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언진의 호동거실 다시 읽기 14

호호백발 늙은 귀족이

by 박동욱

[14] 호호백발 늙은 귀족이

白髭髮老貴人 호호백발 늙은 귀족이

擁被臥擁被坐 이불 쓰고 누웠다가 이불 끼고 앉았다 하면서,

五世孫籌生計 오세 손자까지 생계를 따져 보니

田不廣屋不大 밭이 넓지도 않고 집이 크지도 않네.


[평설]

이 시는 ‘가진 자’의 추악하리만큼 이기적인 모습을 그리고 있다. 늙은 귀족이 이불 속에 들어앉아서 오세 손자의 생계까지 따져보니, 지금 자신이 소유한 엄청난 논밭이나 집으로도 부족한 것 같다고 생각한다. 소강절은 살아생전 자기 자손의 운명을 점쳤는데 4대손까지는 아무런 일이 없었다. 그러다가 5대손이 중년에 이르러 역적의 누명을 쓰고 사형당할 수도 있는 운명이라고 점괘가 나오자, 가문에 빠져나올 비방(祕方)을 남겨 전하게 해서 끝내 구해냈다.

백성들은 하루하루 먹고 살기가 버거워서 끼니 걱정을 한다. 그러나 늙은 노인은 상상할 수도 없을 만큼 많은 재산을 소유하고도 만족할 줄 모른다. 늙어 죽을 날이 얼마 안남은 노인은 자신에게 얼마 남아 있지 않은 시간들을 의미 있게 쓰지 못하고 헛된 걱정에 사로 잡혀 있으니 끝이 없는 인간 탐욕을 잘 보여주다 할 수 있다. 자식에게 물러줄 것은 눈에 보이는 재산이 아니라, 삶에 대한 현명한 지혜와 따스한 시선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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