습관 넘어서기
새로운 길
인문학 강의에서 ‘머무르지 말고 길 위에 서라’는 말을 들었다. 지금까지 살아온 방식에서 벗어나 새로운 방향으로 나아가라는 뜻으로, 다르게 표현하면 ‘유목’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끊임없이 이동하며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 매 순간 변화를 창조하는 삶의 형식. 실제 유목민으로 살지는 못하더라도 사고를 새롭게 하고 일상의 변화를 꾀해야 한다는 말로 들렸다. 마땅히 그래야겠지만 오랜 정착의 습관을 버리는 게 어디 쉬운가. 변화를 바라는 마음은 강렬하지만 짧고, 반복된 습관은 나를 붙잡고 놓지 않는다. 습관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고 좌절하는 일은 늘 일어난다. 얼마 전에도 몸이 아파 고생하며 앞으로는 음식을 신경 써서 먹어야지 했는데 회복되자마자 컵라면을 끓여 먹었다. 다짐을 하는 순간과 컵라면에 부을 물을 끓이는 순간 사이의 거리는 너무 멀다. 어떻게 해야 그동안의 습관을 넘어서 새로운 길 위에 설 수 있을까?
습관의 굴레
넘어서야 할 것은 식습관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중독적인 유튜브 시청, 특정한 상황에서 동일하게 올라오는 좋고 싫은 감정들, 일하거나 휴식을 취하는 방식, 친구가 되는 사람과 갈등을 빚는 사람의 유형 등 행동과 감정, 마음 씀씀이가 이미 정해져 있고 나도 모르게 그 패턴을 반복한다. 습관을 바꾸자고 다짐해도 끝내 이루지 못하고 살던 대로 사니 그게 운명이 된다. 운명은 정해져 있다기보다 그동안의 고정된 행동이 가져온 결과에 불과한지도 모른다. 물론 모든 습관을 다 바꿔야 하는 것은 아니다. 항상성이 전제돼야 생명이 유지될 수 있는 것처럼 일상이 잘 굴러가도록 하는 습관도 있다. 먹고 입고 자는 것을 불규칙하게 하면서 생명을 올바로 지키기는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한 달 내내 카레만 먹는다면 질리고 말듯이 습관에도 적절한 변주가 필요하다. 좋은 습관이라고 해도 구체적인 내용을 다양화할 수 있어야 하고 나쁜 습관은 좋은 방향으로 새로이 물들일 수 있어야 한다.
구체적 전략
안타깝게도 뜻밖의 행운은 바랄 수 없다. 원인을 알면 필연이지만 모르면 우연이다. 우연히 얻은 것은 반복할 수 없으니 새로운 습관이 되지 못한다. 계획을 세운 뒤 눈에 잘 보이는 곳에 붙여 두고 매일 의지를 다지면 새로워질 수 있을까? 이미 수도 없이 해 봤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작심삼일은 오래된 진리다. 하기 싫거나 힘들더라도 도전할 만큼 강하게 원해도 기저에 애쓴다는 마음이 깔려 있으면 삼일을 버티기 어렵다. 습관을 바꾸는 데에는 더 촘촘한 전략이 요구된다. 이제부터 라면을 먹지 않겠다며 말로만 의지를 다질 게 아니라 집에 라면을 사 두지 않는다든지 라면을 대체할 음식을 준비한다든지 함께할 동지를 구한다든지 보상과 벌칙을 마련한다든지 하는 구체적인 지침이 따라야 한다. 의지가 없으면 지침을 지키기 어렵겠지만 의지만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되지도 않는다. 마음을 먹고 환경을 바꾸고 주위에 도움을 구하는 등의 전략이 함께해야 변화를 기대할 수 있다.
정착과 유목 사이
하지만 기가 막힌 전략을 세워도 실패할 가능성은 여전히 열려 있다. 의식주를 갖추고 안정적으로 생활하던 정착민이 가진 것을 버리고 낯선 땅 위에 서면 좌충우돌할 수밖에 없다. 어떤 찔림은 상처가 될 테고 어떤 부딪침은 교훈이 될 것이다. 결과가 어떻든 모든 과정은 배움의 연속이다. 실패나 성공에서 배우고 배운 것을 변주하며 사는 한, 머무르려고 해도 머무를 수 없을 듯하다. 습관을 벗어나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것은 병이나 사건 때문일 수도 있고 반복에서 오는 지루함 때문일 수도 있다. 어느 쪽이든 내가 왜 변하고 싶고 변해야 하는지를 생각하고 일상을 관찰하고 방법을 탐구해야 승산이 생긴다. 한 번의 성공이나 실패가 끝은 아니다. 섣부르게 좌절하거나 승리감에 도취되지 않는다면, 매 순간 변화를 감지하고 새로움을 창조하는 유목민의 자세를 본받고자 한다면 어디에 있든 내가 선 그곳이 새로운 길 위가 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