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네딕도 수도원 - 수비아코의 거룩한 동굴 Ⅱ

중세 수도원 이야기

by Roma Vianney

*커버 이미지 : 중앙 제대를 등지고 바라본 위층 성당과 아래층 성당으로 내려가는 입구


중앙 제대

수도원 성당은 한쪽을 절벽에 붙여서 건설되었기 때문에 위층에서 아래층으로 내려가면서 둘러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크게 위층 성당 (Chiesa Superiore)과 아래층 성당 (Chiesa Inferiore)으로 구분되어 있습니다.



위층 성당 (Chiesa Superiore)


위층 성당은 고딕 양식으로 되어있습니다. 사실 이탈리아에서 고딕 성당은 크게 유행을 하지 않았습니다. 이미 바실리카 양식과 로마네스크 양식의 성당들이 많이 세워져 있기도 했지만, 11세기부터 이탈리아 밖에서 유행한 이 양식은 이탈리아 사람들에게는 건축의 정통성이 없는 것이라는 생각이 강했습니다. 그래서 고딕이라는 말 안에는 '고트족이 만든 것', 즉 '야만족이 만든 것'이라는 비아냥거림의 표현이 내포된 것이었습니다.


그래서인지 프랑스나 독일 그리고 이탈리아 북부의 고딕 양식을 보면 외적인 모습을 강조하여 우리가 생각하는 수직적 상승의 효과를 주는 첨탑과 스테인드글라스를 통해 들어오는 풍부하고 신비로운 그리스도의 빛의 의미를 강조하였습니다. 반면 이탈리아 중부 지방의 고딕은 내적이고 영적인 의미를 강조하여 성당 내부에 성서 이야기나 성인의 이야기를 벽과 천장에 그려 놓아 마치 성당과 성서가 하나인 것처럼 느끼게 해 줍니다. 그리고 이 시절 대부분 사람들이 문맹자였고 성서는 누구나 볼 수 없었던 시절이었기 때문에 이 방법은 성서의 내용을 쉽게 설명해 줄 수 있는 최고의 방법이기도 하였습니다. 지금의 그림책이나 TV 역할을 했던 것이죠. 그래서 이 성당이 보여주려는 의도와 맞게 그림 설명을 주로 해볼까 합니다.


위층 성당의 절반은 예수님의 이야기, 나머지는 베네딕도 성인의 이야기를 그림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이야기는 14세기 초반에 시에나 학파에 의해서 그려졌고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부터 사도들에게 내려오는 성령 강림까지의 장면들입니다.


그림 1
그림 2
그림 3

그림은 성당 오른쪽 벽 (그림 1)과 왼쪽 벽 (그림 2)에서 예루살렘 입성, 유다의 입맞춤, 제자들의 도망침, 예수님 채찍질 당하심과 빌라도 총독의 십자가형 언도, 십자가를 메고 올라가심이 있습니다. 그리고 정면 쪽으로 예수님이 골고다 산에서 십자가에 못 박히심과 그 주변 모습이 한 장의 그림에 있습니다(그림 3). 계속해서 오른쪽 벽으로 여인들의 예수님 빈 무덤 발견, 막달레나의 예수님 부활 후 첫 목격, 토마스의 예수님 옆구리에 손 넣음, 예수님 승천, 그리고 성령강림의 장면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림 4 (유다의 입맞춤)

이 그림들 중 나의 눈을 유독 멈추게 만든 장면은 유다가 예수님께 입맞춤을 할 때 그의 눈이 바라보는 방향입니다(그림 4). 입맞춤은 예수님을 향하고 있지만 바로 이 사람이 하느님의 아들이라고 얘기하는 것처럼 유다의 눈은 오히려 나를 바라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비록 배신자라는 오명은 붙었지만 최후의 만찬 때 예수님께서 유다에게 너의 일을 하라고 하신 것처럼, 어쩌면 유다도 입맞춤의 방법으로 예수님이 그리스도임을 그림 속 유다인의 대사제들과 자기를 바라보는 그림 밖의 우리 모두에게 증거하고 죽은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을 강하게 들게 하는 장면입니다.


그림 5

이 그림들의 천장에는 서방의 4대 교부인 암브로시오, 아우구스티노, 그레고리오 대 교황, 예로니모 성인과 상체만 보이는 복음사가의 모습이 있습니다 (그림 5).





조금 안쪽으로 들어가면 15세기 초 움브리아 지방 마르케 학파 화가들이 그린 베네딕도 성인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왼쪽 벽의 그림은 절벽 쪽에 있는 부분이라 습기에 많이 훼손되었지만, 그래서 색 바랜 이 벽화의 내용을 더 신비롭게 해주는 것 같습니다.


