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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ma Vianney Jan 12. 2022

Oriente 그리고 방향성

코스메딘의 성 마리아 성당 | 순례자가 들려주는 이야기

코스메딘의 성 마리아 성당 (Santa Maria in Cosmedin)

아마도 이 성당은 코스메딘의 성 마리아라는 이름보다는 거짓말 한 사람이 손을 넣으면 그 손을 자른다는 '진실의 입'이 있는 장소로 더 알려져 있을 것입니다. 이 진실의 입이 유명해진 것은 1953년도에 제작된 영화 '로마의 휴일'에서 그레고리 펙과 오드리 헵번이 손을 넣는 장면 때문일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아시나요? 영화에서 그레고리 펙이 진실의 입에 손을 넣고 뺄 때 옷소매에 손을 집어넣어 잘린 것처럼 하여 오드리 헵번을 놀라게 한 것이 즉흥적인 그레고리 펙의 연출이었다는 것을요. 그래서일까요? 영화 속 오드리 헵번의 얼굴이 정말로 놀란 사람처럼 그레고리 펙의 손을 진실의 입에서 잡아채는 장면이 더 실감 나게 느껴졌던 것 같습니다.


로마 시내에 나오면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서 이 성당 앞으로 차를 몰고 지나가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로마는 시내의 교통 체증과 시내 거주하는 사람들의 생활환경을 위해 오전 6시 30분에서 오후 6시까지 로마시에서 허가하지 않은 차들은 들어갈 수 없는 교통 제한 구역이 있습니다. 이 구역으로 드나드는 도로 위에는 cctv가 설치되어 있기 때문에 실수로 잘 못 지나갈 경우에는 집으로 벌금 통지서가 날아옵니다. 그런데 더 문제는 한 두어 달 지나서 이 통지서를 뭔지도 모르고 받는다는 거죠. 그러고는 기억도 잘 안 나는 날짜와 시간을 따지다가 결국은 스스로 이 기막힌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 벌금을 내었던 때도 있었습니다.


영화 '로마의 휴일'의 한 장면

어쨌든 이 앞을 지나다니다 보면 로마시대 하수도 뚜껑 (기원전 4세기)에 손을 넣어보려고 길게 늘어선 사람들 때문에 성당인지 관광 명소인지 헷갈릴 때가 많이 있습니다. 그들에게 30분 이상을 줄 서서 기다리는 수고로움은 그리 중요해 보이지 않아 보입니다. 사진 찍기 위해 기다리는 사람들의 얼굴 모습은 오드리 헵번과 그레고리 펙으로 이미 빙의되어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래서 나는 가끔 이 사람들을 보며 나지막이 농담을 스스로에게 합니다. 오드리 '헵번'은 못될지라도 오드리 '될뻔'은 가능할 거라고.




테베레 강과 로마 시청이 있는 캄피돌리오 언덕 그리고 아벤티노와 팔라티노 언덕 사이에 있는 이 지역을 고대 로마인들은 포룸 보아리움 (Forum Boarium)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들에게 이곳은 신성한 지역임과 동시에 테베레 강을 통해 들어오는 많은 상인들을 위한 상업지역이기도 하였습니다. 보아리움이라는 이름이 붙은 이유도 이곳에 커다란 가축 시장이 있었기 때문이었죠.


성당 벽에 함께 있는 기원후 2세기 로마 시대 건물의 기둥

그래서 6세기에 이 성당이 지어진 자리에는 원래 기원후 2세기경에 지은 로마 시대 건물이 있던 곳입니다. 이 건물은 두 개로 나누어져 있었는데, 하나는 사람들에게 음식 재료를 나누어 주던 곳이었고 나머지 하나는 헤라클레스에게 봉헌한 자리였다고 합니다. 이때 사용되었던 건물 기둥들은 지금도 그 자리에서 성당의 기둥으로 사용되고 있고, 일곱 개는 성당 뒤편에, 나머지 세 개는 성당 왼쪽 벽에서 볼 수 있습니다.


지하 크립타 성당과 헤라클레스 제단에 사용되었던 돌들

그리고 이 로마 시대 건물 옆에는 헤라클레스에게 봉헌한 위대한 제단 (Ara Massma Ercole)이 있었고, 이 제단에 사용된 거대한 블록의 돌들은 현재 성당 제단 밑에 있는 크립타의 일부 벽에서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크립타는 아드리아노 1세 교황 (재위 772-795) 때 만든 것으로, 반원형 천장을 가지고 있지 않은 로마에서 유일한 지하 소성당입니다. 정면 압시대에는 6세기 제단이 남아 있고 양옆 벽감에는 순교 성인들의 유해나 유물을 모셨던 자리입니다.


