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 수도원 이야기
*커버 이미지 : 내려다본 아래층 성당
중앙 제대 앞에 있는 계단을 통해 아래층 성당 (La chiesa inferiore)으로 내려갈 수 있습니다. 내려가자마자 오른쪽 반달형 벽에 비잔틴 양식으로 그려진 인노첸시오 3세 (1198-1216) 교황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림 14). 교황 모자 안에 사각 모양의 문양을 그린 것은 교황이 살아 있을 당시에 이 그림이 그려졌다는 것을 뜻하고 있습니다. 이 교황은 중세 시절 가장 강력한 교황권을 이루었던 사람이지만 구걸하는 수도회로 대표되던 프란치스코 수도회 설립을 인준하였습니다. 뒤에 설명하겠지만 살아있을 당시의 수도회를 인준한 교황과 프란치스코가 같은 성당에 그려져 있는 것도 특별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교황이 들고 있는 문서는 1203년에 반포한 교서이고, 이 내용 안에 거룩한 동굴 수도원의 수입을 지정하고 있습니다. 교서 왼편에는 베네딕도와 그 앞에 무릎을 꿇고 있는 로마노 (+1216) 수도원장입니다. 이 교서 그림은 몇 년 전까지 베네딕도의 다른 그림으로 덮혀진 프레스코화가 있었고, 그것을 떼어내어 지금은 제의방에 옮겨놨습니다. 이 교서 오른쪽에 등장하는 교황도 인노첸시오 3세의 모습이고 이것은 콘솔루스 (Conxolus)라는 화가가 그렸습니다. 이 화가에 대해서는 알려진 것은 거의 없지만, 13세기 중반 로마 학파에 속해 있었던 사람이었고 이 수도원 아래층 성당의 베네딕도 성인의 생애 대부분을 그림을 직접 그린 사람입니다.
이 사람의 이름은 오른쪽 벽감 안에 그려져 있는 아기 예수님과 성모님 이콘 (그림 15)에서 볼 수 있습니다 : ‘Magister Conxolus pinxit hoc opus’ (선생 콘솔루스 이 그림을 그리다). 아직 정확한 원근법이 없었던 이 시기에 그려진 건물의 모습은 마치 카메라의 광렌즈로 보는 것 같고 그 안에 보일 듯 말 듯 한 미소를 가지고 성모님께서 우리 모두를 보고 계십니다. 오른손으로 아기 예수님을 가리키고 있고 눈으로는 우리를 바라보며 이분이 우리들의 주님이라고 알려주시고 계십니다. 그리고 육화하신 아기 예수님은 오른손으로 어머니를 향하여 온전히 의탁하고 계십니다.
이어진 오른쪽 벽에는 베네딕도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림 16). 아필레에서 유모가 건네준 망가진 채가 고쳐지는 첫 번째 기적 이야기, 유모와 헤어져 수비아코의 수도원을 찾아와 로마노 수도사에게 수도복을 받는 장면 그리고 수도원 아래 절벽 동굴에서 은수 생활을 시작하는 베네딕도의 모습입니다.
계단을 따라 내려오면 고투스 (Gotus)라는 초심 수도자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림 17 하단부). 이 이야기는 수도 생활에 있어 중용의 덕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고투스는 고트족 출신의 사람이라는 뜻으로 붙여진 이름이었고, 수도원에 막 들어와 뭐든지 열심한 사람이었습니다. 베네딕도는 고투스에게 긴 낫을 주면서 밭을 만들게 긴 풀들을 베라고 시킵니다. 하지만 고투스의 열심한 낫질 덕분에 그만 낫이 자루에서 빠져 옆에 있던 호수에 빠지게 됩니다. 호수 깊숙이 빠진 낫을 찾을 수 없던 고투스는 두려움에 떨며 수석 제자였던 마우로에게 사실을 고하게 되고 마우로는 성인에게 이 사실을 알렸습니다. 이 말을 들은 성인은 곧바로 고투스에게 달려가 낫이 없는 자루를 달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성인께서 기도 후 자루를 호수에 넣자마자 잃어버린 낫이 붙어서 밖으로 온전한 모양을 드러내게 되고, 성인은 다시 고투스에게 이것을 주시면서 “상심하지 말고 일하여라”라고 말씀하십니다.
