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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ma Vianney Dec 24. 2021

바오로가 로마에 온 까닭은?Ⅱ

고대 아피아 가도를 걸으며 | 순례자가 들려주는 이야기

전편에 이어서...



2. 로마 안으로


출발한 곳에서 8km 되는 지점에서 부서진 로마의 기둥 돌에 앉아 물도 마시고 점심으로 싸간 샌드위치를 먹고 되돌아서서 다시 로마를 향해 걷기 시작하였습니다.


로마를 향해 걸으면서 저도 로마인들이 한 것처럼 심장에 있는 무언가를 꺼내는 기억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아피아와 연결된 바로 그 기억 속에 제일 먼저 나온 것은 사도 바오로였습니다. 교회의 두 기둥 중에 한 분으로서 지금 제가 걷는 같은 길을 먼저 걸어 로마로 오신 분이기 때문이겠죠.


사도 바오로는 로마에 오셨던 적이 있었을까요?

한 번도 없었습니다. 바오로는 로마서 1장 13절에서 로마에 대한 심정을 '비록 지금까지는 좌절되기는 하였지만, 나는 여러분에게 가려고 여러 번 작정하였습니다'라고 쓰고 있습니다. 하지만 바오로에게 로마가 최종 목적지는 아니었고 스페인을 가는 도중에 들려 도움을 받을 생각이었죠. (참조, 로마 15,24) 왜냐하면 로마에서는 자신이 더 이상 일할 것이 없다고 생각을 하였기 때문입니다. (참조, 로마 15,23) 바오로가 생각한 서방에서 선교 지역은 로마가 아니라 스페인이었던 것입니다.


아시는 것처럼 바오로는 로마에서 태어난 오리지널 시민권자가 아니었습니다. 바오로는 현재 터키가 있는 소아시아의 킬리키아 지방의 중심 도시 타르소스에서 유대인으로 태어나 그리스도인으로 개종한 사람입니다. 그래서 소아시아의 문화와 함께 그곳 사람들의 성격도 잘 파악하고 있었습니다. 이것이 바오로가 선교의 첫째 장소로 로마를 택하지 않은 이유였을 것입니다.


세 번의 소아시아 선교를 통해 여러 교회도 세우면서 동방에서 자신의 선교 사도직 사명은 거의 마쳤다는 판단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다음 선교 지역으로 서방을 바라보게 됩니다. 하지만 로마는 이미 그리스도교 공동체가 완성되어 있었기에 사도는 '이 지역에는 더 이상 내가 일할 곳이 없다’(로마 15,22)라고 하면서 로마 교회가 하나 된 신앙 공동체로 성장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편지를 보내게 됩니다.


바오로의 로마인들에게 보낸 편지는 어느 서간보다도 가장 신학적이고 사목적인 편지일 것입니다. 로마서는 바오로의 신학적 완성판이라고 불릴 정도니깐요.


자신이 세운 공동체가 아니었음에도 기원후 50년 즈음의 로마 상황을 잘 파악하고 있었습니다. 로마 공동체는 다른 소아시아에 있던 교회들과는 다르게 크게 두 개의 그리스도교 공동체로 구성이 되어 있었습니다. 하나는 로마의 신들을 믿다가 개종한 사람들을 중심으로 생긴 이방계 그리스도인들 그리고 다른 하나는 유대인들이 개종하여 만들어진 유대계 그리스도인들입니다. 이 두 공동체는 사이가 그리 원만하지 않았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유대계 그리스도인들은 비록 그리스도인이긴 하였지만 하느님께 율법을 직접 받은 선택된 민족이라는 우월심이 강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이들은 로마에 있던 같은 유대인들과도, 그리스인들과도 그리고 다른 로마의 이교도인들과도 다툼이 있었고 종종 로마를 혼란에 빠지게 하였습니다.


이렇게 되자 49년도에 클라우디우스 황제는 이 다툼과 혼란의 주범으로 유대인들을 지목하고 로마에서 추방하게 됩니다. 이때 추방된 유대인 중에 바오로를 만나 개종을 하고 많은 도움을 준 유대인이 바로 아퀼라와 프리스카입니다.(참조, 사도 18,2-3) 그리고 54년경에 쓰신 서간이 바로 로마인들에게 보낸 편지입니다.


