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로 보는 일상의 재발견 –자음과 모음 근간-
이가 빠지다, 낙치(落齒)
노년의 신체 변화로는 눈이 침침해지고[眼昏] 귀가 어두워지며[耳聾], 머리가 벗겨지고[頭童] 이가 빠지며[齒落], 주름살이 생기고[面皺] 허리가 굽는 것[背傴]을 들 수 있다. 전반적으로 신체의 모든 기관이 예전과는 달리 기능이 퇴화된다는 점에는 똑같다. 그러나 낙치는 외모와 기능의 변화가 동시에 진행된다. 낙치로 인해서 외모는 훨씬 더 추레해지고 식사를 하는데 불편을 느끼게 된다. 눈에 띄는 신체의 훼손이라는 면에서는 흰 머리가 생기고 머리가 빠지는 것과 같지만, 낙치는 이것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한 충격을 준다. 옛 사람들은 낙치를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까?
노쇠하여 기혈이 부족해지니
치아가 온전한 것 하나도 없네.
작년에는 서른 개 있었다지만
올해는 겨우 스물여섯 개뿐이네.
남은 것도 온전치 못하여서는
흔들리고 부러진 것 투성이었네.
고기를 먹을 때는 씹지 못하고
생선 먹을 때에도 씹기 어려우니
아무리 좋은 음식 먹게 되더라도
보이기는 오훼와 다를 바 없네.
배 채울 때 입에 맞는 음식 드무니
무엇을 먹은들 물리지 않겠는가
술동이에 좋은 술 담겨 있으니
마시면 술술 잘도 넘어갔었네
年衰氣血少 牙齒皆隳落
前年有三十 今歲纔卄六
存者且無完 或搖或中折
食肉不能嚼 啗魚又難齧
雖逢八珍味 視之如烏喙
充腸少可口 何食能無退
樽中有好物 且進呑無礙
이응희(李應禧), 「이가 빠져서[落齒]」
치아가 성한 것이 하나 없었으니 올해 들어 이가 네 개나 더 빠졌다. 그나마 남아 있는 것도 멀쩡한 것이 없다. 아마도 해가 갈수록 이는 더 빠지게 될 것이다. 이가 상해서 음식을 씹어 넘기기 어려우니 좋은 음식도 부자(附子)와 같이 독극물처럼 보인다. 음식을 삼키기 어려운 탓에 음식을 마다하기 일쑤다. 그나마 술은 씹지 않아도 되니 입 안으로 잘도 흘러간다. 이가 빠지게 되면 식사 시간이 고통의 시간으로 뒤바뀌게 된다.
…전략…
올해에 이가 세 개 빠지게 되니
내년엔 어떨 런지 알 만하도다.
나는 본래 초췌한 모습이었는데
지금부터 더욱 더 지탱치 못하리.
볼따구는 푹 들어가 흔들거리고
입술은 삐딱하게 말려 올라갔네.
거울 볼 때 나조차 부끄러우니
남들 볼 때 무슨 태도 보이겠는가?
…후략…
今年落三箇 來歲從可推
我本羸削容 自此益不支
頰輔動搖陷 口唇承載欹
攬鏡實自羞 對人作何儀
정범조(丁範祖), 「이가 빠지다[落齒]」
올 한 해에 세 개의 치아가 빠졌으니 내년에는 또 얼마나 많은 치아가 내 몸에서 빠져 나갈까? 본래부터 몸이 깡말라 볼품이 없었는데 더더욱 형편없는 몰골로 바뀌어가고 있다. 거울을 볼 때마다 이게 정말 내 얼굴이 맞나 부끄러울 정도이니 남들을 대할 때 자꾸 위축이 된다. 치아의 손실은 용모의 변화를 급격히 초래한다. 자신의 달라진 용모에 스스로도 낯설게 느껴진다.
귀도 먹고 눈까지 침침한데다
이 빠지고 혀만이 남아있구나.
물건 봐도 분간키 쉽지 않았고
딱딱한 건 뱉어야지 어이 삼키랴.
말을 들어도 도통 들리지 않고
수시로 멍청하게 졸기만 하네.
신세를 잊고 산지 오래됐으니
시끄러움 피해 숨어 삶 즐기리라.
耳聾眼復暗 齒落舌空存
視物已難辨 吐剛焉得呑
聽言常聵聵 瞌睡只昏昏
身世曾忘久 深居樂避喧
권근(權近), 「스스로 읊다[自詠]」
귀와 눈, 이까지 성한 곳이 하나도 없다. 여태 어려울 것이 없이 해왔던 많은 일들이 불편한 것 투성이다. 그렇다고 나쁜 것만 있는 것도 아니다. 여기서는 들리지 않게 되면 일어나는 현상을 주로 언급했다. 오히려 귀가 들리지 않게 되니 옳다 그르다 남들과 따지지 않고 자기 안에 침잠할 수 있는 시간이 늘어남을 기쁘게 여겼다. 이 시에서 언급되지는 않았지만 이가 없어서 좋은 점도 찾을 수 있다. 먹는 것이 불편하니 과식하지 않고 과식하지 않으니 살도 찌지 않는다.
낙치(落齒)는 다른 신체의 노화보다 뚜렷해서 노화를 더더욱 점감하게 만든다. 빠진 이가 다시 생겼다는 이른바 낙치부생(落齒復生)의 바람이 이루어진 일도 있다지만 실제로는 아주 드문 일이다. 이가 빠지는 것을 머리카락이 빠지는 정도와는 비교하기 어렵다. 눈과 귀의 노화는 불편하기는 하지만 적어도 외관상으로는 차이를 알기 힘들다. 그래서 낙치는 가장 강렬하게 노쇠를 자각하게 만든다. 대개는 낙치라는 사건을 통해 불편과 고통을 토로하고 있지만, 어차피 바뀌지 않을 노화를 인정하고 순응하는 모습도 보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