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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ma Vianney Dec 24. 2021

바오로가 로마에 온 까닭은?Ⅰ

고대 아피아 가도를 걸으며 | 순례자가 들려주는 이야기

고대 아피아 가도를 걸으며 | 순례자가 들려주는 이야기

이른 아침 아들을 학교에 데려다준 후 일주일 전 내 계획표에 있던 아피아 가도를 걷기 위해 차를 몰았습니다.

오늘의 목표는 칼리스토 카타콤베에서 출발하여 아피아 가도와 로마 순환선이 맞닿는 곳을 반환점으로 하여 다시 원래 지점으로 돌아오는 것입니다.

걷는 길이 15.5km


칼리스토 카타콤베 들어가는 길의 사이프러스 가로수


1. 로마 밖으로


아피아 가도 주변을 고고학 공원으로 보호구역을 설정하고 있어 옛 로마인을 상상하며 한적하게 걷기에는 최적의 코스입니다. 이 길을 만든 아피우스 장군의 이름을 붙여 기원전 3세기에 만들어진 이 길은 로마의 가도 중에서 가장 오래된 길이며 아직도 많은 부분들이 원래 모습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습니다.


제가 2,300년이나 된 이 돌길을 걷는다는 것이 감개무량하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먼저 떠오른 생각은 우리나라보다 역사를 증거 할 수 있는 유물이 곳곳에 많이 남아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많은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것처럼 이곳은 석조건물이고 우리는 목조건물이라서 그렇다는 이유가 한편으로 이해가 안 되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보존보다는 개발, 복원보다는 재건축이라는 말이 너무나 자연스럽게 먼저 나왔던 시절을 살았었고, 아직도 그 터널을 벗어나지 못한 것 같습니다.


이 로마의 길을 걷다 보면 2,000년이라는 시간 안에 서 있는 나 자신이 자랑스럽기도 하고 내 존재 또한 넓어진 시간 속에서 더욱 풍성해지는 느낌입니다. 이 길은 과거를 지나간 시간에 묶어놓은 것이 아니라 현재의 시간을 과거로 넓히는 마법 같은 일을 매일 벌이고 있기 때문입니다.


아피아 가도

길의 목적은 여러 가지로 말할 수 있겠지만 오늘 저는 소통이라는 것에 더 집중이 됩니다. 나라와 나라, 지역과 지역, 도시와 도시를 연결해 주며 멀리 떨어진 공간을 하나의 공간으로 만들어주는 중심고리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공간의 확대성은 결국 사람과 사람을 연결해 주는 역할로 이어지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로마인들은 단지 살아 있는 사람들만 이 길을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비록 죽음 후에 다른 세상을 믿지는 않았지만 먼저 떠난 사람들을 기억하고 늘 한 공간에 있기를 원하였습니다.


기억하다라틴말 recordari는 re (다시)와 cordis (심장)의 합성어입니다. 결국 로마인들에게 기억이라는 말은 지나간 것을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심장에 있는 무언가를 다시 꺼내는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살고 있는 로마에서 길을 통해 가장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좋은 곳에 그들의 무덤을 만들었습니다.


로마인들의 가족 무덤

아피아 가도를 걷다 보면 길 주변으로 계속해서 나타나는 무덤들이 그 이유일 것입니다. 부모나 형제의 기일이 되면 그들도 지금의 우리처럼 음식을 장만하여 제사를 지내고 기억을 하였습니다. 물론 길의 여왕이라 불리는 이 길 옆에 아무나 무덤을 만들 수는 없었겠지요. 여기에 무덤을 만들 수 있는 사람이라면 적어도 로마의 국익에 기여하고 로마의 시민들에게 봉사한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부자가 아니라 사람을 더 사람답게 살 수 있도록 노력한 사람들에게 주었던 죽음 후의 특혜라고나 할까요. 그럼으로써 그들은 이 길을 지나다니는 모든 사람들 마음속에 살아있었고 보물처럼 심장 안에 새겨 넣은 것을 지금의 시간에 꺼내놓으며 되새겨지는 것 아닐까요?


칼리스토 카타콤베 내부

로마인들의 이런 무덤의 문화는 그리스도인들에게도 그대로 전달이 되었습니다. 로마에서 그리스도인들의 공동묘지라고 알려진 카타콤베가 그 좋은 예일 것입니다. 현재 60여 군데에 남아있는 카타콤베들은 모두 로마 성 바깥 고대 로마인들이 만들어 놓은 길 주변에 만들어져 있습니다. 그중에 이 아피아 가도 주변에는 칼리스토 카타콤베, 세바스티아노 카타콤베, 도미틸라 카타콤베가 잘 정리가 되어있고 내부로 들어가 초기 그리스도인들의 무덤을 직접 볼 수 있습니다.


칼리스토 카타콤베의 그리스도인들의 무덤은 지하 2층 깊이부터 시작을 합니다. 지하 1층에는 지상에 무덤을 만들 수 없었던 가난하고 땅 없는 이교도인들의 무덤이 이미 만들어져 있었고, 로마에서 박해가 시작되자 공적으로 무덤조차 만들 수 없었던 그리스도교인들은 그들의 무덤보다 더 깊은 곳에서부터 만들기 시작하였습니다.


같은 무덤의 형태를 사용하였지만 공동묘지에 대한 부르는 호칭은 달랐습니다. 로마인들은 '죽은 자들의 도시'라는 뜻으로 '네크로폴리스 (Necropolis)'라고 불렀습니다. 반면 그리스도교인들은 '잠자는 곳, 부활을 기다리는 장소'라는 의미로 '체메테리움 (Caemeterium)'이라고 불렀습니다. 같은 장소 같은 형태의 무덤을 사용하였지만 로마인들에게 이곳은 죽어서 끝나는 장소였고, 그리스도인들에게는 다시 부활한다는 희망을 가지고 잠들었던 곳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에게 공동묘지는 두려움의 장소가 아니었고 어머니 자궁 안에서 세상에 태어나기를 기다리는 아기처럼 천국을 기다리는 편안한 장소였습니다.


영어로 공동묘지의 대표적인 단어인 '세미트리 (Cemetery)'의 어원이 된 것도 바로 이 체메테리움입니다.

우리는 어떤 의미로 세미트리를 번역해서 사용하고 있을까요?

단어는 그리스도교적인 단어를 사용하면서 의미는 로마적인 것으로 이해하고 있지는 않은가요?

여러분들에게 공동묘지는 어떤 의미로 다가오고 있습니까?


그리스도교 신자로서 카타콤베에 묻혀있는 사람들처럼 부활을 기다리며 잠자는 장소로 생각한다면 마을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돌아가신 분들을 묻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아피아 가도의 옛 건물을 이용하여 거주하고 있는 사람들의 집


무덤은 산자로부터 멀리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 우리들에게 아피아 가도 주변에 부서진 옛 무덤의 벽에 붙여 집을 만들고 편안하게 지금도 거주하는 사람들의 집을 볼 수 있다는 것이 그저 신기하게 다가옵니다.


2편에서는 로마로 들어오는 바오로 사도와 함께 걸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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