베네딕도 규칙에서 일하는 것은 기도하는 것과 함께 수도자의 중요한 덕목입니다. 하지만 일에 치중하여 마음을 흩트리거나 기도 생활을 방해할 때는 그것도 피해야 할 것이 됩니다. 그래서 성인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평온한 마음으로 자기에게 맡겨진 일을 다하게 할 것이다… 아무도 하느님 집 안에서 혼란을 느끼거나 상심하지 않게 할 것이다
베네딕도 규칙서 31장
바로 위의 그림은 겸손과 순명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림 17 상단부). 하루는 플라치도가 아무에게 말을 하지 않고 물을 뜨러 호수로 내려가게 되는데, 물을 뜨던 중 발을 헛디뎌 빠지게 되고 파도는 화살처럼 그를 호수 중앙으로 끌고 가버리게 됩니다. 수도원 독방에 있던 성인은 직감적으로 이 사실을 알게 되고 애제자인 마우로를 불러 빨리 호수로 내려가 플라치도를 구하라고 명령합니다. 수영을 못했던 마우로는 순명하는 마음과 믿음으로 성인에게 축복을 청하고 호수로 뛰어들어 마치 땅에서처럼 뛰어가 목숨이 위태롭던 플라치도의 머리카락을 휘어잡고 육지로 나오게 됩니다. 그제야 자기가 물 위를 걸었다는 사실을 깨달은 마우로는 성인에게 달려가 자기에게 벌어진 일을 이야기하였습니다. 성인은 이 기적은 자기가 잘해서가 아니라 마우로가 순명하는 마음에서 나온 것이라 하고, 마우로는 성인의 말씀의 힘이 없었다면 자기는 아무것도 못했을 것이라고 겸손의 싸움을 하였습니다. 이때 옆에 있던 플라치도가 한 마디 거듭니다: “내가 물속에서 꺼내졌을 때 나는 성인의 옷소매를 보았습니다. 나는 성인께서 직접 나를 구해주시는 줄 알았습니다.” 성인의 말씀의 힘과 마우로의 순명의 힘 그리고 서로의 겸손한 마음이 함께 느껴지는 장면입니다.
그다음 장면은 원수를 사랑하라는 예수님 말씀의 실천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그림 18). 수비아코 마을에는 피오렌죠라는 신부가 있었습니다. 베네딕도가 점점 유명해지고 많은 사람들이 그의 곁으로 모여들어 수도 생활을 하는 모습에 시기심이 점점 더 늘어난 피오렌죠 신부는 결국 사탄의 유혹에 넘어가 독이 묻은 빵으로 베네딕도를 죽일 결심을 합니다. 한 여인이 독에 물든 빵을 천으로 감싸 자신의 손에 묻지 않도록 하며 조심스럽게 성인에게 전해주고 있고, 성인은 감사한 마음으로 받았지만 의심스러운 마음은 떨칠 수가 없었습니다. 식사 시간이 되어 성인은 식탁 밑에서 빵 부스러기를 먹기 위해 날아오던 까마귀에게 빵 덩어리를 던지면서, 다른 사람들이나 동물들에게 닿지 않는 곳으로 빵을 옮겨다 놓으라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명령합니다. 하지만 까마귀도 이 빵에 독이 묻은 걸 알았는지 소리를 지르며 날개를 펴고 빵 주위만을 빙빙 돌고 물지를 않았습니다. 성인은 까마귀에게 걱정하지 말고 물어다 아무도 없는 곳에 버리라고 재차 명령하였고 까마귀는 순명하듯이 빵을 물어 멀리 날아갔습니다. 그리고 서너 시간 후에 무사히 돌아와 성인의 식탁 밑에서 늘 그랬던 것처럼 빵 부스러기를 편안히 먹었습니다.
