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개츠비]는 1925년 출판된 스콧 피츠제럴드의 소설이다. 피츠제럴드는 헤밍웨이 등과 함께 미국을 대표하는 작가로 알려져 있고 미국문학의 핵심을 이루고 있다. 이 소설은 여러 차례 영화로 만들어졌는데 디카프리오 주연의 2013년 영화가 가장 유명하다.
이 소설은 300여 페이지의 분량으로서 그다지 두꺼운 책은 아니기에 읽어내는 데 그렇게 어렵지는 않지만 실제로 책을 읽어본 사람보다 그냥 이름이나 내용을 들어서 아는 사람이 훨씬 많을 것이고 영화로 접한 사람도 매우 많을 것이다. 늘 바쁘고 오랜 시간과 공을 들여 책을 읽기 어려운 현대의 생활을 고려하면 책을 읽기보다 영화로 보는 편이 낫다고 생각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나는, 쉽지는 않지만 꼭 책을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왜냐하면 줄거리가 중요한 게 아니고 소설에 담겨 있는 문장이나 서술이 우리에게 깊은 영감과 감동을 주는 것이므로 절대적으로 책을 읽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고전이나 명저를 읽는 것은 인문학의 소양을 갖추는 데 도움이 될 뿐 아니라 삶의 지혜와 여유를 찾는 데도 큰 영향을 미친다. 눈도 침침하고 하루에 몇 시간씩 며칠이나 몇 주를 투자해야 책을 전부 읽어낼 수 있지만 그럴만한 가치가 충분히 있다고 판단한다.
이미 책을 읽었거나 각자 사정에 맞춰 향후 읽어볼 것이므로 책의 줄거리나 내용을 여기서 말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요약하면, 주인공인 개츠비가 오랜 세월에 걸쳐 바라고 꿈꿔왔던 데이지의 사랑을 끝내 얻지 못하고 비극적으로 생을 마감한다는 것이고 소설과 영화의 여기저기에 아메리칸 드림의 빗나간 모습들이 잘 묘사되어 있다.
떳떳하지 못한 방법으로 돈을 많이 벌었고 이웃에 보이기 위한 수단으로 흥청망청 파티를 벌이는 것이 일상화된 개츠비가 왜 위대하다는 것이냐 뒷말이 많고 어쩌면 비꼬는 말로 ‘위대한’의 제목이 붙은 것이 아니냐는 추측도 있는 듯하다. 그러나, 왜곡된 방식이기는 하지만 굴곡진 과정에서도 꿋꿋이 죽을 때까지 자신이 품은 사랑의 마음을 이어갔다는 점이 ‘위대한’의 이유라고 보아야 마땅할 것이다.
끝으로 한 가지 재미있는 것은 이 소설에서 화자 역할을 담당하는 닉 캐러웨이는 부잣집 도련님일 뿐 아니라 미국 명문대학 예일 출신이라는 점이다. 닉은 데이지의 사촌오빠인데 데이지의 남편 톰도 예일대 동창인 것으로 되어 있다. 소설에 보면 개츠비가 자신이 옥스퍼드 다녔다고 말했다는 대사가 나오는데 이는 거짓말이다. 상류층, 슈퍼리치들이 사는 동네에서 학력을 부풀려서 허세를 부리려는 의도로 보인다. 다만 완전한 거짓말은 아니고 잠깐 옥스퍼드에 머물렀던 적은 있지만 졸업은 못한 것으로 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