생각이 꼬리를 물었고 어느 것 하나 진전이 되지 않다가 “그렇지, 책을 써야겠구나!” 하고 마음을 먹게 되니 길었던 고민의 시간이 한순간 평온의 시간으로 바뀌게 되었다. 물론 책을 쓴다는 생각을 안 한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책 쓰는데 따르는 그 많은 고통을 잘 견뎌낼 수 있을까, 수없이 쏟아져 나오는 책의 홍수 속에 나도 책을 써야 하나 하는 번민과 허무의 의식에 빠져서 결정을 못했던 것이다.

약간의 위로가 된 건 공지영 작가의 신간 '너는 다시 외로워질 것이다'(해냄, 2023.12) 북토크에서 한 작가의 한마디였다. "이제 애들도 다 컸고 책이 안 팔리면 안 팔리는 대로 하고 싶은 걸 하면서 살겠다"는 말이다. 책 써서 돈 벌겠다는 생각은 애초 없었지만 출판사에 민폐를 끼치지 않는 수준으로 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꽤 컸었는데 온갖 걱정 다하고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점을 깨닫게 되었다.

위로보다 더 중요했던 점은, 책 쓰는 일이 내가 좋아하고 남보다 잘하는 몇 안 되는 대안이라는 것이다. 글 쓰는 일로 평생을 살았지만 국책연구소와 사립대학교에서 한 일은 소수의 전문가 수요자를 위해 연구보고서와 학술논문을 쓰는 것이었지 일반대중이 관심을 가질만한 책을 쓰는 일이 아니었다. 이론고찰과 계량분석을 근간으로 하는 학술연구는 통찰이나 재미를 주는 에세이 스타일과 근본적인 성격을 달리한다.

이전에는 그런 종류의 책을 쓸 기회가 없었지만 이제 퇴임하였기에 딱딱하지 않고, 이왕이면 재미가 있고, 독자들에게 도움이 되는 책을 쓰는 일이 자유로워졌다. 그래서 새롭게 시작하려고 한다. 쓰고 싶은 주제가 대여섯 개는 될 정도로 의욕이 넘치지만 몇 달 못가 그만두면 안 되므로 신중한 자세를 가져야 할 것이다. 보통 논문 한편 쓰는데 6개월이 걸린다면 책을 쓰는 데는 1년이나 2년이 걸릴 것이므로 지금 쓰고 싶은 책을 다 쓰려면 10년은 걸릴 터이다.

가히 장도를 떠나는 것에 비유할 만하다. 카프카의 소설 ‘변신(1915)’에서는 주인공이 벌레로 바뀌고 자신의 삶이나 가족의 생활이 완전히 변하게 된다. 이 작품의 해설은 실제로 사람이 벌레로 바뀌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현대인의 소외와 불안을 다루었다는 견해가 지배적이고 최근 일본사회의 병리현상인 ‘히키코모리’와 닮았다는 평가도 있음직하다. 그러나 2024년 나의 변신은 더 밝고 나은 미래를 지향하는 것이고 그러기에 축복받을 만하다고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