그림 6
그림 7

3년 동안 동굴에서 은수 생활하는 베네딕도에게 사탄은 베네딕도의 머리가 아니라 마음으로 하느님으로부터 멀어지도록 강하게 괴롭히고 있습니다 (그림 6). 그리고 이 유혹을 물리치기 위해 베네딕도는 알몸으로 가시밭에 몸을 던지고 있습니다. 그림 안에서 하느님께 전적인 신뢰를 두고 있는 베네딕도의 얼굴과, 그 믿음에 베네딕도를 축복하는 하느님의 손, 그리고 그 손을 바라보며 하느님 현존에 놀라는 베네딕도의 손짓 표현까지, 마치 내 눈앞에서 지금 펼쳐지는 기적처럼 보입니다 (그림 7).


그림 8

오른쪽 벽에 있는 그림 (그림 8)은 두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지만 하나의 내용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림 8의 오른쪽 부분은 기도 중에 사탄의 유혹에 넘어간 수도자가 정주성을 어기고 수도원 밖으로 나갔다가 들어와서 성인에게 긴 막대기로 맞는 장면입니다. 벌을 주는 성인의 모습을 보면 오른손으로는 막대기를 들고 있지만 왼손으로는 벌 받는 수도자의 머리를 축복하고 있습니다.


잘못에 대한 벌과 사람에 대한 용서는 같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여기서 성인께서 때린 것은 규칙을 어긴 수도자가 아니라 사실 그 마음 안에 들어가 수도 생활을 괴롭히는 사탄이었습니다. 그 이유를 설명하듯 반대편 쪽을 보면 수도자의 마음에서 쫓겨난 사탄의 모습이 그려져 있습니다. 창문 사이로 성인에게 매를 맞아 놀란 모습으로 성인을 바라보며 바위에 숨어 떨고 있는 사탄이 재미있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통쾌한 느낌마저 들게 합니다 (아래 사진 9).


사진 8의 왼편 그림은 이 일로 벌어진 사건과 기적을 보여줍니다. 베네딕도의 본심을 몰랐던 수도자들은 베네딕도의 이런 행동들이 강압적으로만 느껴졌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식사 중에 독이 섞인 포도주 잔을 드리고 있고, 성인이 그 잔을 축복하자 바로 깨져 독이 든 술이 바닥으로 떨어지는 기적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 기적의 진짜 이유 다 알고 계시죠? (전편 참조)


그림 9




그림 10

제대를 중심으로 오른쪽 날개 복도 아치에 그려진 그림 10은 살아생전 동생 스콜라스티카와의 마지막 이야기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사실 그레고리오 대 교황이 쓴 대화록에 나오는 베네딕도의 전기에 스콜라스티카는 딱 한 번 나오고 있지만 그 등장은 아주 강렬하고 베네딕도 성인의 수도 규칙서 완성에 정점을 찍는 장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림 11

성인께서는 1년에 한 번 수도원 근처의 집에서 동생과 만나 이야기도 나누고 식사도 하였다고 합니다. 해가 저물기 시작하자 여느 때와 같이 성인은 자리에서 일어나 수도원으로 돌아가려고 했는데, 이날은 이상하게도 스콜라스티카가 성인에게 천상의 삶과 기쁨에 대해서 아침까지 이야기를 더 해달라고 청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모든 수도자들이 지켜야 할 규칙을 만들었던 수도 원장으로서 베네딕도는 눈살을 찌푸리며 손사래까지 치며 거절합니다 (그림 11). 그러자 스콜라스티카는 오빠를 바라보지도 못하고 머리를 숙이고 있습니다. 그리고 두 손 모아 오빠가 이곳에 좀 더 머물면서 자기와 사랑의 대화를 나눌 수 있도록 허락해 달라고 하늘로 눈길을 보내며 예수님께 자기의 마지막 기도를 드립니다. 그러자 베네딕도 오른쪽에 있는 한 수도자가 손을 이마에 대고 하늘을 쳐다보고 되고, 맑았던 하늘에 갑자기 먹구름이 끼고 천둥소리를 내며 비가 쏟아지기 시작합니다.


그 순간 스콜라스티카는 성인에게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고 합니다.


오빠는 규칙으로 나의 청을 거절하였지만,
나의 주님께서는 나를 가엾이 여겨 사랑으로 들어주셨습니다.

며칠 후 몬떼까시노 수도원 독방에서 기도를 드리던 베네딕도는 동생의 영혼이 비둘기 모습으로 천사와 함께 하늘로 올라가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깨달았다고 합니다. 하느님의 본성은 사랑이고, 수도자가 하느님을 닮기 위한 가장 중요한 도구는 규칙이 아니라 바로 이 사랑이라는 것을.


