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동욱 Feb 22. 2023

초한(楚漢)의 영웅, 한시로 만나다 20

정조, 「사기(史記)의 항우본기(項羽本紀)를 읽고 읊다[讀項羽本紀]」

20. 떠날 기회를 놓친 범증 

鴻門帳外楚聲皆(홍문장외초성개)   홍문의 휘장 밖엔 모두가 초 나라 음악인데  

隆準俄從百騎來(융준아종백기래)   한고조 금세 일백 기병 데려 왔었네.  

浪死居巢頭白老(낭사거소두백로)   덧없이 죽은 범증 머리 흰 늙은이로서  

未聞此日乞骸回(미문차일걸해회)   이날에 사직하고 갔다는 말 못 들었네. 

정조, 「사기(史記)의 항우본기(項羽本紀)를 읽고 읊다[讀項羽本紀]」     


[평설]

이 시는 홍문연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홍문연에서 항우와 한고조가 회동(會同)했을 때 한고조는 100여 기(騎)만을 거느리고 갔다. 범증은 한고조를 죽이라고 여러 번 눈짓했으나 항우가 기회를 놓치는 바람에 한고조는 단기(單騎)로 그곳을 빠져 나갔다. 여기에선 홍문연 거사가 실패로 돌아갔을 때를 범증이 항우를 떠날 적기로 보고 있다.

 범증이 항우를 떠나야 할 시기를 두고서 예전부터 의견이 분분했다. 보통 항우가 송의(宋義)를 죽였을 때나 초회왕(楚懷王)를 죽였을 때를, 범증이 항우를 떠나야 할 적기로 보고 있다. 그러나 범증은 이 기회를 다 놓쳤다. 항우와 범증을 이간하는 한고조 진영의 계책에 휘말려 항우가 범증을 의심하게 되자, 이에 분개하여 사직하고 돌아가는 길에 팽성(彭城)에 이르러 등창으로 죽고 말았다. 사람의 관계란 영원할 수 없다. 특히 권력의 세계에서는 더더욱 그러하다. 먼저 떠나지 않으면 상대에게 비참한 꼴을 당하고, 먼저 죽이지 않으면 상대에게 죽임을 당한다. 지금에도 누구와 언제까지 관계를 지속시킬지는 여전히 어려운 문제다. 

매거진의 이전글 초한(楚漢)의 영웅, 한시로 만나다 19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