프리스카의 가정교회 위에 세워진 성당 정면

추방된 유대인들이 다시 로마로 돌아올 수 있었던 것은 54년 클라우디우스 황제가 죽고 네로 황제가 등극하면서부터입니다.

로마에서 추방당하기 전에는 자신들이 로마 공동체의 중심을 차지했는데, 5년이 지나 돌아온 로마에서 그들의 위치는 예전 같지가 않았습니다. 즉, 이방계 그리스도인들은 로마의 소수 공동체에서 다수 공동체로 바뀌어 있는 상황이었죠. 이렇게 되다 보니 이 두 그리스도 공동체는 또다시 의견 충돌이 일어나기 시작하였습니다. 바오로는 비록 로마에 한 번도 방문한 적이 없지만 로마서 16장 끝인사에 언급한 로마에 살고 있는 많은 형제들로부터 이러한 상황을 이미 들었을 것입니다.


이방인의 사도인 바오로는 어느 한쪽 편을 들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편지의 내용을 보면 다시 로마로 돌아오기 시작한 유대계 그리스도인들에게 말하고 싶은 내용이 더 많게 느껴집니다. 바오로는 이때가 이 두 공동체를 새롭게 하나 되게 할 수 있는 시기가 되었다고 생각하였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유대계 그리스도인들이 로마에서 추방이라는 시련을 겪고 난 후, 역지사지의 심정으로 이방계 그리스도인들의 처지를 이해하려는 마음이 점차 열리고 있었기 때문일 겁니다.


그래서 바오로는 자신의 서간에서 의로움을 얻기 위해 율법보다는 믿음을, 육신의 할례보다는 마음의 할례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어느 한쪽을 옹호하기 위해 쓰신 편지는 당연히 아닙니다. 다만 제삼자적 입장, 즉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구원되기를 바라시는 하느님의 입장에서 어떻게 살아야 공동체에 유익이 되고, 개인적으로는 하느님의 벌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의로운 사람이 될지를 잘 보여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여기서 바오로 사도의 이방인들을 대하는 행동 철학이 드러납니다.

Omnibus Omnia


"나는 어떻게 해서든지 몇 사람이라도 구원하려고, 모든 이에게 모든 것이 되었습니다."

 - 코린토 1서 9장 22절 -


바오로 사도는 회심을 통해 자신 안에 있는 것을 모두 비우고 그 자리에 예수님께서 당신의 지혜로 채워주신 분입니다. 바오로의 가치관이 사라지고 예수님의 가치관이 들어온 것이죠.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모든 이의 구세주가 되신 것처럼 바오로도 Omnibus Omnia가 된 것입니다. 그래서 바오로 사도의 말은 지혜롭고 힘이 있고 일치를 이루는 도구가 된 것입니다.



3. 압송되는 바오로


에페소에서 로마인들에게 편지를 보내고 대략 5년 정도가 지나 바오로는 로마로 압송이 되어옵니다. 바오로는 사도행전 20장 17-37절에 에페소를 떠나 예루살렘으로 가기 전 원로들에게 작별 인사를 하고 있습니다. 이 구절은 로마에서 바오로가 순교 직전에 유언처럼 쓴 마지막 내용이라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비장함이 묻어있습니다. 그리고 자신에게 닥칠 투옥과 환난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도 주님을 통해 알고 있었습니다.


"그날 밤에 주님께서 바오로 앞에 서시어 그에게 이르셨다. '용기를 내어라. 너는 예루살렘에서 나를 위하여 증언한 것처럼 로마에서도 증언해야 한다.'"

- 사도행전 23장 11절 -


이 말씀으로 바오로는 자신의 뜻으로 로마에 온 것이 아니라 주님의 뜻에 따라 로마에 온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을 향한 바오로의 마지막 여정은 더욱 빛을 발하고 있습니다. 유대의 대사제들은 자기들의 땅인 예루살렘에서 바오로에게 그리스도를 퍼트리는 역병으로 고발하며 그곳에서 죽이고 싶어 했습니다. 하지만 로마는 철학이 중심이 되었던 그리스나 종교가 중심이 되었던 유대인들과는 달리 법이 중심이 되어 세워진 나라였습니다.


