닳고 닳은 얼굴들 자리에 가득하니
[11] 닳고 닳은 얼굴들 자리에 가득하니
塵容俗狀滿坐 닳고 닳은 얼굴들 자리에 가득하니
其賓張三李四 손님은 그저 그런 사람들뿐이네.
貿販歌哭聒耳 장사하는 소리와 노래하고 곡하는 소리 귀를 찌르니
其隣東井西市 그 이웃은 이 동네 아니면 저 동네.
[평설]
이 시는 시인의 친구와 이웃을 묘사하고 있다. 찾아온 손님이란 곧 친구들로 그들은 세속에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이다. 말쑥하게 차려 입은 관리도 아니요 초탈하고 고결하게 생긴 은자나 도사도 아니다. 거리와 시장에 나가면 흔히 볼 수 있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시인의 이웃들은 장사를 하거나 때로 노래하고 곡을 하며 자신의 감정을 가감 없이 드러내는 사람들이다. 그들이 호객하며 떠들고 노래하고 곡하는 소리가 언제나 들려온다. 그러니 그 이웃이란 도시라면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특별할 것 없는 동촌이나 서촌, 동시나 서시의 사람들이다.
이러한 친구와 이웃을 가진 시인 역시 장삼이사이자 동정서시의 평범한 세속의 사람일뿐이다. 전반부 2구는 집안으로 찾아온 사람들의 얼굴과 옷차림으로 자신의 친구를 시각적으로 드러냈고, 후반부 2구는 주위에서 들려오는 떠들썩한 소리로 자신의 이웃을 청각적으로 나타냈다. 이는 곧 자신의 자화상이기도 하다.
그는 이러한 속세의 사람들과 평범한 이웃이 바로 가장 중요한 사람들이고 이웃이라고 말하는 듯하다. 그러한 가치평가는 시에서 하고 있지 않지만, 이언진의 사상과 그의 전체 시와 연관하였을 때 고관대작(高官大爵)과 도골선풍(道骨仙風)의 인물이 아니라 이들이야말로 삶과 역사의 중심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 속에는 물론 자신까지 포함된다. 세속적 삶이야말로 당당한 세상의 중심임을 말하고 있다. 곧 이는 골목 안의 삶에 대한 긍정이자 당당한 선언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생각은 전겸익의 생각하고도 맞닿아 있는데,『木齋初學集』권33「王德操詩集序」와『木齋有學集』권13「病榻消寒雜詠四十六首」 서문에 잘 보인다.
[어석]
塵容俗狀: 먼지 묻은 얼굴에 세속의 티가 나는 외모. 『木齋初學集』 권33「王德操詩集序」에 나온다.
張三李四: 장씨의 셋째 아들과 이씨의 넷째 아들. 즉 평범한 사람들.
東井西市: 동정과 서정, 동시와 서시. 즉 평범한 장소나 동네의 이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