이 일로 성인은 열세 개 각 공동체에 각각 수도원장들을 세우고 작은 수의 수도승들과 수비아코를 떠나 몬테까씨노로 가기로 결심하였습니다. 피오렌죠 신부는 자기가 베네딕도를 쫓아냈다는 생각에 너무나 기쁜 마음으로 건물 발코니에 올라가 떠나는 그들을 보게 되는데, 전능하신 주님께서는 발코니를 부수어 떨어져 죽게 하셨습니다. 이 사실을 마우로가 떠나가던 베네딕도에게 전하게 되는데 성인은 기뻐하기보다는 오히려 마우로에게 벌을 내렸다고 합니다. 심판은 모두 하느님께 맡기신 분이십니다. 그리고 수도자 삶의 기준은 사랑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원수를 사랑하라. 악담을 악담으로 갚지 말고 오히려 축복해 주어라. 정의를 위하여 박해를 참아 받아라.
베네딕도 규칙서 4장
이 장소에서 수도원의 가장 중요한 곳인 베네딕도 성인께서 3년 동안 은수 생활을 하며 하느님을 기다리고 만났던 거룩한 동굴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림 19). 이 동굴의 안내자이자 유일하게 베네딕도의 거처를 알고 있었던 로마노 수사는 베네딕도에게 필요한 음식을 바구니에 담아 절벽 위에서 내려주었다고 합니다. 이 이야기를 그려놓은 그림은 거룩한 동굴 뒤편 위에 그려져 있습니다. 13세기 때의 코스마 테스코 바닥이 있고 두 손을 가슴에 모아 십자가를 바라보며 하느님을 찾는 소년 베네딕도의 간절한 마음을 담은 대리석상을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은 바로크 최고의 조각가인 베르니니의 제자 라지 (Raggi)에 의해 1657년에 만들어졌습니다.
성 그레고리오 소성당을 올라가는 나선형 계단 입구 오른쪽에는 구마패라고도 부르는 베네딕도의 메달을 볼 수가 있습니다 (그림 20). 11세기경부터 베네딕도의 사탄을 쫓는 기도가 들어간 라틴어 기도문 약자를 넣어 사용하였다고 합니다.
메달의 가장 위의 IHS는 그리스어 대문자 예수(ΙΗΣΟΥΣ)의 앞 세 글자이고,
원 안 십자가 모양의 세로 CSSML는 (CRUX SACRA SIT MINI LUX) ‘거룩한 십자가가 나의 빛이 되게 하소서’
그리고 가로 NDSMD는 (NON DRACO SIT MIHI DUX) ‘악마가 나의 주인이 되지 않게 하소서’라는 기도문이 새겨져 있습니다.
십자가 네 모서리에 있는 CSPB는 (CRUS SANCTI PATRIS BENEDICTI) ‘거룩한 아버지 베네딕도의 십자가’라는 글입니다.
원 둘레 약자는 오른쪽 가장자리에서부터
VRS (Vade Retro Satana)
‘사탄아 뒤로 물러서라’
NSMV (Numquam Suade Mihi Vana)
‘헛된 생각으로 나를 유혹하지 마라’
SMQL (Sunt Mala Quae Libas)
‘네가 나에게 주는 것은 나쁜 것이다’
IVB (Ipse Venena Bibas)
‘그 독은 너 스스로 마셔라’라는 베네딕도의 사탄을 쫓는 구체적인 기도문이 들어가 있습니다.
이 계단을 올라가면 성 그레고리오 소성당이 나옵니다. 이곳에 있는 그림 역시 콘솔루스를 포함해서 로마 학파에서 그렸습니다. 소성당을 들어가면 오른쪽 편으로 바로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의 초상화 (그림 21)를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후광도 없고 손등에는 그리스도를 닮은 못 자국도 없습니다. 이것은 바로 성인께서 살아계셨을 때 그려진 그림이란 걸 뜻하고 있습니다. 프란치스코는 이곳에 세 번을 순례자로 왔다고 합니다. 이 그림은 프란치스코가 선종하시기 3년 전, 오상을 받기 1년 전인 1223년도에 그려진 모습입니다.
