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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호서림 Mar 27. 2024

불만족을 다루는 방법

술 먹고 늦게 와도 괜찮아

이것 아니면 저것

  경기나 게임, 내기의 결과는 이기거나 지는 것이고 문제에는 맞거나 틀린 답이 있다. 정답이 없는 과제라고 해도 잘했거나 그렇지 못하다는 구분선이 어딘가에서는 그어지기 마련이다. 삶에 경험이 쌓일수록 맞고 틀림, 옳고 그름, 이쪽과 저쪽을 나누는 경계가 명확해진다. 좋은 것과 나쁜 것, 내 편과 남의 편을 헷갈리지 않아야 손해가 준다. 하지만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다고 늘 좋기만 한 건 없고 항상 내 편이기만 한 사람도 없다. 선인을 응원하고 악인을 욕하기는 쉽지만 선 또는 악으로 지나치게 단순화하면 진실을 왜곡할 위험이 크다. 그리고 무엇보다 선명한 이분법은 갈등을 낳는다. 한 번 불거진 갈등을 수습하는 것은 여간 곤란한 일이 아니다. 그런데도 나는 습관화된 이분법적 사고로 가까운 사람들과 갈등을 겪는다. 만약 이분법을 넘어설 수 있다면 갈등도 벗어나게 될까?     


외적인 평화

  결혼 후 배우자와 살면서 서로 생활 방식이며 생각이 얼마나 다른지 심심치 않게 확인했다. 사안에 따라 크고 작은 진통을 겪었는데 아직도 풀지 못한 숙제는 ‘술’이다. 술을 마시고 늦게 귀가하는 상대를 보면 어김없이 화가 났다. 대화로 해결해 보자는 생각도 했지만 이야기할수록 입장 차만 확실해질 뿐이었다. 그런데 마음공부를 하면서 문제가 나에게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미성년자도 아니고 다 큰 성인이 자신의 의지대로 술을 마시는 게 왜 문제인가. 그럼에도 나는 내 생각이 옳고 상대의 행동은 그르다며 상대를 탓했다. 과음은 몸에 나쁘고 다른 부작용도 있지만 그것이 상대가 누려야 할 자유보다 중요하지는 않다. 이런 생각이 들자 화를 내거나 잔소리를 하지 않게 되어 평화가 찾아왔다. 그런데 어딘가 찜찜한 평화였다. 여전히 이분법의 세계에 있었기 때문이다. 잘못한 게 없는 그를 탓한 내가 문제니 불만을 드러내지 않으려고 조심했다. 하지만 과음을 하고 늦게 귀가하는 것은 잘못이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었다. 내가 옳다는 생각은 그대로인데 그것을 주장하고픈 마음만 참고 있으니 겉으로는 고요해 보여도 속으로는 소용돌이가 쳤다.     


이것도 맞고 저것도 맞다

  이것도 저것도 다 옳다는 말은 말장난처럼 느껴진다. 1번이 정답이면 2번은 오답인 게 당연하지 않은가. 하지만 기준(관점)이 다르면 정답은 1번이면서 동시에 2번도 될 수 있다. 진짜 문제는 복수의 답이 아니라 그중에 내가 원하지 않는 게 있다는 것이다. 좋고 싫음이 뚜렷하고 옳고 그름에 대한 기준이 명확할수록 운신의 폭은 좁아진다. 12시 전에 귀가해야 한다는 기준이 확고하면 무수히 등장하는 삶의 변수를 감당하기 어렵다. 세계가 좁으면 갈등은 늘게 되므로 그것을 풀려면 넓은 세계로 나가야 한다. 그러려면 이게 맞으니 저건 틀렸다는 생각을 이것도 맞고 저것도 맞는다는 생각으로 바꿔야 하는데 이런 전환은 다른 것에 대한 ‘존중’ 없이는 불가능하다. 이분법적 사고에 익숙해지며 점차 타자를 존중하는 법을 잊어버린 것 같다. 나의 주장과 마찬가지로 그의 주장도 타당하다. 서로 다른 개체가 다른 생각을 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일 뿐 문제될 게 없다.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생떼를 부리고 싶을 때도 있지만 그랬다가는 어른의 체면을 잃게 된다. 겉으로 싫은 내색을 안 하는 것을 넘어 진심으로 나와는 다른 생각을 가진 상대를 존중할 수 있어야 내면의 소용돌이를 멈출 수 있다.     


갈등과 존중

  갈등은 부정적인 것이므로 피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다른 사람과 갈등 없이 산다는 것은 비현실적이고 오히려 위험한 일이다. 생각이 충돌하지 않으려면 모두가 같은 생각을 해야 하는데 그런 획일성이야말로 우리가 경계해야 하는 것 아닌가. 내 마음에 들지 않을지라도 나와 다른 타자를 기꺼이 인정할 수 있다면 갈등은 있어도 없는 것이 된다. 불만족스러운 상황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이제야 길을 찾은 것 같다. 잘잘못을 따지거나 묵묵히 참는 것은 내면을 편안하게 해 주지 않는다. 이분법이나 갈등을 모두 뛰어넘으려면 존중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적고 보니 너무나 당연해 보이는 이 한 문장을 얻기 위해 나는 먼 길을 돌아왔다. 그리고 나와 다른 것을 존중하는 태도를 갖추기 위해 또 먼 길을 가야할 듯하다. 아무리 갈 길이 멀어도 한 발 한 발 흔들림 없이 갈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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