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곡(李穀), 「영사(詠史)」, 여포(呂布)
1. 귀가 큰 아이는 못 믿겠다
已負平生董大師(이부평생동대사) 여태껏 모셔왔던 동탁을 저버렸으니
白門雖下孰無疑(백문수하숙무의) 백문에서 항복했지만 의심을 뉘 안 하랴.
不知自小臺卿智(부지자소대경지) 진궁의 지혜 하찮게 여겼던 건 모르고서
叵信劉家大耳兒(파신유가대이아) 유씨네 귀 큰 아이 못 믿겠다 하였다네.
이곡(李穀), 「영사(詠史)」, 여포(呂布)
[평설]
여포는 정원(丁原)과 동탁(董卓)을 양부(養父)로 모시다가 등을 돌려서 배신의 아이콘이 되었다. 사실 삼국지에서 주군을 두 번 바꾼 경우는 비일비재하다. 의리하면 떠오르는 유비도 주군을 다섯 번이나 바꾸었다[五易其主]고 알려져 있다. 백문(白門)은 서주(徐州) 하비성(下邳城)의 남문(南門)이다. 조조에게 수공(水攻)을 당해 물에 잠긴 지 3개월 만에 부하 장수들이 배반하고 먼저 항복하였다. 그러자 여포 역시 백문루(白門樓)까지 올라갔다가 포위망이 좁혀지자 내려와서 이내 항복했다. 이 이야기는『후한서』권75「여포열전(呂布列傳)」과『삼국지』「여포전」에 보인다.
진궁(陳宮)은 일찍이 조조를 따랐다가 실망하여 여포에게 몸을 의탁했다. 그렇지만 진궁이 제안하는 좋은 계책을 여포는 매번 듣지 않았다. 만일 여포가 진궁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면 상황은 크게 달라졌을 것이다. 여포가 조조에게 항복하여 목숨을 구걸할 때에 조조는 여포의 재주를 아껴서 살려 줄 뜻이 있었다. 조조가 유비(劉備)에게 그에 대한 의견을 묻자 유비는 반대의 뜻을 분명히 밝혔다. 그러자 여포가 “귀 큰 아이는 정말 믿을 수 없다.〔大耳兒最叵信〕”라면서 원망했다. 이 시에서 시인은 여포의 영웅적 면모보다는 몰락한 모습에 주목하여, 몰락의 원인이 여포 자신에게 있음을 밝히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