왼편에는 후에 그레고리오 9세의 이름으로 교황이 되는 우골리노 추기경이 이 소성당을 축성하는 그림이 있습니다. 추기경 뒤편으로 이 소성당 축성에 참석한 프란치스코의 모습도 볼 수 있습니다. 추기경은 프란치스코의 친구이자 절대적인 후원자이기도 하였습니다. 이 그림의 프란치스코에게도 역시 후광을 찾아볼 수 없어 살아있을 때 그려졌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림 아래 라틴어로 쓰인 내용을 보면 ‘전에 오스티아의 추기경이었던 교황 그레고리오가 이 소성당을 축성하였다. 이 장소는 교황 재위 2년에 그려졌다’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그레고리오 9세 교황이 1227년에 착좌를 했고, 그렇다면 프란치스코가 선종한 1226년의 2년 뒤인 1228년도에 그려졌다는 얘기입니다. 다만 후광이 없는 이유는 프란치스코가 아직 성인품에 오르지 못했다는 것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프란치스코는 그레고리오 9세 교황에 의해 다음 해인 1229년에 성인품에 오르게 됩니다.
하늘나라에 있는 프란치스코가 이 그림에 함께 있다는 것만으로도 수비아코가 얼마나 중요한 장소인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세 번이나 수비아코에 순례를 올만큼 프란치스코에게 베네딕도는 중요한 분이었고, 프란치스코에게 어려운 시기가 있을 때마다 베네딕도의 행동들은 바닷가의 등대 같은 역할을 했을 것입니다. 그러기에 프란치스코도 장미나무에 몸을 던져 베네딕도처럼 사탄의 유혹을 똑같이 이겨냈던 것입니다.
다시 아래층 성당으로 내려오면 ‘거룩한 계단’이라고 하는 마돈나의 소성당과 이어진 계단이 나옵니다 (그림 22). 거룩한 계단이라고 한 것은 베네딕도의 3년 은수 생활 후에 처음으로 가르침을 주었던 목동들의 소성당과 이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거룩한 계단의 양옆 그림의 주제는 ‘죽음의 승리’입니다. 이 그림들도 위층 성당 예수님의 생애를 그렸던 시에나 학파 사람들이 14세기 중반에 그린 것으로써 이 시기에는 죽음에 대한 무력감을 많이 느끼던 시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십자군 전쟁에서의 가톨릭 교회의 패배와 연이어 1348년도에 전 유럽을 휩쓸었던 흑사병 앞에서 나의 사랑하는 가족과 이웃이 힘없이 죽어가는 모습 속에서 죽음은 누구도 막을 수 없는 강한 존재라고 느끼던 때였고, 이 죽음의 두려움과 결부되어 최후의 심판의 그림도 이 시기에 그려지기 시작하였습니다. 오른쪽은 역동성 넘치는 죽음이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한 젊은이의 목에 칼을 꽂고 있고, 그 뒤에 노인들은 단지 기도만 할 뿐입니다 (그림 23). 왼쪽 벽에는 나이 든 수도자가 젊은 청년에게 죽음 후에 몸이 어떻게 되어가는지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림 24).
이 거룩한 계단을 내려가면 ‘마돈나의 소성당 (La Cappella della Madonna)’이 나옵니다. 프랑스에서 ‘마담’이라고 부르는 것처럼 예전에 이태리에서는 부인에 대한 존칭으로 ‘마돈나’라는 말을 붙였습니다. 이 말은 라틴말 '메아 도미나' (Mea domina)에서 유래되었고 우리나라 말로는 ‘나의 여주인님 혹은 나의 여인님’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가톨릭 교회에서는 마돈나에 대해 네 가지 교의, 즉 믿을 교리를 갖고 있습니다.
에페소 공의회 (431)에서 결정한 ‘하느님의 어머니’
콘스탄티노플 공의회(553)에서 공포되고 라테란 4차 공의회 (1215)와 리옹 공의회 (1274)에서 다시 확인된 ‘영원하신 동정녀’, 1854년 비오 9세 교황에 의해 반포된 ‘원죄 없이 잉태되심’
그리고 1950년 비오 12세 교황이 선포한 교의 ‘성모 승천’입니다.
정교회에서는 가톨릭 교회와 갈라지기 이전 공의회에서 결정된 하느님의 어머니와 영원하신 동정녀 교의만 믿고 마리아에게 원죄가 없어진 것은 예수님 잉태 순간부터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래서 마리아는 예수님을 낳을 때 산고 없이 낳았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리고 성모 승천이 아니라 성모 잠들어계심으로 설명합니다.
