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 수도원 이야기
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처럼, 너희도 완전한 사람이 되어라
마태오 5장 48절
수도 생활의 모범이 되신 분은 당연히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님은 하늘나라를 알리기 위해 사람들이 많은 곳을 찾아다니셨지만, 그만큼 기도하시기 위해 사람들이 없는 곳으로도 가셨습니다. 그리고 공생활 시작 전 40일 동안 광야에서 기도하시면서 사탄의 유혹을 물리치시고 세례 성사를 통해 하느님 아버지를 만나시는 장면은 고행의 길을 택했던 사람들에게 수도 생활이 하느님을 만날 수 있는 길이라는 것을 보여주신 것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예수님 승천 이후에 곧바로 이런 수도자들의 등장을 불러오지는 않았습니다. 로마 제국 안에서 그리스도교에 대한 박해 기간에는 사실 그런 생활에 대한 필요성도 느끼지 못했을 것입니다. 이미 박해라는 고통 속에 세속적인 것을 버리고 신앙을 지키며 그리스도의 재림이 곧 올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에 어떻게 본다면 수도자보다 더 수도자 다운 삶을 살았던 시기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예수님 재림 보다 먼저 온 것이 신앙의 자유였습니다. 헬레나 성녀의 아들이었던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312년 로마 수도를 지키고 있던 막센티우스 황제와 테베레 강 위에 있던 밀비오 다리를 중심으로 전투를 치르게 됩니다.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군대는 로마까지 1,000킬로미터가 넘는 장기간 행군으로 지쳐 있었고 수적으로도 열세였습니다. 이때 콘스탄티누스는 어머니가 믿던 그리스도에게 기도를 하였고 갑자기 하늘에 나타난 십자가를 보게 됩니다. 그리고 이 십자가는 콘스탄티누스의 승리를 약속합니다. 다음날 환시 속에 보았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대한 믿음과 함께 기적적으로 밀비오 전투에서 승리를 하게 됩니다.
다음 해인 313년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밀라노 관용령을 통해 그리스도교인들에 대한 신앙의 자유를 선포하고, 제국 안에 있던 다른 종교보다 더 큰 물질적 특혜와 법적 특권을 베풀었습니다. 황제의 명령으로 교황과 순교자들을 위한 당대 최고의 기술이 들어간 바실리카 성당이 건립이 되고, 주교에게는 면세 특권과 사법권까지 주어 살인죄를 제외한 재판을 담당토록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교인들의 신앙생활에 편의를 봐주기 위해 일요일을 그리스도교의 공적인 예배일로 규정해 주기도 하였습니다. 몰수된 교회의 재산도 반환을 해주었고 신자들이 자신의 재산을 교회에 기증할 수 있는 상속권까지 인정해 주면서 교회는 재산의 축적과 토지와 건물에 대한 소유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교회 세속화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친 그리스도교적 정책은 어떤 그리스도교 신자들에게는 새로운 길로 이끄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신앙의 자유로 더 이상 순교를 할 수 없었던 열심한 신자들은 단식과 금욕, 그리고 절제된 생활이 인간의 악한 마음에서 벗어나 하느님을 만날 수 있는 또 다른 순교의 길이라고 생각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이것이 수도 생활의 시작이었습니다.
그리스 말에서 나오는 수도주의 (monachesimo)는 홀로(monos)와 집(oikia)의 합성어이고 수도자적 삶의 형태는 크게 두 가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는 개인적 삶으로 하느님께 나아가는 은수 수도자, 다른 하나는 공동체적 삶으로 하느님께 나아가는 공동생활 수도원입니다.
은수 수도자의 시작은 사막의 은수자로 불렸던 이집트의 성 안토니우스 (251-356)입니다. 서방 교회 수도원의 아버지라고 불렸던 베네딕도 성인의 이야기를 그레고리오 대 교황 (590-604)이 글로써 전한 것처럼, 안토니우스 성인의 이야기도 알렉산드리아의 교부인 성 아타나시우스 (296-373)의 ‘성 안토니우스의 생애’라는 책으로 전해졌습니다. 안토니우스는 18세에 부모님을 여읜 후에 “네가 완전한 사람이 되려거든 가서 너의 모든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어라" (마태 19,21) 라는 말씀을 실천하기 위해 누이의 생활비 외에 전 재산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고, 세상의 모든 인연을 끊고 사막으로 들어가 80년간 은수자 생활을 시작하였습니다. 안토니우스의 은수 생활은 엄격한 금욕과 속죄의 삶이었고, ‘깨어 기도하라’는 성서 말씀을 실천하는 삶이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안토니우스에게 찾아와 가르침을 청하였고, 그들에게 가르침을 주면서 그는 은수 수도 생활의 모델이 되었습니다.
