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Roma Vianney Dec 24. 2021

내게 오시는 아기 예수

성탄을 기다리며


1. 그레쵸 (Greccio) - 세상의 베들레헴


성탄이 가까워지면 생각나는 도시가 있습니다. 바로 아기 예수님이 태어나신 베들레헴과 쌍둥이 도시라고 불리는 그레쵸 (Greccio)입니다.

해발 705미터에 위치한 그레쵸는 라치오 (Lazio) 주 리에티 (Rieti) 현에 속해 있는 인구 1500명 정도의 아주 작은 마을입니다. 전승에 의하면 그리스에서 도망친 혹은 유배받은 사람들이 와서 세운 도시라고 합니다. 그래서 지금의 이름인 Greccio는 Grecia, Grece, Grecce로 변형돼서 내려왔다고 합니다.


11세기 성의 일부가 있는 건물과 종탑으로 변한 성루
그레쵸에서 바라본 라치오 북동쪽 평원의 새벽 풍경

성 프란치스코는 1223년에서 돌아가시던 해인 1226년 사이에 여러 번 그레쵸에 머무셨다고 합니다. 프란치스코는 이 도시 사람들을 가난하고 단순하다고 하였고 그 어떤 도시보다도 회개가 많이 이루어진 곳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1220년 팔레스타인(1)에서 돌아와 자신이 순례했던 예루살렘을 기억시켜주는 도시이기도 하였습니다.


프란치스코가 활동했던 12세기 초반은 십자군 전쟁이 한창이었던 시절이었습니다. 교회는 십자군에 참여하라고 외치고 있었고 사제들은 십자군을 위한 봉헌금을 독려하였습니다. 말 그대로 교회는 성전이라 외치며 이슬람 사람들을 예루살렘에서 쫓아내기 위해 전쟁 중이었습니다. 하지만 프란치스코는 그 거룩한 땅을 그들과 함께 살기를 원하였습니다.


프란치스코 시절부터 수도자에 대한 호칭이 '혼자 사는 사람' (Monaco)에서 '당신 사이에' (Frate)라는 뜻으로 바뀌기 시작하였고, 그들은 서로를 ‘형제들, 사이에 있는 사람들’ (fratelli)이라고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이 호칭대로 프란치스코는 형제들을 이슬람 사람들로부터 데리고 나온 것이 아니라 ‘이슬람 사이에’ (Fra musulmani) 함께 살도록 하였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그들이 가지고 있는 좋은 습관은 받아들여 사용하려고 하였습니다. 바로 열심한 기도의 방법이었죠. 그들이 한 것처럼 기도하기 전 종탑에 올라가 종을 쳐서 모든 사람들을 기도에로 초대하도록 하였습니다.


이런 마음을 가지고 성지에서 돌아온 프란치스코가 그레쵸에서 예루살렘을 본 것입니다.

프란치스코는 말합니다.


예루살렘에 있는 사람들을 죽이면서까지 그 거룩한 땅을 만지려는 기쁨을 누리기 위해 그곳에 갈 필요가 없습니다. 거룩한 땅은 어디든지 있고 여러분 마음에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그리스도의 사랑을 깨닫는다면 이곳 그레쵸도 거룩한 땅의 일 부분이 될 수 있습니다.

프란치스코가 첫 구유를 봉헌한 탄생 동굴의 바위와 그 위에 그려진 제단화

1223년 성탄이 가까워질 무렵 아기 예수님 뵙고자 하는 열망이 프란치스코의 마음속에 일어나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당시 리에티에 머물고 있던 오노리오 3세 교황 (1150-1227)의 허락을 받아 이 세상의 첫 구유를 만들게 됩니다. 구유는 지금처럼 모형이 아니라 살아있는 구유였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사랑을 느끼게 해 줄 수 있는 단순함이었습니다.  


프란치스코는 그의 친구이자 협력자였던 그레쵸의 요한 벨리타 (Giovanni Velita)에게 여물로 쓸 수 있는 밀짚과 소 한 마리 그리고  당나귀 한 마리를 준비해 달라고 합니다.  마을 사람들은 기쁨에 넘쳐 횃불을 들고 주위에 모여들었습니다. 신부님은 제대에서 미사를 드리고 있고 부제복을 입은 프란치스코는 목각으로 만들어진 아기 예수님을 마치 오래전 준비가 되었던 것처럼 바위 위 움푹  파인 자리에 모시고 강생의 신비를 온몸으로 느끼며 기도합니다. 제대 위에서 성 변화의 신비 속에 예수님이 오시는 순간 아기 예수님도 함께 오십니다. 마을 사람들에게 영적인 눈이 열려 바위 위에 있는 아기 예수님이 눈을 뜨고 살아있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리고 당나귀와 소는 밀짚 여물을 맛있게 먹고 있습니다. 