개신교에서는 이 네 가지 중 하느님의 어머니만, 이슬람교에서는 코란에도 마리아가 등장하지만 오직 예언자로서 예수의 위대한 어머니로만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하여튼, 한 여인으로 태어나셨지만 하느님이신 예수님을 잉태하심으로써 비록 성경에는 적혀 있지 않지만 교회에 내려오는 성전과 우리의 이성으로 유추 연역해 본다면 마리아의 네 가지 교의는 충분히 이해될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우리에게 전해주고 또 예수님에게로 우리를 이끌어 주는 어머니로서의 모습을 그린 마리아를 한 소성당 안에서 모두 볼 수 있는 것은 그리 흔치 않은 기회일 것입니다.
순서적으로 본다면, 창문 위쪽(그림 25)에 가브리엘 천사가 무릎을 꿇고 마리아에게 예수님 잉태를 알리고 있습니다. 그 아래로 내려오면 마구간에서 태어난 아기 예수는 어머니와 아주 그윽한 눈빛을 서로 마주 보고 교환하고 계십니다. 마구간에는 당나귀와 황소를 볼 수 있는데, 당나귀는 고집스러운 이스라엘 백성을 황소는 그 외 모든 백성을 뜻하면서 예수님께서는 모든 사람들을 위해 오신 분이라는 것을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그 옆에는 아기 예수님께서 동방박사의 방문을 받고 계시는데, 아기지만 표정에서 하느님으로서 권능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화가는 그 모습을 아기 예수님의 얼굴에 표현하고 있습니다. 비록 아기지만 세상의 모든 것을 알고 계신다는 것을 표현하기 위해 마치 나이 든 사람처럼 머리를 곱슬 모양과 함께 이마가 훤히 드러나 있습니다.
다시 천정으로 올라가면 (그림 26) 성전에 예수님을 봉헌하는 장면으로 시메온이 예수님을 두 팔로 받아 하느님을 찬미하고 있습니다. 그 뒤쪽으로는 예수님이 성모님과 요셉과 함께 이집트로 피신을 하는 장면이 있고, 그 옆에는 헤로데가 예수를 죽이기 위해 아무 죄 없는 아기들을 죽이는 장면입니다. 그 그림 가운데에는 한 어머니가 아기에게 마지막 입맞춤을 조용히 하고 있고 병사들 중 한 명이 괴물처럼 칼을 들고 접근하고 있습니다.
제대가 있는 정면 벽에는 성모의 죽음이 그려져 있습니다 (그림 27). 성모 주변에는 열두 사도들이 임종을 지키고 있는데 오른쪽 문을 통해 성모의 유해를 훼손시키려는 유다인들이 몰려들어오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나쁜 마음을 품고 들어온 이들은 성모를 보자마자 눈이 멀었고, 침대를 들고 성모의 유해를 훔쳐 가려했던 사람들은 앉은뱅이가 되어 버립니다. 결국 마리아는 온전하게 하늘로 들어 올려져 왼손을 예수님 어깨에 얹고 기댄 채 편안히 있게 됩니다. 계속해서 그 위 천장으로 보면 예수님으로부터 천상 모후의 관을 받으시는 장면입니다.
반대쪽 삼각형 천장에는 성모님께서 당신 망토로 모든 교회 사람들을 보호하고 계십니다 (그림 28).
이 성인에 대해서는 첼리오의 성 스테파노 로톤도 성당에 대한 글에서 이미 간단히 언급을 하였습니다. 이탈리아 어디에서도 보지 못한 특별한 이 성인의 초상화가 이 마돈나 소성당 한편에 있습니다. 부제복을 입고 있는 스테파노의 얼굴과 어깨에 돌을 직접 박아 넣음으로써 돌에 맞아서 순교하였다는 것을 너무나 생생하고 직접적으로 표현하였습니다. 그리고 돌 박힌 이마에서 피가 흘러내리고 있지만 눈 하나 찡그리지 않고 고통스러워하지 않는 성인의 모습에서 그리스도의 현존이 역설적으로 느껴지기까지 합니다. 왼손에는 주님을 끝까지 증거한 승리의 상징으로써 팔마 가지를 들고 있습니다.