성당 정면은 여러 세기 동안 수리와 재건축도 있었지만, 마지막으로 19세기 때에 성당 정면에 첨가된 바로크 시대의 것들을 떼어내면서 지금은 8세기에서 13세기 때의 로마네스크 양식의 성당을 볼 수 있습니다.


성당에 붙여 만들어진 종탑은 12세기에 만들어진 것입니다. 이것은 로마에서 가장 아름다운 34,2미터의 로마네스크 양식 종탑 중 하나이고 두 개의 창 혹은 세 개의 창이 나있는 일곱 개의 층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지금의 성당 모습을 갖기 시작한 것은 8세기라고 할 수 있는데, 이 시기는 동방 교회에서 이콘 사용에 대한 탄압을 하던 시기였습니다. 정치적으로 이콘 탄압을 통해 수도원을 장악하려는 비잔틴 황제의 의도도 있었고 종교적으로는 이콘이 우상 숭배라고 하는 이유도 있었죠. 그래서 이콘 공경에 대해 공식적으로 인정이 된 제2차 니케아 공의회 (788년) 전까지 많은 그리스 수도원들이 이탈리아로 피신해 왔고 이콘 공경에 찬성한 아드리아노 1세 교황은 그들에게 이 성당을 제공하였습니다. 동방에서 온 수도자들은 그들의 방식대로 성당을 아름답게 만들게 되고 그리스 말로 ‘장식’이라는 뜻을 갖고 있는 ‘코스미디온 (Kosmidion)’이라는 말을 이 성당에 붙여서 사용을 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중세의 성당들은 어떻게 지었을까요?

고대 인류가 불의 발견으로 음식을 익혀 먹을 수 있는 풍요로움을 얻었다고 한다면 현대 사람들은 전기의 발명을 통해 빛을 얻으면서 시간에 대한 자유로움과 태양빛에 얽매이지 않고 사방의 공간을 활용할 수 있는 건물을 만들기 시작하였습니다. 전기가 발명되기 전까지 우리에게 풍부한 빛을 줄 수 있는 것은 태양이 유일하였고, 일출과 일몰의 동선을 중심으로 삶의 공간이 만들어졌습니다. 성당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성당 건축의 초기 양식으로 사용했던 바실리카는 고대 로마인들이 처음 만든 건축물이고 사람들을 수용하는 공공성에 따른 크기를 우선시 한 회당이었기 때문에 방향을 그렇게 중요시 여기지는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교인들의 박해가 끝나고 베드로 대성당이나 바오로 대성당처럼 성인들이 무덤 위에 세워진 바실리카 양식의 성당들도 방향보다는 성인들을 기억하고 기념하는 장소적 의미가 더 중요하였습니다.


하지만 로마네스크 양식의 성당들이 세워지던 중세로 들어오면 세상을 창조하신 하느님의 자연 질서 안에서 사람들의 삶으로 들어오신 하느님을 찾으려는 노력을 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즉, 전례적 의미를 성당 건축에 부여하면서 방향과 전례가 이루어지는 각 장소의 중요성을 생각하며 우주적인 하느님의 현존을 보여주는 성당을 만들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하느님의 현존을 설명할 수 있는 상징적인 것들을 전례적인 장소나 조각, 물건 등으로 표현하려고 하였습니다. 코스메딘의 성 마리아 성당은 이런 로마네스크 양식의 전례적 의미를 잘 보여주는 로마에 몇 안 되는 성당입니다.


성당을 짓기 전 장소와 방향을 잡는 것은 매우 중요하였습니다. 전례를 위해 각 자리는 자기의 역할이 있는데, 그중에 중요한 기준을 잡아주는 것이 제단이었고, 이 제단은 동쪽을 향하도록 하였습니다. 동쪽은 해가 뜨는, 즉 하루의 빛이 처음 시작하는 곳이며 이 빛은 예수님을 상징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나는 세상의 빛이다.
나를 따르는 이는 어둠 속을 걷지 않고 생명의 빛을 얻을 것이다.
요한 8장 12절


그런데 이 제단은 정동쪽이 아니라 동남쪽에 두는 것이 더 일반적이었습니다. 왜냐하면 하지와 동지를 기준으로 해 뜨는 방향이 달라졌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서쪽에 위치한 유럽 사람들에게 동쪽은 이 생명의 빛이신 예수님 무덤이 있는 예루살렘이 위치하고 있는 곳이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이슬람 사람들이 세상 어디에 있든 모하메트가 묻힌 메카를 향해 기도를 바치는 것처럼 그리스도교인들도 예루살렘을 향해 제단 방향을 놓았던 것입니다.


