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네딕도 수도원 - 수비아코의 거룩한 동굴 Ⅰ

중세 수도원 이야기

by Roma Vianney


위대한 성인의 삶을 보면 성서상에 나타난 예수님 삶과 유사한 패턴을 쫓아가는 장면을 자주 보게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복음을 세상에 알리시기 전에 사십일 동안 사막에서 단식과 기도를 하셨습니다. 그리고 몸과 마음이 허약해진 마지막 순간에 사탄의 유혹을 받으셨고, 이것을 이기신 후 세례를 받고 공생활을 시작하셨습니다.


베네딕도 성인께서도 수비아코의 절벽 동굴에서 3년 동안 은수자로서 단식과 기도 생활을 하셨습니다. 그리고 사탄의 유혹과 싸우고 이기신 분입니다. 은수자 생활로 ‘나의 하느님’을 만난 베네딕도는 예수님이 공생활로 하늘나라를 보여주신 것처럼 세상으로 나와 수도자들이 공동생활로 어떻게 ‘우리의 하느님’에게 함께 갈 수 있는지 구체적인 삶으로 길을 제시하셨습니다.


노르치아의 성인의 생가 위에 세워진 성 베네딕도 성당. 2016년 지진 전과 후


간단한 생애


성인께서는 480년경 이탈리아 노르치아 (Norcia)라는 도시에서 스콜라스티카 성녀와 함께 쌍둥이로 태어나셨다고 합니다. 17세쯤 돼서 역사적인 도시인 로마로 공부를 하러 왔지만 476년에 서로마 제국이 멸망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았던 시기였기 때문에 로마는 상당히 혼란스러웠고 북쪽에서 내려온 야만족들의 모습도 볼 수 있었습니다.


결국 로마에서 더 이상 하느님을 찾을 수 없다는 실망감을 안고 베네딕도는 자신의 유모와 함께 아필레 (Afille)라는 곳으로 가게 되었고, 이곳에서 자신의 첫 번째 기적을 통해 하느님의 현존을 느끼게 됩니다.


유모는 베네딕도에게 밀을 갈아 빵을 해주기 위해 보자기에 둔 채를 꺼냈지만, 보관을 잘못했던 것인지 채가 망가져 있어 저녁을 해주기 어렵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당혹감과 함께 베네딕도에게 저녁을 해 줄 수 없게 됐다는 절망감으로 채만 바라보던 유모에게 베네딕도가 다가와 채를 받아 들어 기도를 하게 됩니다. 바로 그 순간 기적적으로 망가진 채가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온 것을 보게 됩니다. 하지만 여기서 진짜 기적은 베네딕도가 주님께서 보여주신 그 기적의 뜻을 알아들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차려입을까?' 하며 걱정하지 마라. 이런 것들은 모두 다른 민족들이 애써 찾는 것이다. 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는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필요함을 아신다.
마태오 6장 31-32절


이 기적을 통해 베네딕도는 하느님의 사랑과 손길을 느끼게 되었고, 하느님을 뵙기 위해서는 세상의 것을 통해서가 아니라 오로지 주님께 전적으로 투신하는 마음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래서 자기의 생명과도 같은 유모를 고향집으로 돌려보내고 홀로 수비아코로 들어와 로마노 (Romano)라는 수사에게 자기의 마음을 설명하고 하느님을 만날 수 있는 장소를 청하게 됩니다.


로마노 수사는 자신의 수도원 아래 사람들이 쉽게 접근할 수 없는 절벽에 있는 조그만 동굴로 베네딕도를 안내해 주었고, 베네딕도는 이곳에서 3년 동안 은수자로서의 삶을 살게 됩니다. 이 동굴에서 베네딕도의 은수 생활에 대해 하느님과 로마노 수사 외에는 아무도 몰랐습니다. 베네딕도는 로마노 수사가 긴 줄로 절벽 위에서 내려주는 생명에 필요한 빵과 물만 먹고 지냈다고 합니다.


