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렌체의 체르토사 수도원 Ⅱ

중세 수도원 이야기

by Roma Vianney

전편에 이어서...


규칙서의 방 (Sala del Capitolo)

규칙서의 방

이 장소는 여느 수도회와 마찬가지로 규칙서를 한 장(章) 씩 읽거나 수도회의 문제를 이야기하고 중요한 사항을 결정하는 장소입니다. 또한 형제들 앞에서 자기의 잘못을 솔직히 고백하는 장소이기도 하였고, 침묵과 고독 속에 생활했던 수도사들에게는 세상의 중요한 사건 (전쟁이나 질병 등) 들에 대해 소식을 듣는 장소이기도 했을 것입니다.


원래는 대화의 작은 정원 쪽에서 들어가는 문이 있었지만 1496년에서 1501년 사이에 대화의 작은 정원과 사제 수사들의 정원을 잇는 통로를 만들고 이 통로에서 이 장소로 들어가는 문을 남쪽 편에 만들게 됩니다. 그러면서 이 장소의 제단도 동쪽 편에서 식당과 맞붙어 있는 북쪽 편으로 옮겨졌습니다. 제단화인 ‘예수님 십자가에 못 박히심’은 1506년 마리오또 알베르티넬리 (Mariotto Albertinelli)의 작품으로 십자가 아래에는 성모 마리아와 성 요한 그리고 십자가를 잡고 있는 은수자들의 주보성인인 마리아 막달레나가 있습니다.


레오나르도 부오나페 주교 무덤

바닥 중앙에는 이곳 수도원의 원장 수사였다가 비에스테와 코르토나의 주교가 된 레오나르도 부오나페 (Leonardo Buonafe, 1545)의 무덤이 있습니다. 이 무덤 위에 대리석 부조로 된 주교의 모습은 프란체스코 상갈로 (Farancesco da Sangallo, 1494-1576)가 만든 것으로 사실적으로 표현하려고 한 옷의 주름, 손의 세세한 표현 그리고 얼굴의 모습은 자연주의자로써 대리석을 다루었던 작가의 실력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규칙서의 방 출입 나무 문 일부 (성 로렌조의 순교)

입구의 문은 섬세한 나뭇조각과 상감기법으로 16세기 초에 이름은 알 수 없는 피렌체 예술가가 만든 것으로, 이 문만 만드는 데 수년이 걸렸다고 합니다. 아마도 이 사람은 봉쇄 수도자는 아니었지만 그와 같은 마음으로 이곳에서 기도하는 마음으로 정성을 다하였다는 것이 조각칼 자국 하나하나마다 느껴집니다. 사진에 있는 것은 문의 한 부분으로 로마의 일곱 부제 중에 한 명인 성 로렌조가 뜨거운 불이 피어오르는 석쇠 위에서 용감하게 순교하는 장면이고 그 위에 보이는 도시 건물은 콜로세움과 함께 고대 로마를 표현하여 로레조 성인의 순교 장소를 더욱 사실적으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순교자 성 로렌조를 위해 준비한 듯 하늘에서 왕관과 승리의 팔마 가지를 잡고 있는 팔들이 보이고 있습니다.



대화의 복도 (Il corridoio del Colloquio)

대화의 복도

‘휴게 때에 우리는 성 바오로의 다음 권고를 기억하자. “평화와 사랑의 하느님께서 우리 안에 머무시도록 기뻐하십시오. 한마음이 되십시오. 그리고 평화를 간직하십시오.” 담화는 공동체 전체의 모임이기 때문에 따로 홀로 남아 있어서도 또 다른 곳에서 대화해서도 안 된다. 혹시 몇 마디 말이라면 예외이겠지만, 대화는 오로지 모든 형제들이 모인 그곳에서만 해야 한다.’

- 카르투시오 회헌 22,9 -


이곳에서 사제 수도승들은 일주일에 한 번 침묵을 깨고 공식적으로 휴식을 취하며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이러한 대화의 시간을 갖는 것은 다음과 같은 뚜렷한 목적이 있었습니다.


‘이러한 대화들은 우리로 하여금 상호 사랑 안에서 성장하도록, 그리고 우리의 고독을 다소 완화하도록 돕고자 하는 것이다.’

- 카르투시오 회헌 22,13 -


대화의 복도 창문 중 하나

성당과 붙어있는 대화의 작은 정원의 회랑 쪽을 창으로 분리한 긴 복도 공간을 가지고 있고, 여덟 개의 큰 창문은 오후의 햇살로 내부 공간을 따뜻하고 환하게 밝혀주어 수도승들의 생기를 북돋아주고 새로운 애독의 시간을 가질 수 있도록 충분히 도와줄 것 같습니다. 이 창문들 중 두 장은 성 로렌조와 성 마르코를 그려 놓았고 나머지 여섯 장은 성 부르노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 (16세기)

성당으로 들어가는 문쪽에는 롭비아의 안드래아 (Andrea della Robbia, 16세기)가 만든 십자가를 지고 가시는 예수님으로 테라코타에 유리를 입힌 것입니다.



