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동욱 Oct 19. 2022

모기를 증오하며 서문

모기를 증오하며 서문입니다.

12월에 자음과 모음에서 출간됩니다.



서문


한시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상당한 공부가 요구되니, 진입 장벽이 생각보다 높다. 한시를 대중서로 풀어내는 것도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그래서 한시 관련 책은 읽기도 쓰기도 쉽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전문가들이 일반 독자에게 한시를 풀어 설명하려면 먹기 좋게 설탕옷(糖衣)을 입혀야 한다. 그동안 몸에 좋은 음식이니 맛이 없어도 좀 참고 먹으라고 강요했던 것은 아닌가 자문해 본다. 한시는 전문가들만 즐겨왔던 그들만의 리그였던 셈이다. 이것이 그동안 한시 관련 책이 많이 나왔지만 대중적으로 성공하기 어려웠던 이유다.


이번 책에서는 흥미로운 소재를 가지고 여러 항목으로 구성하였다. 소주제 당 10매 내외를 썼다. 짧다고 해서 내용이 빈약하지는 않다. 예를 들어 ‘모기를 증오하며’라는 항목에서는 모기에 대한 일반적 이야기를 서두에서 쓰고 모기와 관련된 시들을 서너 편 배치한 뒤에 말미에서는 현재 우리와 연결되는 지점이나 시사점을 짚어주려 했다. 그래서 분량은 짧지만 결코 짧지 않은 내용이 됐다고 자부한다.


하루키는 하루에 원고지 20장을 쓰는 것으로 루틴을 삼았다고 한다. 나도 이 책을 쓸 때 하루에 원고지 20장 이상을 썼다. 책 한 권을 두 달여에 쓴 것은 처음이다. 글 쓰는 즐거움을 깊이 느끼면서 작업했기 때문에 그 기쁨이 독자들에게 온전히 전해지길 바란다. 이 책이 반응이 좋다면 3-4권의 책으로 구성해서 한시의 문화사로 정리하고 싶은 바람이 있다. 꼭 그렇게 되기를 희망한다.


나의 루틴은 하루 한 끼를 먹고 매일 권투를 하는 것이다. 최근에는 권투와는 별도로 매일 10km씩을 걷는다. 나는 포레스트 검프처럼 걷고 또 걸었다. 거기에서 사람에게 받을 수 없는 깊은 위로를 받았다. 그동안 믿지 못할 것에 대해 너무 오래 믿어왔다. 나는 작년에 믿지 못할 것들을 믿어 왔던 그 마음을 다 걷어 들였다. 관계는 한시적으로만 유효하고 그마저 대개는 착시였다. 


이 외로운 참호에서 아무런 엄호와 지원도 없이 지루한 전투를 치르다 노병이 되어 버린 느낌이다. 이제 승리도 패배도 의미가 없어져 버렸다. 인생은 뼈저리게 외로운 것이란 생각이 든다. “내가 신을 배반하지 않았는데, 신은 어째서 나를 황량한 땅에서 떠돌며 벌을 받게 하신단 말입니까?(我不負神 神何殛我越荒州?)” 이 시구가 나의 마음이다. 슬픔은 1인용이고 구원은 내 안에 있다.


이 책을 쓰면서 고마운 사람들이 많다. 국립중앙도서관 연구정보서비스를 알게 되어 그동안 여러 권의 책을 집필할 수 있었다. 강의가 없는 날에 나는 늘 이곳에서 공부했다. 담당자 선생님께 깊은 감사를 드린다. 이 책은 이현진 편집자의 독려가 없었다면 나오기 힘들었다. 오래 전에 계약하고도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이 선생은 합리적으로 일정을 조율해 주어서 이 책이 나오게 해주었다. 이 기회에 감사 말씀을 전한다. 한시 책 하면 중년 이상의 독자들만 읽는 것으로 한정 되어 있는데, 이번 기회에 20,30세대들에게도 충분히 읽힐 수 있는 책으로 다가가기를 기대한다. 


2022년 10월 17일


관악산 기슭에서 필자가 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