반대로 해가 지는 서쪽은 하루가 저무는 것처럼 세상이 끝나고 새로운 세상 즉, 하늘나라로 들어가는 것을 상징합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최후의 심판을 위해 오시는 방향이기도 하였죠. 그런 이유로 성당 안에 최후의 심판을 그리게 되면 일반적으로 서쪽에 위치한 성당 밖으로 나가는 문 위에 그렸습니다. 사람들은 미사 후 머리 위에 최후의 심판이 그려진 성당 문을 나서며 예수님 재림의 날 천국과 지옥 중 어느 곳에 설지 미리 생각하게 될 것입니다.


그렇다고 동쪽에 제단을 향하게 했던 것이 가톨릭 성당이 처음은 아니었습니다. 그리스인이나 로마인들도 신들의 세계는 동쪽에 있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그리스인들의 제단도 동쪽으로 로마인의 제단도 동쪽으로 향하게 만들었습니다. 313년 그리스도교에 대한 밀라노 관용령 이후에 그들의 신전 자리에 그리스도교인들의 성당들이 대신하면서 어쩌면 자연스럽게 이러한 생각이 스며들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로마인들에게 예수님은 12월 25일에 태어나신 태양신이었기 때문입니다.


동쪽을 향해 기준을 잡는 종교적 생활 방식은 우리 일상생활에서도 알게 모르게 사용하는 말입니다. '동쪽을 향해서'라는 말인 '오리엔테이션'이라는 단어를 한번 생각해 볼까요? 대학교에 입학한 신입생들이나 회사의 신입 사원들을 위한 이 오리엔테이션은 성당에 제단으로 방향을 잡는 것처럼 새로운 환경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전체적인 정보를 주며 방향을 잡아 준다는 말이기 때문입니다.


코스메딘의 성 마리아 성당 내부 모습

이런 전례적 방향과 성서적 상징성을 잘 보여주는 성당이 이 코스메딘의 성모 마리아 성당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성당 내부로 들어가면 칼리스토 2세 교황 (1119-1124) 때 네 면을 벽으로 쌓아 올려 만든 스콜라 칸토룸 (Schola cantorum)이라는 생소한 공간을 볼 수 있습니다. 이 장소는 지금의 성가대가 사용하는 자리와 비슷한 장소로써, 전례 중에 신자들이 성가나 시편을 잘 따라 부를 수 있도록 앞부분의 음을 잡아주던 사람들이 사용한 곳이기도 하지만 예수님의 부활을 믿고 찬미하는 자리이기도 하였습니다. 그래서 이 장소는 하와와 아담이 살았던 에덴 정원을 상징하였으며, 죄를 지어 쫓겨나는 곳이 아니라 죽음을 이기신 예수님 무덤이 있던 장소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곳에 정원이 있었는데, 그 정원에는 아직 아무도 묻힌 적이 없는 새 무덤이 있었다.
요한 19장 41절


그리고 예수님이 묻히신 이 정원의 무덤은 당신의 부활로써 새 생명을 알리신 곳입니다. (참조, 요한 20,14-17)


그래서 이 스콜라 칸토룸과 붙여서 예수님 부활을 알려야 하는 장소가 필요하였고, 그것이 바로 복음 선포대입니다. 복음 선포대는 그리스어로 아나바이노 (ana-baino)이고, 뜻은 '오르다' 즉, '걸어 올라가는 높은 장소'를 뜻합니다. 복음 선포대는 스콜라 칸토룸 보다 높은 위치에 부활 촛대와 함께 남쪽 편에 만들고 반대쪽인 북쪽 편에는 독서대를 따로 만들어 놓았습니다.


그런데 복음과 독서가 선포되는 방향이 다른 것을 볼 수 있는데, 복음 선포대 (Ambone)는 에덴의 정원에 있는 사람들에게 선포함과 동시에 예수님 부활의 소식이 널리 퍼진다는 뜻으로 이 에덴 정원 밖 어둠의 세계를 상징하는 북쪽을 향하게 만들었고, 독서대는 신자들이 예수님의 재림을 기다린다는 의미에서 주님이 계시는 동쪽을 바라보고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복음 선포대의 동쪽 편 (사진에서 보면 촛대 가까이 있는 쪽)이 오르는 계단이고 서쪽 편이 내려오는 계단인데, 제대를 중심으로 가까운 쪽으로 올라가는 전례적인 편의성도 있겠지만, 더 중요한 것은 이것도 해가 뜨고 지는 방향성을 염두에 두고 있다는 것입니다.


복음 선포대가 높은 이유는 구약의 하느님께서 높은 시나이 산에서, 신약에서 예수님은 예루살렘의 높은 장소에서 말씀하셨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복음 선포대 옆에는 촛대를 하나 볼 수 있습니다. 구약으로 본다면 이집트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구해주시고 이끌어 주셨던 불기둥 (참조, 탈출기 13,21-22)이고 신약으로 본다면 세상의 생명의 빛으로써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이콘입니다.