로마는 기원전 5세기부터 최초의 성문법이라고 할 수 있는 12 표법으로 사회 실정에 맞는 시민법을 만들었던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로마 시민권자는 이 법으로 어디서든 보호를 받았고 재판 없이 시민권자를 심문할 수도 없었습니다.(참조, 사도 22,22-29) 그래서 자신을 죽이고 싶어 하는 유다인들을 뒤로하고 로마 시민권자로서 황제에게 재판받기 위해 상소를 합니다. 그리고 로마로 향하는 바오로의 압송이 시작됩니다. 하느님의 섭리는 오묘하지 않습니까? 분명 바오로는 로마에 가겠다는 마음은 있었지만 죄인의 모습으로 가겠다는 생각은 없었을 겁니다. 하느님은 여러 가지 방법으로 당신의 뜻을 이루시는 분이십니다.


고대 로마의 길 (붉은색 표시가 아피아 가도)와 바오로의 로마 압송 지도

바오로가 로마로 들어오는 모습은 사도행전 마지막 28장에 잘 나와있습니다. 압송되던 배는 폭풍을 만나게 되고 원래의 항로에서 벗어나 드넓은 지중해에서 수십일 떠밀려 다니다가 간신히 몰타섬에 도착하였습니다. 만일 폭풍을 만나지 않았다면 이탈리아 동남쪽 아피아 가도가 시작되는 브린디시로 들어왔을 것입니다.


몰타섬에서 다시 출발하여 이탈리아의 가장 큰 섬인 시칠리아의 시라쿠사에 도착합니다. 그리고 다시 닻을 올려 이탈리아 본토 가장 남단인 레기움 (네죠)에 도착했고 하루 뒤에는 남풍을 받아 나폴리 옆에 있는 푸테올리라는 항구도시에 도착합니다. 이렇게 해서 배를 통한 이동이 끝나고 이곳에서부터 아피아 가도를 이용하여 로마로 압송이 시작됩니다.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바오로는 로마에 한 번도 오지를 않았지만 로마에 있던 사람들이 소아시아에 있던 바오로를 만나고 돌아가면서 이미 그의 이름은 널리 알려진 상태였습니다. 그래서 바오로가 푸테올리에 도착했을 때 신자들의 요구로 칠일 동안 그들과 함께 지냈고 로마에서는 형제들이 트레스 타베르네(1)까지 바오로를 맞으러 58km를 달려 내려왔다고 합니다. 이들을 본 바오로는 '하느님께 감사를 드리고 용기를 얻었다'(사도 28,15)라고 합니다. 죽을 고비를 넘겨가며 재판받기 위해 로마로 가고 있는 바오로의 심정이 어떠했는지 알 수 있는 구절입니다.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주님께서 보여주셨어도 바오로 또한 우리와 같은 연약한 인간이었습니다. 두려움이 찾아올 때 바오로에게 가장 힘이 된 사람들은 같은 그리스도를 믿었던 형제들이었습니다.


트레스 타베르네의 고고학 지역

로마에 도착하여 바오로는 재판을 받았습니다. 결과는 어떻게 나왔을까요?


"우리가 로마에 들어갔을 때, 바오로는 자기를 지키는 군사 한 사람과 따로 지내도 좋다는 허락을 받았다."

 - 사도행전 28장 16절 -


사실 로마 시민권자임을 내세우며 로마에서 재판받겠다고 했던 바오로는 자신의 죄가 크지 않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로마제국이 가장 경계했던 제국의 안정에 대해서도 이미 카이사리아의 총독에게 증명을 하였기 때문입니다. : '내가 성전에서든 회당에서든 성안에서든 누구와 논쟁하거나 군중의 소요를 일으키는 것을 본 사람이 없습니다. 저들은 지금 나를 고발하는 그 내용을 각하께 증명하지도 못합니다.' (사도 24, 12-13) 그리고 다신주의를 지향하는 로마에서 바오로가 그리스도인이든 유다인이든 큰 문제가 되지도 않았습니다.