이곳에서 계단을 이용해 내려가면 ‘목자들의 동굴’을 볼 수 있습니다 (사진 29). 이곳에서 베네딕도 성인이 은수 동굴에서 나와 이 근처에 있었던 목동들에게 처음으로 신앙을 가르쳐 주었던 곳입니다.
동굴 벽에는 많이 훼손되었지만 두 손으로 가슴 쪽으로 예수님을 잡고 계시는 성모님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림 30). 이렇게 옆이 아닌 앞으로 아기 예수님을 안는 것은 비잔틴의 전형적인 표현법이고 대략 7세기의 것입니다.
아래쪽 문밖으로 나가면, 바닥에 라틴어로 적혀있는 뚜껑을 볼 수 있는데, 그 아래 이곳에서 살았던 수도자들의 유해가 모셔져 있습니다. 수도자들은 죽어서도 수도원 밖을 나가지 않았다고 합니다. 장미 나무들이 심어져 있는 이곳은 베네딕도의 장미 정원이라고 부르고 있고, 가시나무에 몸을 던지며 적극적으로 유혹을 떨쳐 이겼던 두 성인, 베네딕도와 프란치스코를 기억시켜 주는 곳입니다. 이곳에서 수도원 건물을 쳐다보면 절벽과 붙여 만들어진 건물의 모습을 다시 확인할 수 있고 수 세기 동안 다른 양식으로 겹겹이 쌓여 만들어진 모습에 신비롭기까지 합니다.
어린 시절 제가 살던 동네에는 개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 당시야 반려견이라는 단어도 애완견이라는 말도 개들에게 붙여주기에는 사치스러운 시절이었습니다. 대신에 개들에게는 길거리를 자유롭게(?) 활보할 수 있었던 시절이었죠. 쓰레기통을 뒤지던 개들도 있었고, 담벼락에서 햇볕을 쬐며 졸고 있던 개들도 있었고, 무리 져 다니던 개들도 있었습니다.
그러다 어떤 개 한 마리가 닭을 보고 짖으며 잡으러 쫓아가면, 주위의 모든 개들이 그 개 짖는 소리를 듣고 모두 쫓아가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쫓는 개의 모습도 사라지고 짖는 소리도 들리지 않으면 언제 그랬냐는 식으로 원래의 자리로 돌아가 버립니다. 잠자던 개는 자던 자리로, 쓰레기통 뒤지던 개는 쓰레기통으로, 놀던 개는 놀던 장소로... 하지만 그 닭을 본 개는 목표를 잃지 않고 끝까지 잡으러 달려갑니다.
베네딕도 성인께서는 이 수비아코 동굴에서 쫓아가야 할 하느님을 똑바로 보신 분입니다. 바로 나의 하느님을 이곳에서 만나셨기 때문에 활이 활시위를 떠나 과녁을 향해 날아가듯 정확하고 힘 있게 향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신앙은 하느님과 나와의 은밀한 속삭임입니다. 나는 나의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신앙을 지켜가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타인이 떠들고 있는 우리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따라가는 것은 아닌지 스스로에게 질문해야 할 것 같습니다.
베네딕도 성인은 규칙서에서 상세하게 지켜야 할 규칙들을 71장까지 열거하신 후, 수도승이 가져야 할 좋은 열정에 대하여 아래와 같이 쓰셨습니다. 이 열정은 지금 우리에게도 필요한 삶의 지혜일 것입니다.
서로 존경하기를 먼저 하고, 육체나 품행 상의 약점들을 지극한 인내로 참아 견디며, 서로 다투어 순종하고, 아무도 자신에게 이롭다고 생각되는 것을 따르지 말고 오히려 남에게 이롭다고 생각하는 것을 따를 것이며, 형제적 사랑을 깨끗이 드러내고, 하느님을 사랑하여 두려워할 것이며, 자기 아빠스를 진실하고 겸손한 애덕으로 사랑하고, 그리스도보다 아무것도 더 낫게 여기지 말 것이니, 그분은 우리를 다 함께 영원한 생명으로 인도하실 것이다.
베네딕도 규칙서 72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