주님께서는 그들이 밤낮으로 행진할 수 있도록 그들 앞에 서서 가시며, 낮에는 구름 기둥 속에서 길을 인도하시고, 밤에는 불기둥 속에서 그들을 비추어 주셨다.
탈출기 13장 21절


그래서 기둥을 잡고 있는 사자는 예수님의 족보의 기원이 되는 유다 지파 (참조, 창세기 49,8-12)를 이야기하고 있고, 이 ‘유다 지파에서 난 사자, 곧 다윗의 뿌리가 승리하였으니 그분이 이 일곱 봉인을 떼시고 두루마리를 펼칠 수 있습니다’ (묵시 5,5)라고 한 것처럼 촛불은 펼쳐진 성서의 말씀을 비추시는 그리스도 자신이 되시는 겁니다.


촛대는 또한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상징하는 것으로, 촛대를 보면 두 개의 줄기가 꽈배기처럼 꼬여 올라가면서 하나의 기둥을 이루고 있습니다. 이는 예수님은 한 분이신 하느님이시지만 두 가지의 본성 즉, 완전한 하느님이신 신성과 완전한 사람이신 인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로마에서는 코스메딘의 성 마리아 성당과 같은 양식을 보여주는 성당들은 성 클레멘스 성당, 성녀 사비나 성당 그리고 성녀 사바 성당이 있습니다.


성 클레멘스 성당 (왼쪽)과 성녀 사비나 성당 (오른쪽)의 암보네와 부활 촛대

흥미로운 것은 이 성당들에 설교대가 없다는 것입니다. 설교대는 사실상 전례적 장소가 아니라 교리나 성서를 설명해 주는 교육적 장소로서의 역할이 더 크기 때문입니다. 설교대가 성당 안에 등장하기 시작한 것은 설교자 수도회인 도메니코 수도회와 프란치스코 수도회가 활발히 활동하던 시기인 14세기 때부터입니다. 이때에는 교회 안에 많은 이단들이 있어서 그들과 말로써 싸워야 하는 경우도 있었고, 신자들이 이단에 빠지지 않도록 교육해야 하는 필요성도 있었습니다. 해서 이 두 수도회가 많이 사용했던 고딕 양식의 성당 중앙 복도 가운데에 누구나 보고 잘 들을 수 있도록 높은 설교대를 만들었고, 복음 선포대가 부활 촛대를 가지고 있는 것과는 다르게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과 죽음을 가리킨다는 의미에서 십자가가 함께 있었습니다.




애석하게도 현대의 성당들을 보면 이런 말씀이 선포되는 장소의 중요성이 많이 사라지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마이크와 스피커의 기술적인 발전으로 복음 선포대, 독서대, 강론대는 더 이상 분리해서 사용할 필요가 없어졌고, 더 많은 사람들을 수용할 수 있도록 성당은 커지면서 오히려 신자들의 좌석이 전례의 중심이 되는 제대를 내려다볼 수 있는 극장식 개신교회나 성당들이 만들어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하느님의 집은 사람들을 모으는 곳이 아니라 모이는 장소입니다. 사람들이 모인 곳에 주님이 함께 하시어 거룩한 장소가 됩니다. 사람의 목소리가 귀로 잘 들리도록 설교하는 곳이 아니라 주님의 복음이 마음에 잘 세겨지도록 선포되야 하는 곳입니다.


중세 성당들의 내부 구조는 구약과 신약에 나오는 하느님 중심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지금의 성당들처럼 사람 중심으로 눈으로 잘 보이거나로 귀로 잘 듣기 위해 만들어진 건물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예수님께서 나를 기억 (remember) 하고 이를 행하라고 하신 말씀처럼, 우린 다시 그 구성원이 (re-member) 되어 그 자리에 소환되는 중요한 시간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건물로써가 아니라 예수님의 현존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이 성당은 천상 만찬을 미리 맛보게 해주는 장소라고 생각됩니다.


시내에 볼일을 보고 또다시 성 마리아 코스메딘 성당 옆을 지나갑니다. 이 성당을 지나면 내가 로마 동쪽에 있는 나의 집을 향해 잘 찾아가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면서 안심이 됩니다.

2022년 새 해가 시작되었습니다. 해가 바뀌었다는 것에 의미를 크게 두지 않는 나의 성격이지만, 새해에도 방향을 잘 잡고 살 것인지에 대한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 보게 되는 시간입니다.


여러분들은 무엇을 기준으로, 어느 방향으로 가고 계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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