당나귀는 이스라엘 사람들을, 소는 다른 모든 민족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밀짚은 바로 성체 안에 계시는 예수님이십니다. 이 육화의 신비로 예루살렘의 한 부분이 된 그레쵸는 모든 세상의 예수님 탄생지가 된 것입니다.


탄생  동굴의 제단화는 두 가지 장면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오른쪽은 예루살렘의 성탄으로 요셉과 함께 성모님께서 아기 예수에게 젖을 물리고 있는 장면이고, 왼쪽은 그레쵸의 성탄으로 위에서 설명한 내용입니다. 이 그림은 지오또 학파에 속한 익명의 화가에 의해서 1409년경에 그려졌다고 합니다.



2. 로마 - 유럽 안으로


그레쵸에 최초의 구유를 봉헌한 장소가 있다면, 로마에는 모형으로 만든 유명한 구유가 있습니다. 바로 아르놀포 디 캄비오 (Arnolfo di Cambio, 1240-1310)가 1291년에 만든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구유입니다. 



이 구유는 오노리오 3세 다음 교황이며 프란치스코 수도회 출신 최초의 교황인 니콜로 4세 (1227-1292)의 요청에 의해 만들어졌습니다. 이 교황은 아기 예수가 누워있던 구유 조각 유물(2)이 있는 로마의 성모 마리아 대성당에 성 프란치스코의 마음을 담은 구유를 재현에 놓음으로써, 로마를 순례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완벽한 강생의 신비를 눈으로 보고 직접 느끼기를 바랐던 것입니다. 그래서 원래 이 구유의 자리는 성당 중앙 제대 밑에 있는 이 유물 주변에 놓여 있었을 것입니다.


황소와 당나귀의 머리, 지팡이를 잡고 있는 요셉, 아기 예수를 안고 있는 마리아 그리고 삼 왕으로 이루어진 여덟 개의 조각상입니다. 그런데 아기 예수님을 안고 있는 마리아 조각은 아르놀포의 것은 아닙니다. 기록에도 없이 잃어버렸기 때문에 16세기 말 피에트로 바오로 올리베리 (Pietro Paolo Oliveri)와 죠반니 안토니오 파라카 (Giovanni Anonio Paracca)가 다시 만든 조각입니다. 그래서인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여신상처럼 세련됨은 있지만 고딕-로마네스크 시절의 친근함은 좀 부족해 보이기도 합니다.


프란치스코가 그레쵸에 구유 봉헌 미사를 드린 지 68년 후에 만들어진 이 구유는 현실 세계에 좀 더 구체적으로 다가오시는 모습을 잘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3. 바티칸 - 모든 나라 안으로



바티칸에서는 전통적으로 매년 베드로 성당 광장에 구유를 만듭니다. 올해는 페루 안데스 산맥의 쵸프카 마을에서 준비한 구유로 꾸며 놓았습니다. 이 마을은 해발 4천 미터 정도에 위치해 있고 인구는 1만 명이 조금 넘지만 지역의 문화와 전통을 지키며 살고 있다고 합니다.



바티칸 광장에 만들어진 이 구유의 재료는 세라믹, 아가베 나무, 유리 섬유이고 30점 이상의 조각상으로 되어 있습니다. 쵸프카 마을 사람들의 전통의상을 입고 있고 실물 크기로 만들어졌습니다. 아기 예수를 찾아오는 삼 왕은 전통복장에 악기를 불고 막 태어난 아기 예수의 음식을 걱정하 듯 그들의 배낭과 라마 등에 매달린 포대에는 지역 곡식들이 그득히 담겨 있습니다. 그리고 안데스 산맥에서나 볼 수 있는 과나코, 알파카, 라마, 비쿠냐, 비스카챠 등 다양한 동물들의 조각상들은 안데스 산맥과 이 마을의 현실감을 보여주는 데에 부족함이 없습니다. 그리고 이 행렬의 가장 마지막은 이 모든 것을 보호하듯 페루의 상징인 안데스의 콘도르가 큰 날개를 펴고 바라보고 있습니다. 쵸프카의 전통 천에 쌓여 태어나실 아기 예수님의 모습이 더욱더 궁금하게 다가옵니다.