반면 공동생활 수도원의 시작은 이집트의 파코미우스 (289-346)부터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는 194개의 항으로 된 엄격한 수도 규칙서를 만들어 공통된 규범에 따라 함께 노동하고 함께 기도와 전례 생활을 하도록 하였습니다. 이 공동생활 수도원은 크게 성공하여 파코미우스 선종 당시에 일곱 곳의 남자 수도원과 두 곳의 여자 수도원이 창설되었고 후대에 가장 일반적인 수도원 형태로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소아시아에서는 카파도기아에 있는 체사레아의 대주교인 성 바실리우스 (329-379)가 360년경 공동생활 수도원을 세웠습니다. 그는 수도 생활의 새로운 개념을 제시하였는데 수도 생활은 영적이며 동시에 사회적이어야 함을 강조하였습니다. 하루 여섯 번 성당에서 기도하면서 금욕보다는 노동과 함께 가난한 사람들과 약자들을 도와줄 수 있는 사회 활동에 주력하였습니다. 그래서 수도원도 사막이나 산속이 아니라 사람들이 사는 마을 안에 설립하였습니다. 또한 성인이 쓴 ‘바실리오의 규칙’을 통해 수도원장에 대한 순명과 공동수도 생활의 구성원인 수도자들을 하나로 묶어주는 서로에 대한 사랑이 수도원의 기본적이 영성이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동방 수도원의 중요한 기준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이탈리아에 6세기경부터 칼라브리아 지역으로 들어와 이탈리아-비잔틴 수도 공동체가 만들어져 동방에서처럼 고유의 창립자와 규칙서 (Typikon)를 가지고 전 유럽으로 퍼뜨리는 씨앗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후에 베네딕도 성인이 수도 규칙을 세우는 데에 많은 영향을 주기도 하였습니다. 현재까지도 바실리오의 정신을 바탕으로 고유의 규칙서를 따르는 수도원으로써 로마 근교 성 닐로 (910-1004)에 의해 세워진 그로타페라타의 성모 마리아 수도원을 볼 수 있습니다.
서방 교회에서 최초로 수도원을 세운 사람은 투르 (Tours)의 성 마르티노 (316-397)입니다. 마르티노는 로마 군인 시절 아미앵 시 성문 앞을 지나다 한 걸인을 보게 되는데, 측은한 생각이 들어 자기의 망토 반을 잘라 덮어줍니다. 그리고 그날 저녁 꿈에서 예수님을 만나게 되고 자기의 망토를 받은 걸인이 예수님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마르티노는 아직 예비 신자이지만 나에게 이 옷을 입혀주었다”라는 말씀을 듣게 됩니다. 이 신비 체험 후 군대를 제대하여 18세 때 세례를 받고 당시 이단이었던 아리우스 파와 싸우게 됩니다. 그 후 푸아티에의 성 힐라리우스의 도움을 받아 리귀제에서 은수자가 되었고 근처 많은 은수자들이 찾아와 이곳에서 공동생활 수도원을 세우게 됩니다. 그리고 주교로 임명이 되어 교구 사목과 함께 수도 생활을 이어가며 많은 사람들을 수도 생활로 이끌었습니다.
하지만, 서방 교회 안에서 공동체 수도원을 완성한 사람은 바로 노르치아의 성 베네딕도 (480-547)입니다. 베네딕도는 스스로 은수자로서의 삶을 시작하여 공동체 수도원을 완성한 분이십니다. 은수자로서의 시간은 수비아코 동굴에서 3년간의 하느님을 찾는 시간이었고, 공동체 수도원의 완성은 몬테까시노에서 대수도원 설립과 앞으로 등장할 서방 수도회의 기준이 되는 수도 규칙서를 쓰시면서입니다. ‘기도하고 일하라 (Ora et Lavora)’로 표현되는 이 규칙서는 73개 조항으로 이루어져 있고, 각 수도자는 분리된 각자의 방을 사용하면서, 기도와 육체적 노동 그리고 공부 (렉시오 디비나)를 하며 침묵 속에 묵상을 해야 합니다.
베네딕도의 규칙은 엄하기보다는 따뜻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느님께 순명하고 자기의 모든 것을 포기한다면, 하느님께서는 수도자 각 개인과 공동체에게 마음을 즐겁게 하는 행복과 평화를 가져다주실 것이라 확언하고 있습니다. 또한 베네딕도의 모든 조언들은 연약한 자들을 든든히 세워주고 용기 있는 자들을 격려해 주는 것이었습니다.
이 규칙서에서 발견하는 것은 다음과 같은 것들입니다. 기도와 노동, 순명과 개인의 양심, 하느님과 더불어 사는 애독 생활과 공동생활, 기쁨의 삶을 위해서 필요한 모든 것을 개인적으로 포기하는 것과 공동체적으로 그것을 활용하는 것, 엄격함을 행하는 데 있어서의 관대함과 신중함, 대인관계에서의 침묵과 사랑, 수도원장의 권위와 수사들의 견해 표명의 권리 등 훌륭한 수도 생활의 균형을 잘 보여줍니다.
이런 배경을 가지고 중세 그리스도교의 기초를 닦은 사람이 바로 베네딕도의 전기를 최초로 쓴 대 그레고리오 1세 교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