수도원 성당 (사제 수도자 공간과 제단)

사제 수도자 기도석

카르투시오 수도자들은 창립자인 성 부르노의 삶처럼 독방에서 이루어지는 애독에 의한 관상 생활과 성당에서 이루어지는 공동체의 전례를 완전한 조화 안에서 유지하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전례의 가장 중요한 순간들인 아침 기도와 연결된 밤중 기도, 공동체 미사, 그리고 저녁 기도를 위해 성당에 함께 모였고, 다른 네 번의 시간경은 각자 독방에서 바쳤습니다. 공동 전례는 정신의 깨어 있음과 영적인 평정을 유지하기 위해 항상 그레고리안 성가로 하였습니다.


이 성당의 첫 느낌은 다른 수도원 성당과는 뭔가 다르다 였습니다. 건축의 양식이나 시대의 그림들을 떠나서 일단 또 다른 방에 들어온 느낌이었습니다. 보통 수도원 성당들은 시대를 떠나서 성당을 받치는 기둥이 많이 있고 소성당처럼 성당 안에 또 다른 분리된 공간이 있어 조금은 산만한 느낌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곳은 그냥 하나의 장방형으로 된 공간입니다. 기둥도 없습니다. 제단의 압시대 모양도 둥근 형태가 아닌 평면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수도자의 독방에서 성당으로 장소는 바뀌었지만 느낌은 그냥 더 큰 방으로 와서 개인 기도가 공동체 기도 속에 완전히 스며들어 완벽한 조화를 이루어 줄 것만 같습니다. 무언가 앞에 가리는 것 없이 수도자가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며 그레고리안 음률로 바치는 기도 소리는 천장에 그려져 있는 천사들의 연주와 어우러져 천상으로 올라갈 것만 같습니다. 이런 수도자의 소리가 잘 울려 퍼지도록 바닥과 천장에는 구멍들이 뚫려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성당 바닥 일부
사제 수도자 기도석의 조각

1300년대 원래 있었던 옛 기도석은 이 수도원 안에 있는 또 다른 성당인 새로운 성모 마리아 성당으로 옮겨졌고, 지금의 것은 1570년에 시작되어 중간 14년의 공백을 거친 후 1591년에 완성된 것입니다. 상감기법으로 만든 등받이 부분도 아름답고 천사의 얼굴로 조각이 된 팔걸이들도 생동감이 넘칩니다. 한 가지 의문이 드는 것은 이 천사 팔걸이 밑에는 가슴을 드러내고 있는 매춘부들 조각이나 기괴한 동물의 형상을 한 조각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수도자들의 몸은 세속에 있지만 마음은 하느님께 두고 있다는 것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분명 장소가 성인을 만드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자비의 마스크에 앉아있는 수도원 안내자

이 의자 아래 바닥에는 한 가지 숨어있는 사실이 있습니다. 수도자들은 앉아서도 기도하지만 대부분 서서 기도를 하게 됩니다. 그래서 팔걸이도 서 있을 때 기댈 수 있는 높이에 만들어져 있습니다. 서게 되면 의자 바닥을 세워 접게 되는데, 이때 엉덩이를 지탱할 만한 마스크로 조각된 미세르코르디아 (misercordia)라는 받침을 볼 수 있습니다. 수도원에는 대부분 연로한 사람들이 많았었고 그래서 그들을 위해서 엉덩이를 기대고 서있을 수 있도록 만들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앉은 듯 서있는 이 자세가 주님께는 죄송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라는 마음으로 수도자들은 이것을 ‘자비의 마스크’라고 불렀던 것입니다.


정면 제단화와 천장화

정면 제단화는 베르나르디노 포체띠가 1592년에 그린 것으로 성 부르노의 장례식과 그의 영혼이 하늘에 오르는 것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제단 위의 천장화는 카르투시오회에서 성인과 복자가 된 사람들이 그려져 있습니다. 감실 옆 기둥들 위에 있는 12 사도들의 조각상들은 흰색 대리석으로 만든 것 같지만 모두 나무로 만들어진 것들입니다. 16세기 때 잠볼로냐가 만든 것은 나폴레옹 군들에 의해 약탈되었고 지금의 것은 그것을 모조한 것입니다. 중앙 부분과 후진 부분의 천장화는 1655년에 오라찌오 피다니 (Orazio Fidani)의 그림으로 그리스도 수난과 관련된 물건들에 대한 찬미와 천사들의 찬미가로 부르는 영광입니다.



