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로 보는 한양’ 28

몽답정(夢踏亭), 꿈속에서 거닐었던 정자

by 박동욱

몽답정(夢踏亭), 꿈속에서 거닐었던 정자


창덕궁 후원은 후원(後苑), 상림원(上林苑), 내원(內苑), 북원(北苑), 금원(禁苑) 등으로 불리어졌다. 비원(秘苑)이라 불리게 된 것은 20세기 들어서부터다. 이곳에는 옥류천(玉流泉), 농산정(籠山亭), 주합루(宙合樓), 태액지(太液池), 대보단(大報壇) 등 유명한 장소가 많이 있었다. 지금 후원의 관람코스는 후원입구, 부용지, 애련지, 관람지, 연경당, 향나무길, 퇴장의 순서로 이루어져 있다.

이 코스에는 빠져 있지만 ‘꿈속에서 거닐었다’는 아름다운 이름의 정자가 있었으니 바로 몽답정이다. 『영조실록』(영조 35년 기묘(1759) 2월 3일)에는 “훈장(訓將) 김성응(金聖應)이 북영(北營)에 정자 한 채를 지었는데 영조가 대보단에서 내려다보고 몽답정이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고 나온다.『정조실록』(정조 19년 을묘(1795) 6월 20일)에는 “연꽃이 흐드러지게 피고 날이 개인 뒤 더위가 물러갔으니 그야말로 회포를 풀기에 적당하다. 북영의 몽답정(夢踏亭)에 가서 묵으며 답답한 심사를 풀 것이니 그렇게 분부토록 하라.”라 나온다. 할아버지는 정자의 이름을 짓고 손자는 여기서 머물렀다.

유본예의 『한경지략』에 “몽답정은 창덕궁 서쪽 훈련도감의 북영 안에 있는데 샘과 바위의 아름다운 경치가 꽤나 많이 있었다. 숙종대에 일찍이 꿈속에서 이 정자에 임어 하시어 이러한 이름을 하사하였다. 또 사정(射亭)이 있는데, 군자정(君子亭)이라고 한다. [풍릉(豐綾) 조현명(1690~1752)이 편액을 썼다]”라 나온다. 이곳은 어떤 사연을 간직하고 있을까?



몽답정 2.jpg


만 줄기 꽃대 속에 연꽃 홀로 서 있는데

수각 그늘 사람소리 바람결에 들려오네.

대보단 서편으로 석양빛 비친 뒤에

매미울음 소리 지자 녹음이 짙었구나.

荷花孤立萬莖心 人語風來水閣陰

大報壇西斜照後 一聲蟬去碧深深

박제가(朴齊家), 「몽답정(夢踏亭)」


몽답정은 연꽃이 특히나 아름다운 곳이었다. 1,2구에서는 몽답정의 정경을 그렸다. 그런데 이 짧은 시에 대보단이 등장하면서 시의 의미가 예사롭지 않게 된다. 대보단은 명나라 황제에게 제사를 지내는 곳으로 청나라 입장에서는 불복의 상징으로도 해석될 수 있는 민감한 곳이다. 석양빛과 매미울음 소리는 명나라를, 녹음은 청나라를 각각 상징한다. 그렇다면 쇠퇴해가는 명나라와 발전하는 청나라를 대비하여, 청나라의 문물을 적극적으로 수용해야 한다는 속내를 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높이 뻗은 연잎이 기울어지니,

떨어진 연꽃들이 우러러보네.

실바람이 연못에 불지 않아도

연잎 물방울 또르륵 떨어지었네.

조용한 새 연잎 속에 날아들자

거꾸로 뒤집혀 기우뚱 서로 향하네.

荷葉高時傾 荷花落處仰

微風不滿塘 荷珠正跳蕩

幽鳥入荷裏 倒挂斜相向

유득공(柳得恭), 「연암, 강산, 잠부와 더불어 몽답정에 모이다. 2수 중 두 번째 시다.(與燕巖薑山潛夫, 集夢踏亭. 二首)」


이때 유득공은 몽답정에서 박지원, 이서구, 이서구의 사촌 동생인 이정구(李鼎九)와 함께 모였다. 이 시는 몽답정에 피어 있는 연잎을 섬세하게 포착하고 있다. 마치 사진기로 접사(接寫)하고 있는 것만 같다. 웃자란 연잎과 그새 떨어진 연꽃, 연잎의 물방울, 연 밭에 날아든 새 등을 순차적으로 묘사했다.




멀구슬꽃 눈처럼 깔려 있는데,

서글프게 높다란 정자 올랐네.

주름진 괴석 천연 그대로 희고

깡마른 삼나무만 홀로 푸르네

내가 와서는 잠깐 시를 읊으니

옛날 누가 여기서 머물렀던가.

올봄에 있었던 일 세어보노니

어찌 하루라도 술깬 적 있었던가

楝花鋪似雪 惆悵上高亭

皴石天然白 癯杉獨也靑

我來暫歗詠 伊昔誰居停

細數今春事 何曾一日醒

이덕무, 「몽답정에 모여서(集夢踏亭)」


이덕무 주변의 인사들에게 몽답정은 회합(會合)의 장소였다. 정자 주변에는 멀구슬꽃 잎새가 눈처럼 깔려 있었고 흰 바위와 푸른 삼나무도 눈에 띄었다. 올해 봄만 해도 여기서 지인들과 술을 주궁장창 마셨다. 제목으로 보면 이날에도 모임이 있어서 지인들을 기다리는 동안에 시를 지은 것으로 보인다.


몽답정 각자.jpg


골짜기 걸쳐 붉은 정자 있는데,

짙은 구름 창 반쯤 가리었다네.

철 늦은 꽃은 밝게 빛나고 있고,

어린 제비 쌍쌍이 오고가누나.

짙은 녹음 옷 가에 떨어지었고

층층 여울 자리 밑에 흐르고 있네.

친구가 술을 갖고 올까 하여서

가랑비에 발자국 소리 나는지 귀 자주 기울이네.

架壑紅亭在 雲重半垂窓

晩花明冉冉 穉燕度雙雙

濃翠衣邊滴 層湍席下淙

故人携酒至 疏雨頻聞跫

박규수(朴珪壽), 「비 내리는 몽답정에서〔夢踏亭雨中〕」


이 시는 박규수의 나이 15세에 지은 것으로 추정된다. 비속에 몽답정은 그야말로 운치가 있었다. 몽답정은 계곡에 걸쳐 있는데 구름이 잔뜩 끼어 있다. 꽃들은 피어 있었고, 제비들은 오고간다. 게다가 짙은 녹음에다 여울도 흐르고 있다. 이런 좋은 경치에 빠진 것이 하나 있다면 아직 도착하지 않고 있는 친구다. 빗소리에 묻혀서 친구의 발자국 소리를 혹시 놓칠까봐 신경을 곤두 세워 본다.

창덕궁에 가려면 지하철 3호선 안국역에 내리면 된다. 이제 몽답정은 정해진 관람 코스에서 빠져 있기 때문에 함부로 찾을 수 없는 곳이 되어 버렸다. 그 옛날 궁에서 업무를 보다 지치면 친구들과 이곳을 찾았다. 몽답정 바로 앞 못에는 연꽃이 피어 있었고 정자 아래는 여울이 흘렀다. 거기서 술을 마시고 거기서 시를 지었다.

매거진의 이전글‘한시로 보는 한양’ 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