베네딕도는 즉시 자기의 형제들을 보내 스콜라스티카의 유해를 수도원으로 옮겨오라고 하여 자기가 죽으면 묻힐 그 자리에 동생을 먼저 묻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베네딕도 성인도 선종 후에 함께 그 자리에 묻혀, 하느님 안에서 하나의 영혼으로 살았던 남매를 죽음마저도 둘로 갈라놓을 수 없었습니다.


베네딕도의 규칙서의 완성은 단지 머리에서 나온 규율이 아닙니다. 같은 수도자가 죽이려고 했을 때 베네딕도의 아집과 교만의 잔이 깨졌고, 본당 신부가 죽이려고 했을 때는 베네딕도의 욕심이 깨져 몬테까시노로 수도원을 옮겼고, 스콜라스티카가 규칙에 어긋나는 것을 요구했을 때는 규칙의 완성은 사랑이라는 것을 베네딕도는 단계적인 삶 안에서 하느님을 통해 알아들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누구나 선한 마음을 가지고 수도원에 들어와 형제적 사랑 안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보편적인 규칙서를 만들었고 1500년이 지난 지금도 모든 수도원의 기본 규칙으로 남아있게 된 것입니다.


스콜라스티카의 선종
마우로의 선종

이어서 볼 수 있는 두 개의 소성당에서는 역시 절벽 쪽에 그려진 그림이라 습기 때문에 많이 훼손되었지만 스콜라스티카의 선종과 베네딕도 성인의 두 수제자 중에 한 명인 마우로의 죽음 그리고 바오로 성인의 참수형이 그려져 있습니다.


성녀 아녜스

두 번째 아치 위에는 머리카락과 얼굴이 들여다 보이는 베일과 편안해 보이는 옷의 주름 그리고 아녜스의 상징인 후광이 있는 어린양을 손에 들고 아주 섬세하게 그려진 성녀 아녜스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림 12

반대편 쪽 두 개의 반달형 벽에는 베네딕도의 또 다른 수제자인 플라치도가 시칠리아에 있는 메씨나 도시에서 설교를 하는 장면이고, 이로 인해 혀를 뽑혀 순교를 하는 장면입니다 (그림 12).


그림 13

다음 (그림 13)은 성 요한과 베드로가 예수님의 이름으로 앉은뱅이를 기적적으로 일으켜 세우는 장면입니다. 이 그림을 보고 있으면 500년 전 동영상을 보고 있는 듯합니다. 앉은뱅이를 서있는 사람과 앉아있는 동일한 인물로 그려 넣음으로써 내 눈앞에서 그때의 기적을 보는 듯합니다.






이어진 문을 통해서 ‘까마귀의 정원’으로 나갈 수 있습니다. 이렇게 불렀던 이유는 성인의 생애 중에 등장했던 까마귀를 기억하며 이곳에서 까마귀들을 보호했었기 때문입니다.


수도원과 성당을 덮칠 듯이 펼쳐져 있는 절벽을 향해 오른손을 들어 막고 있는 베네딕도 성인의 석상을 볼 수 있고, 그 받침대에는 ‘절벽아 멈추어라. 나의 아들들을 해치지 말라’라고 쓰여 있습니다. 낙석을 방지하는 안전 장치들이 하나도 없는 것을 보면서 베네딕도의 기적이 정말 있는 것인가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이곳 절벽을 머리 위에 두고 매일 살고 있는 수도자들의 믿음이 더 크게 느껴졌습니다.


믿음이라는 것은 하느님께 내 마음 공간을 내어주는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는 살면서 위험하고 부족한 것을 세상의 것에 맡기고 찾아 채우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좋은 것보다는 편리한 것을 찾게 되고 주님의 뜻보다는 내 계획 안에 나를 두려고 합니다. 마치 하느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순례를 떠나는 사람인데, 내가 계획을 세워 여행을 떠나는 느낌이랄까요. 순례자는 길을 걷다 넘어져 다리가 부러져도 팔이 안 부러져 감사한 마음을 갖지만 여행자는 스스로를 운이 없고 불행하다고 먼저 생각합니다.

같은 상황에 다른 생각을 하는 것은 하느님께 내 마음의 여지를 얼마나 두었느냐의 차이 아닐까요?


분명 어릴 적보다 모든 것이 편리하고 풍족해졌지만 그럴수록 불안하고 걱정스러운 마음이 커 가는 것은 하느님께 두어야 할 마음의 공간마저 세상의 것으로 모두 채우려는 욕심 때문일 것입니다. 세상의 것은 유한한 답을 주지만 하느님의 것은 절대적인 답을 주십니다.



아래층 성당은 다음 편에 설명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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