하느님을 만나기 위해 단식과 기도는 은수자에게는 필수적인 요소입니다. 하지만 모두가 사막이나 동굴에서 하느님을 만나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하느님을 만나기 전에 누구에게나 꼭 먼저 오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사탄입니다. 사탄은 눈에 보일 수도 있지만, 대부분 보이지 않으며 오히려 나도 모르게 마음속으로 들어와 주님으로부터 나를 떨어트리려고 속삭입니다. 우리가 사용하는 사탄, 악마의 그리스 말은 διαβάλλω (디아발로)이고 '둘로 가르다', '벽을 쌓다', '금을 내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예수님에게 사막에서 사탄이 찾아와 유혹했던 것처럼 베네딕도에게도 유형무형의 사탄은 어김없이 찾아왔습니다. 십자 성호와 구마 기도를 하며 물리치기도 하였지만 최종적으로 사탄의 유혹을 이긴 것은 온몸으로 맞서 싸웠을 때입니다. 베네딕도는 자기의 수도복을 벗고 알몸으로 가시덤불에 몸을 던졌다고 합니다. 이것은 바로 하느님께 자기의 모든 것을 던진 온전한 투신이며 결과적으로 하느님 현존에 대한 진정한 체험이었고 베네딕도의 하느님을 만나는 시간이었습니다.


3년의 은수 생활이 지나면서 처음으로 ‘자신의 하느님’을 그곳을 지나다니던 목동들에게 가르쳐 주었고, 근처에 있던 수도자들은 자신들의 수도원장이 되어주기를 베네딕도를 찾아와 청하게 됩니다. 여기서 베네딕도의 은수 수도 생활은 끝이 나고 공동 수도 생활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나의 하느님'에서 '우리의 하느님'의 단계로 바뀐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막 은수자 생활에서 공동체의 수도원장이 된 베네딕도의 규칙은 어땠을까요? 아마도 무척이나 엄격했을 것입니다. 수도자 개개인을 배려하기보다는 베네딕도 자신이 동굴 안에서 하느님을 만나기 위한 방법이나 체험이 우선이었을 것입니다. 결국 수도자들은 수도원장이자 스승으로 모신 베네딕도의 수련 방법에 불만을 느끼며 포도주 잔에 독을 넣어 베네딕도를 죽일 암살할 계획을 짜게 됩니다. 하지만 식사 전 기도 중에 독이 든 잔은 기적적으로 깨져버려 목숨을 구하게 됩니다.


하느님은 베네딕도를 그 수도자 무리에서 구하시기 위해 이 잔을 깨버리신 걸까요? 그렇지 않을 것입니다. 독이 든 술잔은 어쩌면 막 높은 자리에 앉았던 베네딕도의 마음이었을 것입니다. 내가 하느님을 힘들게 만났으니 너희들도 똑같이 힘들어야 한다는 나 위주의 마음, 그것이 어쩌면 나와 다른 타인에게는 독이 될 수가 있는 것입니다. 베네딕도의 독이 든 술잔이 깨진 것이 아니라 아집의 잔에 든 베네딕도의 독한 마음이 여기서 한번 깨진 것입니다.


이 일이 있은 후 베네딕도의 주위로 더 많은 수도자들이 모여 수비아코의 아니에네 계곡 주변으로 열세 개의 공동체를 세우게 되고, 그의 명성은 이제 마을에 있는 본당에까지 알려지게 됩니다. 그러자 이번에는 본당 신부가 베네딕도에게 많은 사람들이 찾아가는 것을 시기하게 되고, 결국 사탄의 속삭임에 넘어가 암살 음모를 꾸미게 됩니다.