페루 독립 200주년을 기념을 기억하기 위해 만들어진 이 구유는 그들 삶의 정통성과 연속성을 보여주는 한편 아기 예수님은 인종, 언어, 풍습, 국가에 상관없이 모든 세상 사람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오신다는 것을 이곳을 찾는 모든 사람들에게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프란치스코가 그레쵸에서 베들레헴의 예수님을 이탈리아 사람들에게 보여주었다면, 이곳 바티칸에서는 세상 구석구석까지 각 나라의 옷과 모습으로 오시는 아기 예수님의 사랑을 다시 확인시켜주고 있는 것입니다.


성탄 나무는 이탈리아 돌로미티 지역에 있는 안달로 (Andalo) 시에서 기증한 침엽수과에 속하는 28미터 높이의 가문비나무를 사용하였습니다. 이 나무는 우리나라에서는 설악산, 지리산, 덕유산 등 고산지대에서 자라고 있지만 안타깝게도 점점 사라져 가고 있다고 합니다.



4. 100 PRESEPI IN VATICANO - 나에게로



바티칸 광장 왼편 베르니니가 만든 기둥 열에는 올해로 세 번째 열리는 특별한 구유 전시장을 볼 수가 있습니다.


이름하여 "100 PRESEPI IN VATICANO" 바티칸의 100개 구유(3)


올해는 준비한 기간만 6개월이 걸렸다고 합니다. 그리고 사실 100개가 아니라 총 127개가 전시되었습니다. 이유는 이곳에 참여시키는 우선순위는 아이들이 만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학교나 본당에서 만든 조그만 구유들이 많이 있고 최대한 그들에게 공간을 내어준다는 취지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곳에는 우리가 늘 보았던 전통 구유도 있지만, 제 눈을 더 끌었던 것은 특별한 재료와 각 사람들이 속해 있는 곳에서 만든 구유였습니다.



버려진 시곗줄을 이용해 만든 구유도 있고, 바티칸의 소방관들이 다 사용한 소화기를 이용해 만든 것도 인상적이었습니다.



100킬로그램이나 되는 초콜릿을 파서 만든 구유는 로마에서 가장 오래된 초콜릿을 만드는 트라피스트 수도원의 것을 이용하였다고 합니다. 한참 동안 제 발을 잡았던 구유는 64번 버스 구유입니다. 로마에 오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타봤던 기억이 나는 버스겠지요? 테르미니와 베드로 성당을 오가며 소매치기가 가장 많다는 악명도 갖고 있는 버스입니다. 아기 예수님도 이 버스를 타고 베드로 성당으로 오실 수 있겠다는 우스운 생각이 스쳐 지나갑니다.



버려진 바이올린과 지휘자의 지휘봉으로 만든 구유는 요리조리 뜯어보게 만드는 구유였습니다. 참으로 예수님은 다양한 모습으로 우리 모두에게 다가오십니다.


프란치스코가 시작한 이 성탄 구유가 얼마나 가까이 우리에게 왔는지 느껴지셨나요?

시계를 만드는 사람, 소방관, 초콜릿 만드는 사람, 버스 기사, 악기를 다루는 사람 등등, 온 세상, 각 나라, 각 도시에 오신 아기 예수님이 이제는 우리 한 개인 개인에게 다가오고 계십니다. 가장 낮은 아이들에게까지 말입니다.


그러면.......

여러분들에게 예수님은 어떤 모습으로 오고 계십니까? 우리가 아니라 나에게 예수님은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실까요?

나의 예수님을 만나실 순간입니다.





팔레스타인(1) :

1218년 5차 십자군 전쟁이 시작되었고, 1219년 이집트 다미에타에 도착하여 술탄 멜렉 엘 카멜을 만난다. 그리고 예루살렘으로 순례를 하였다.

구유 조각 유물(2) :

프란치스코 교황은 팔레스타인 대통령 마흐무드 압바스를 방문 후, 이 유물을 원래 있던 자리인 베들레헴으로 옮기기로 결정하였다. 2019년 11월 30일 이 거룩한 구유는 베들레헴에 도착하여 예수 탄생 대성당에 보관돼 있다.

바티칸의 100개 구유(3) :

15개국에서 참여한 구유도 있는 이번 전시회는 1월 9일까지이며 매일 10시에서 20시까지 열려있다. 입장은 당연히 무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