여하튼 바오로는 군사 한 사람의 감시하에 어느 정도 자유롭게 로마에서 지내도 좋다는 재판 결과를 받았고 유다인들이 모여 살았던 지역에서 자신의 직업이었던 천막 만드는 일과 선교를 하며 만 2년 동안을 지냈다고 합니다. 바오로가 살았다고 하는 이 장소 위에 레골라의 성 바오로 성당 (Chiesa San Paolo alla Regola)이 봉헌돼 있습니다.


레골라의 성 바오로 성당 (출처: 위키피디아)

여기서 바오로가 그렇게 염원했던 스페인을 갔다는 내용은 전해지지 않습니다. 대신에 바오로는 로마에서 순교를 합니다. 64년 네로 황제 시절 로마 대화재가 발생하였습니다. 네로는 방화범으로 그리스도인들을 지목하였고 잔인한 박해도 이루어졌습니다. 이때에 바오로 사도는 목이 잘리는 참수형을 받게 됩니다. 그리고 그의 유해는 지금 성 밖의 성 바오로 대성당에 모셔져 있습니다.


출발지였던 칼리스토 카타콤베 길 위의 사이프러스 나무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합니다.


바오로가 왜 로마에 왔을까요? 겉으로야 재판을 위해 로마로 끌려온 것이지만 좀 더 생각을 해보면 바오로는 하느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온 것이라는 것도 어렵지 않게 느낄 수 있습니다.


바오로는 이미 에페소에서 한 마지막 유언과 하느님께서 보여주신 계시로 자신의 마지막 사명이 될 장소가 로마임을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인간적인 어려움과 두려움을 이 로마와 가까워지는 아피아 가도에서 느끼기 시작하였지만 그래도 형제들이 있어 용기를 얻었습니다. 그리고 로마에 들어와 주님께서 계시하신 것처럼 유대인들과 로마인들 앞에서 용감히 증언을 하십니다. 그런데 그리스어 성서에서 사도행전 23장 11절 보면 로마에서의 '증언'이라는 단어가 순교자의 뜻을 가지고 있는 μάρτυρας (마르투라스)로 쓰여 있습니다. 이 말은 주님께서 바오로에게 준 마지막 사명이 증언뿐만 아니라 로마에서 순교라는 것도 담고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바오로에게 말로써 만의 증언이 아니라 행동으로 당신의 사명을 완성하기를 바라셨던 것입니다. 그럼으로써 순교의 씨앗으로써 바오로는 로마의 큰 나무가 되었고, 이 나무에서 열린 많은 성령의 열매들은 세상의 이방인들을 주님께로 이끌 또 다른 씨앗이 되었던 것입니다.




저는 주님께 기도를 드린다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가를 라타 성녀의 생애를 통해 깊게 느꼈던 적이 있습니다.


산타 리타 대성당 내부 성녀의 유해 (출처 : santaritacascia.org)


이탈리아에 움브리아 지방 카쉬아 (Cascia)라는 동네가 있습니다. 이곳의 유명한 성녀는 리타 (Rita, 1371-1457)입니다. 이 성녀는 하느님 뜻에 온전하게 자신의 뜻을 맡기고 사신 분입니다. 어린 시절 수녀원에 들어가고 싶었지만 부모님의 뜻에 따라 결혼을 하였고, 결혼한 남편이 비신자인 경찰이었지만 남편을 위해 늘 기도하여 결국은 세례를 받게 됩니다. 하지만 경찰 시절 무고한 사람도 감옥에 많이 집어넣었고 그중 한 사람이 복수심으로 출소하여 리타가 보는 앞에서 남편을 칼로 찔러 죽이게 됩니다. 그러자 리타의 두 아들 또한 복수심에 불타 자기의 아버지를 찔러 죽인 사람을 찾아다녔고, 그런 아들을 보면서 리타는 주님께 제발 살인을 저질러 큰 죄를 짓지 않도록 해달라고 기도를 드립니다. 그런데 꿈에서조차 생각지도 못했던 일이 벌어집니다. 건강하던 아들들이 원인 모를 병으로 아버지의 복수도 못하고 죽게 됩니다. 결국 살인하지 말라는 십계명의 죄는 범하지 않았습니다.


