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로 보는 일상의 재발견 –자음과 모음 근간-
산거(山居)
옛 시에는 산거(山居) 또는 산가(山家)의 제목들이 많이 눈에 띈다. 지금도 산 속에서 사는 삶을 한번쯤 꿈꾼 곤 한다. ‘나는 자연인이다’와 같은 프로그램이 인기를 끄는 것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사람들 속에서 안달복달 아등바등 살고 싶지 않다. 새소리, 바람소리, 시냇물 소리에 몸을 온전히 기대고 싶다. 산 속 생활은 누구나 한번쯤 꿈꾸긴 하지만 누구나 그렇게 살 수는 없다. 옛 사람들은 산속 거처를 어떻게 그리고 있었을까?
봄 가도 꽃은 아직 피어 있는데
날 맑은데 골짜기 그늘이 졌네
소쩍새 한낮에도 울어댔으니
사는 곳 깊은 줄을 지금 알겠네.
春去花猶在 天晴谷自陰
杜鵑啼白晝 始覺卜居深
이인로(李仁老),「산거(山居)」
봄은 진작 지나갔는데 산속이라 아직도 한기가 있어 꽃은 봄인 줄 알고서 지지 않았다. 활짝 갠 날인데도 골짜기에 그늘이 져서 밤중처럼 깜깜하다. 계절도 시간도 모두 착각할 만큼 깊은 산속에 있는 거처다. 여기서 원문은 두견새라 나오지만 사실은 소쩍새다. 옛 사람들은 두견새와 소쩍새를 구분하지 못하고 착각들을 많이 했다. 그러나 두견새와 소쩍새는 전혀 다른 새다. 두견새는 접동새라고 하고 한자어로는 두우(杜宇)·자규(子規) 등이라 하는데 밤낮으로 운다. 반면 소쩍새는 생김새 자체가 완전히 달라서 올빼미나 부엉이처럼 생겼는데 밤에만 운다. 밤에만 울어야 하는 소쩍새가 한낮인데도 밤인 줄 잘못 알고 울어댄다. 결국 계절, 시간, 동물까지 모두 착각할 만큼 깊은 산골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난 이곳이 좋다. 깊은 곳에 사니 내 안에 있는 영성(靈性)과 마주할 수 있다.
삽살개 사립문서 마구 짖는데
창밖엔 흰 구름이 자욱하였네.
돌길인데 그 누가 찾아오리까
봄 숲에서는 새만 저 혼자 우네.
柴扉尨亂吠 窓外白雲迷
石逕人誰至 春林鳥自啼
-허경윤(許景胤, 1573~1646), 「산거(山居)」
삽살개가 요란하게 짖어 대서 혹시나 누가 왔나 창밖을 내다 본다. 사립문 밖에 사람은 보이지 않고 흰 구름만 자욱하게 깔려 있었다. 이런 험한 돌길을 뚫고 찾아올 사람이 있을리 없었다. 혹시나 하는 기대는 역시나 하는 실망으로 금세 바뀌었다. 가만 보니 봄숲에 우는 새를 보고 삽살개가 울어댄 것이다. 봄도 새도 돌아왔지만 돌아오지 않은 것은 무엇일까? 오지도 않을 그 누군가를 그리워한다. 산 속에 살지만 그리움까지 무뎌지지는 않았다.
화담에 자리 잡은 초가집 한 채
맑고 깨끗해 신선 사는 데 같네.
창을 열면 산들은 모여 들었고
침상 맡서 냇물소리 들려온다네
골 깊으니 바람은 산들 불었고
땅 외지니 나무들 무성하였네.
그 어름에 소요하는 사람 있으니
맑은 아침 책 읽길 좋아한다네.
花潭一草廬 蕭洒類僊居
山簇開軒面 泉絃咽枕虛
洞幽風淡蕩 境僻樹扶疎
中有逍遙子 淸朝好讀書
서경덕(徐敬德), 「산거(山居)」
화담은 개성 동문 밖에 있는 지명이면서 작가의 호이다. 여기에 초가집 한 채가 있는데 마치 신선이 사는 곳과 같다. 산들이 사방에 가득하고 냇물이 흐르는 곳이었다. 산들 바람은 불어대고 나무들은 무성했다. 그 풍경들 속에서 이리저리 소요하곤 했는데, 아침이면 책을 소리 내어 읽어본다. 아무나 살 수 없는 그런 삶이었다.
사람들 틈에서 살다보면 사람이 싫고, 사람들과 떨어져 살다보면 사람이 그립다. 차라리 사람들을 조금 그리워하면서 혼자서 뚝 떨어져 살고 싶다. 무엇보다 산 속 생활은 자신의 내면과 온전히 마주하게 만들어준다. 그동안 나는 참 나와 멀리 떨어져 살았다. 온전한 나와 마주하며 그렇게 살아가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