사제 수도자의 사각 정원 (Chiostro dei monaci)

사제 수도자의 정원과 공동묘지

'우리의 주된 노력과 목표는 독방의 침묵과 애독에 투신하는 것이다. 독방은 거룩한 땅이며, 인간이 자기 친구에게 이야기하듯 주님과 그분의 종이 자주 이야기하는 장소이다. 거기서 충실한 영혼은 자주 하느님의 말씀과 일치되고, 신부는 그녀의 신랑과 하나가 된다. 거기서 지상은 천상에 결합되고, 신성은 인성에 결합된다. 하지만 그 여정은 길고, 약속의 땅에 있는 샘에 도달하기 위하여 가야 할 길은 건조하고 메마르다.'

- 카르투시오 회헌 4,1 -


이 정원은 수도원에서 가장 큰 공간을 차지하지만 다른 수도회처럼 산책을 하거나 묵상을 하는 곳은 아닙니다. 오히려 자기의 독채에서 나와 성당을 가기 위한 유일한 길로써 통로의 역할이 컸습니다.


보통은 위생상의 문제로 주거 공간 바깥에 공동 무덤을 만들게 되는데, 카르투시오회는 이 정원 가운데에 무덤을 두고 있습니다. 죽어서도 수도원 바깥을 나가지 않는다는 엄격한 봉쇄 수도원의 모습과 함께 하느님께 온전한 자신의 투신과 일치를 이루려는 강한 마음이 느껴집니다. 십자가가 있는 오른쪽이 사제 수도자의 무덤이고 왼쪽은 평수도자의 것입니다.


14세기에 처음 이 정원을 만들었을 때는 12개의 독채를 가지고 있었고 지금의 것보다 작았습니다. 현재의 모습으로 된 것은 레오나르도 부오나페데 주교가 원장으로 있던 때였고 16세기 초에 완성이 된 것입니다. 열여덟 개의 독채가 서쪽을 제외한 나머지 방향으로 만들어져 있고 넓이는 대략 70 x 60 미터로 70퍼센트 넓이의 축구장 정도라고 생각하면 될 것입니다.


중앙에 있는 우물은 1521년 프란체스코 가브리엘레 (Francesco di Gabbrielle)에 의해 만들어졌습니다.


정원 기둥 위의 흉상

회랑의 각 기둥에는 롭비아의 죠반니 (Giovanni della Robbia)가 1523년에 만든 유리로 덮은 테라코타로 된 66개의 흉상들이 있습니다. 이 흉상의 얼굴들은 구약에 나오는 사람들, 열두 사도들과 네 명의 복음 사가 그리고 교회 박사들과 수도회 창립자들입니다.



사제 수도자의 독방

1층 거실
1층 거실 접이식 식탁과 음식을 넣어주는 문

이곳 사제 수도자들의 독방은 사실 독채라고 부르는 것이 더 맞을 듯합니다. 보통의 수도회들은 하나의 건물에 방을 나누는 형식으로 만들었지만 세상으로부터의 분리와 각자의 애독의 관상 생활을 중요시 여겼던 카르투시오회는 자기들만의 수도 생활에 특화된 개인의 집을 지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공동 기도 시간 외에는 모든 시간을 이 독채에 머물러야 했기 때문에 이 공간은 그들만의 작은 세상이었던 것입니다. 이 독채는 그 안에 머무는 수도자 외에는 누구도 들어갈 수 없었고 각 방마다 드나드는 입구와 평수사들이 음식을 넣어주는 또 다른 조그만 문이 있습니다. 엄격한 애독이라는 것은 이 창에서도 볼 수 있는데, 음식을 넣어줄 때도 서로를 볼 수 없도록 창 안에 칸막이가 따로 있습니다.


독채 내부 개인 정원으로 내려가는 계단과 우물

이 독채는 세 개의 층으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1층은 벽난로가 있고 점심을 먹을 수 있는 방과 함께 침실이 있고 2층은 노동의 하나인 공부를 할 수 있는 방이 있습니다. 공부도 역시 하느님을 기다리며 만나기 위한 목적이었지, 다른 사람들에게 가르치거나 설교할 목적이 아니었습니다. 사제 수도자들조차도 설교라는 사도직이 금지되어 있었습니다. 복도와 연결된 계단으로 아래층으로 가면 우물과 함께 개인 텃밭이 있고 손노동을 할 수 작은 개인 공방도 있습니다. 이곳에서 겨울에는 벽난로용 땔감도 개인적으로 준비하게 됩니다.


외부 구멍으로 보이는 수도자 침대

좀 이상한 것은 독채 내부 복도에서 수도승의 침실을 볼 수 있는 아주 작은 동그란 창문이 하나 있습니다. 이것은 수도승이 점심을 며칠 동안 먹지 않거나 공동 기도를 빠지는 경우 평수도자는 위급한 상황인지를 확인하기 위하여 고독과 침묵을 헤치지 않고 내부를 들여다보기 위해 만들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방 전체가 보이는 것이 아니라 딱 침대의 한 모서리만 보이게 되어있습니다.


현재 이탈리아에는 스무 군데 정도의 카르투시오 수도원이 남아있지만 수도자들이 살고 있는 곳은 남자 수도원 두 곳과 여자 수도원 한 곳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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