동네에서 가장 이쁜 여인에게 독인 든 빵을 들려보내 죽이려고 하였지만 이번에는 까마귀의 도움으로 베네딕도는 목숨을 구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성인은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는 마음으로 수비아코를 떠나 몬테까씨노로 가시게 됩니다. 그때가 529년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까시노 산꼭대기에 있었던 아폴로 신전을 허물어 그 위에 성당과 수도원을 세우셨고 '기도하고 일하라' (Ora et Lavoro)라는 문장으로 대표되는 수도원 규칙서까지 만드신 후 547년 3월 21일에 선종하십니다. 현재 성인의 유해는 몬테까시노 대수도원 중앙 제대에 동생 스콜라스티카 성녀와 함께 잠들어 계십니다.



거룩한 동굴 수도원과 성당

절벽에 붙여 세워진 수도원의 모습
수도원 정문 바닥의 성 베네딕도의 영문 이니셜과 지팡이 모자이크

교황 비오 2세 (1458-1464)는 절벽에 붙여 만들어진 이 수도원을 처음 보고 ‘제비집’ 같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수도원의 건설은 11세기에서 14세기 사이에 여러 번에 걸쳐서 이루어졌습니다. 성인께서 세우신 열세 개의 수도원 중에 지금까지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은 이 수도원보다 100미터 정도 아래 해발 510미터에 위치한 스콜라스티카 수도원입니다.


스콜라스티카 수도원도 베네딕도 성인 당시의 수도원 모습은 아닙니다. 그래도 13세기 때의 코스마데스코 회랑, 14세기 때의 고딕 회랑 16세기 때의 르네상스 회랑까지 수도원의 지나온 시간을 잘 간직한 수도원입니다. 스콜라스티카 수도원에서 있었던 역사적 사건 중 하나는 금속 활판 인쇄술을 발명한 구텐베르크 (1398-1468) 이후 독일을 벗어나 처음으로 1465에서 1467년 사이에 이곳에 있던 독일 출신 수도자들의 도움으로 활자를 이용한 책들을 만들어 냈다는 것입니다.


스콜라스티카 수도원
수비아코 도시 전경
수도원 입구

수비아코의 거룩한 동굴 수도원에 들어서는 조그만 입구 위에서 13세기 때 만들어진 십자가 모자이크를 볼 수 있습니다. 사람 한 명 정도만 들어갈 수 있는 이 좁은 문을 들어서니 주님의 말씀이 들려오는 듯합니다.


너희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이끄는 문은 넓고 길도 널찍하여 그리로 들어가는 자들이 많다. 생명으로 이끄는 문은 얼마나 좁고 비좁은지, 그리로 찾아드는 이들이 적다.
마태오 7장 13-14절


이 문을 지나 긴 현관을 지나면 구세주이신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4 복음사가의 모습이 그려진 옛날 카피톨로의 방 (La sala del Capitolo Vecchio)이 나옵니다. 이곳은 수도자들이 매일 베네딕도의 규칙서를 읽고 듣던 장소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옛 카피톨로의 방

그리스도는 온 우주의 창조주로서 왼손엔 지구본을 들고 있고 세 개의 손가락을 편 오른손으로는 당신이 삼위일체의 하느님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네 명의 복음사가들은 요한 묵시록에 나오는 것처럼 마태오는 사람, 마르코는 사자, 루카는 황소, 요한은 독수리와 함께 그려져 있습니다.


어좌 한 가운데와 그 둘레에는 앞뒤로 눈이 가득 달린 네 생물이 있었습니다. 첫째 생물은 사자 같고 둘째 생물은 황소 같았으며, 셋째 생물은 얼굴이 사람 같고 넷째 생물은 날아가는 독수리 같았습니다.
묵시록 4장 6-7절


성당 안으로 들어가기 전 이 4 복음사가들이 보여주는 성서에 비추어 하느님의 집에 들어가려는 나 자신이 합당한 지를 물어보는 듯합니다. 이 그림들은 16세기 초 페루지노 학파에 의해 그려졌습니다.


다음 편에서 성당 내부를 설명드리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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