주님께서는 리타의 기도를 들어주신 걸까요?

리타는 자신의 기도를 들어주셨다고 생각을 하였습니다. 비록 원인 모를 병으로 자신의 아들은 잃었지만 그 영혼은 세상 사람들이 모두 구원받기를 원하시는 주님의 뜻 안에서 온전히 살아있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기도는 주님에 대한 신뢰 속에 시작이 되어야 합니다. 기도를 이루어주시는 방법과 때 (카이로스)는 주님께서 해주시는 것이니까요. 그래서 내게 주님에 대한 전적인 신뢰가 없다면 ‘주님의 뜻을 이루소서'라는 말을 함부로 입 밖으로 내면 안 될 두려운 기도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입니다.


우리의 뜻은 주님의 뜻 안에 들어가 있는 한 부분입니다. 그런데 때때로 내 뜻이 주님의 뜻이 되기를 바라며 기도합니다. 내가 원한 것이 이루어지면 주님이 내 기도를 들어주셨다 생각을 하고 감사를 합니다. 반대의 경우에는 주님이 내 기도만 안 들어주신다고 하면서 ‘이 세상에 하느님은 없어’라고 불경죄도 서슴없이 하곤 합니다.


완벽한 기도는 나의 기도와 의탁의 기도가 함께 있어야 하는 것 아닐까요? 겟세마니에서 마음이 괴로워 죽을 지경이라던 주님은 기도의 완성이 무엇인지 잘 보여주십니다.


아버지, 하실 수만 있으시면 이 잔이 저를 비켜 가게 해 주십시오.
그러나 제가 원하는 대로 하지 마시고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대로 하십시오.
마태오 26장 39절


하느님의 뜻은 한 가지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하늘나라에 들어올 수 있는 정의로운 사람이 되는 거죠. 당신 뜻을 이루시기 위해 하느님은 우리가 생각지도 못하는 시련을 우리 앞에 두시기도 하실 겁니다. 그래서 '제 뜻대로 마시고 당신 뜻대로 하소서'는 우리 기도의 완성입니다. 이 말이 진심이 되면 우리 앞에 어떤 상황이 벌어져도 항상 감사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사도 바오로는 주님이 주신 사명에 따라 믿음과 희망을 가지고 로마에 온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의 뜻 안에 자신의 뜻을 온전하게 품고 죽음마저 받아들여 로마의 증거자이자 순교자가 된 것입니다. 그래서 순교를 목전에 두고 주님께 모든 것을 의탁하는 바오로의 모습은 너무나 감동적이고 부럽기까지 합니다.


"나는 이미 하느님께 올리는 포도주로 바쳐지고 있습니다. 내가 이 세상을 떠날 때가 다가온 것입니다. 나는 훌륭히 싸웠고 달릴 길을 다 달렸으며 믿음을 지켰습니다. 이제는 의로움의 화관이 나를 위하여 마련되어 있습니다.  의로운 심판관이신 주님께서 그날에 그것을 나에게 주실 것입니다. 나만이 아니라, 그분께서 나타나시기를 애타게 기다린 모든 사람에게도 주실 것입니다."

 - 티모테오 2서 4장 6-8절 -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내가 로마에 온 이유는 무엇일까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주님!

저도 로마에서 의로움의 화관을 애타게 기다리는 한 사람이 될 수 있을까요?




트레스 타베르네(1) :

로마인들이 만든 트레스 타베르네는 세 개의 건물로 이루어져 있었고 아피아 가도를 지나다니던 사람들을 위한 곳이었다. 이곳에는 씻을 수 있는 곳, 식당, 화장실, 말을 바꾸는 곳 그리고 늦은 시간에는 잠을 잘 수 있는 방도 있었다. 지금의 고속도로에 있는 휴게소를 연상하면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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